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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Oct 11. 2023

아빠가 며느리한테 큰 거 양보했다

신랑 예복 맞추기

두팔 