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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Oct 13. 2023

나 웨딩드레스 안 해요

신부 드레스 고르기

두팔 : 옷은요? 골랐어요?


예비신부에게 묻는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드레스 투어를 마친 결과를 묻는 것이었겠지만 우리의 경우는 달랐다. 행간읽기가 필요 없는 질문이었다.


두둘 : 아직인데 내가 알아서 할게요. 신경 안 써줘도 괜찮아요.


두둘은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없다고 했었다. 드레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그래서 우리는 합이 맞을 수 있었다. 결혼식도 안 하기로 하고, 웨딩드레스도 안 하기로 하고.


두팔 : 그래도 신랑이 신부 옷 같이 봐주는 게 낫지 않겠어요?


대신 예쁜 옷은 하나씩 하기로 했다. 신랑은 활용성 좋은 전천후 양복을 맞추기로 했고, 신부는 친구 결혼식에 입고갈 수 있을만한 예쁜 원피스를 사자고 했다.


두둘 : 적당히 예쁜 옷 찾으면 되는데요 뭐. 몇 개 후보 찾아서 보여줄게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않아, 나는 걱정을 입으로만 할 게 아니라 같이 쇼핑이라도 갔어야 했다는 후회를 하게 된다.



‘결혼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웨딩드레스다. 뽀얗도록 하얀 웨딩드레스는 결혼식을 상징한다. 종이에 웨딩드레스 하나만 그려놓아도 아, 결혼식이구나 하고 알 수 있을 정도. 어쩌면 웨딩드레스는 결혼식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두둘 : 나 웨딩드레스 안 해요. 별로 욕심 없어요.


말했듯이 우리는 웨딩드레스를 하지 않기로 했다. 결혼식도 안 하니까 뭐. 하객은 없어도 가족들끼리 식사하는 자리는 만들었지만, 두둘은 썩 드레스를 입고 싶지 않아했다.


나 역시 십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웨딩홀에서 식을 치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옆에서 드레스를 들어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란히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이따만큼 부풀어오르는 드레스를 입고 있다면 불편할 게 뻔했다. 행여나 김치라도 떨어트리면 어휴. 아찔하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허례허식을 잘라내고 우리의 새 출발을 우리끼리 축하하는 자리만 갖고자 했으니 드레스는 일찌감치 투 두 리스트에서 삭제된 상태였다. 신랑이 예복 아닌 양복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고.


그런데 신랑 옷과 신부 옷을 준비하는 데에 눈에 띄는 차이가 하나 있었다. 신랑 신부가 함께 했는지 여부였다.


우리는 직장 때문에 부득이 세종에 살았다. 그런데 신랑 옷을 맞춘 곳은 서울. 항공거리로도 110km가 넘는 거리였다. 옷을 만들기 위해서 그 먼 길을 채촌부터 시작해서 수 차례의 시착, 최종 수령까지 몇 번이나 가야했으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두둘 : 내가 같이 가서 봐줘야죠. 오빠 패션 센스를 어떻게 믿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둘이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해주었다. 패션에 있어서만큼은 내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농담을 하며, 기차를 타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언덕을 같이 올라주었다. 덥기도 더운 여름에 말이다.


정작 신랑 예복보다 이천 배쯤은 더 상징적인 신부 옷을 고를 때에는 그러지 못 했다. 남들처럼 드레스 투어를 다니면서 커텐이 펼쳐지고 새로운 드레스를 입은 예비신부의 모습이 짠 하고 나타날 때마다 우와 정말 예쁘다 하는 리액션을 해주기는 커녕, 옷을 같이 보러 간 적도 없었다. 나는 두둘의 원피스 실물을 결혼 당일에서야 처음 보았다.



물론 이게 전적으로 내 탓은 아니다. 옷을 보러 오프라인을 돌아다닌 게 아니라, 두둘이가 직접 인터넷으로 찾았기 때문이다. 흔한 인터넷 쇼핑이었다. 괜찮아보이는 옷 몇 벌을 한꺼번에 주문한 뒤,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은 옷은 다시 반품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말대로 몇 벌의 후보를 내게 보여줬다. 세 벌 정도 됐을까, 이정도면 괜찮냐는 메시지와 함께 옷 입은 모습을 카톡으로 보내왔었다.


문제는 그 옷들이 말만 후보였다는 거다. 두둘이 마음에 쏙 드는 옷이 없었다. 내게 보여준 옷들은 차악 정도였달까. 주문했던 옷을 모두 반품하는 일이 몇 번은 반복됐다.


원래 두둘이는 약간의 색이 있는 이브닝 원피스 정도를 생각했었다. 갖춰 입고 가야하는 자리에 입을 수 있는 옷을 마련하려는 건데, 채도 없이 너무 하얀 옷은 친구들 결혼식에 못 입고 가지 않는가. 그런데 주문했던 원피스들이 막상 입어보니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주문했던 옷을 모두 반품하는 일이 몇 번은 반복됐다. 화면 안에서만 예쁜 옷이야 뭐 워낙에 흔히 있지만, 이렇게 영영 괜찮은 옷을 못 찾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두둘이는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혼을 단 일주일 남겨두었을 무렵까지 두둘이는 옷을 고르지 못 했다. 두둘이의 걱정이 시나브로 현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배송이 늦어지면 안 된다는 조바심이 생기며, 두둘이는 점차 흰 옷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색깔 있는 원피스에서는 이거다 하는 제품을 못 찾았기에 흰 옷으로까지 범위를 넓힌 것이다. 결국 시간에 쫓겨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고른 건 새하얀 원피스. 웨딩 미니드레스인가 싶을 만큼 결혼식 느낌이 풍기는 옷이었다. 규모 있는 웨딩홀에서 결혼한 신부가 식후 파티에서 입을 법한 옷. 예쁘긴 했지만, 일회용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저 옷을 언제 또 입을 수 있을까.


실제로 우리가 결혼한 지 벌써 1년이 더 지난 오늘까지, 그 옷을 다시 입는 일은 없었다.



두둘이의 옷은 내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일이다. 아마 평생 그러겠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고, 그 아쉬움의 원흉이 왠지 나인 것 같아 미안하다. 조금 더 세심하게 챙겼으면 좋았을 텐데.


앗, 물론 그 옷이 두둘이에게 안 어울렸다는 소리는 아니다! 패션하면 역시 두둘이지! 흰 옷을 입은 만큼 두둘이 얼굴은 훤했고 예뻤고! 괜히 결혼에 흰 옷을 입는 게 아니네!!!

드레스, 부케, 부토니에


COOKIE : 못 다 한 이야기

일반적인 결혼식처럼 우리도 부케와 부토니에를 했다. 신부는 부케를 들고, 신랑은 부토니에를 달았다. 두둘이가 부케를 던지는 세레모니까지는 안 했지만,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말자도 고집했던 우리의 입장을 생각하면 꽤 예외적인 일이다.

부케와 부토니에를 한 건, 우선 우리가 식장을 꾸밀 때 꽃장식을 거의 안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꽃의 한계효용이 충분히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이었던 건 두둘이의 취향이었다. 두둘이는 꽃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부케와 부토니에를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할지 말지에 대한 여부부터 디자인까지 모든 것을 전적으로 두둘이의 결정에 따랐다. 두둘이는 부케와 부토니에도 잘 한다는 집을 인터넷에서 찾아 예약했고, 나는 두둘이가 주는 부토니에를 얌전히 달았다.

개인적으로 굳이 할 필요는 없는 악세사리 같다. 가슴팍에 꽃을 달고 있는 그 날의 사진을 보면 어딘가 인위적인 예식 느낌이 나서 아쉽기까지 하다. 다만, 바꿔 생각하면 결혼식 내음을 물씬 풍길 수 있는 데다가, 다른 아이템들에 비해 그리 비싼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크다. 분명히 난 그냥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부토니에를 다는 순간 완연한 예복처럼 보일 정도였다. 웨딩 웨딩한 결혼식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충분히 추천할 만 하다.


BEHIND : 두둘의 이야기

결혼 일주일 전까지도 옷 못 고른 신부 여기 있어요!

더 웃긴 건 뭔지 아세요? 사진에 있는 저 옷을 확정한 건 결혼 하루 전이에요 하루 전! 알아보기 시작한 건 두 달 쯤 전부터였는데 막상 주문하니 어울리지 않는 옷들이 많아서 계속 주문하고 반품하고를 반복했어요. 반품비만 해도 참 많이 나간 거 같네요.

결혼하는 날 입었던 옷도 드레스 느낌이 조금 나기는 했지만, 바로 전 날까지 고민했던 옷 중에는 드레스 느낌이 더 낭낭한 옷도 있었어요. 해외직구로 구매한 거였는데 배송왔던 옷들 중에 신부 느낌이 제일 많이 나서 저희 엄마가 계속 추천을 하셨어요. 그런데 저희는 결혼식이라기보다는 가족 식사를 하는 게 핵심이어서 드레스는 너무 과한 거 같더라고요.

반품 기한을 놓쳐서 그냥 갖고 있는 옷도 있어요. 사이즈가 약간 컸지만 옷 자체는 괜찮은 거 같아서 고민을 하다가 날짜가 훅 지나갔어요. 벌써 1년이 넘도록 새 옷 상태로 옷장에 들어있네요.

두팔이는 모르겠지만 결혼할 때만 하더라도 매년 결혼기념일에 드레스를 입고 셀프사진이라도 찍고 싶었어요. 그렇게 10년 20년 쌓이면 두팔이나 저한테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고, 나중에 나올 우리 아이들한테도 엄마 아빠의 젊었을 적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찍고 싶은 건 여전한데 결혼 1년만에 살이 붙어버려서 옷이 작아져버렸어요. 그래서 두팔이한테 사진찍자고 말도 못 꺼냈네요. 나중에라도 꼭 다시 두팔이는 저 양복을 입고 저는 저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남기고 싶어요.

앗, 그러고보니 옷장에 있는 새 옷을 꺼내도 되겠는데요? 1년 전에는 작았지만 지금은 딱 맞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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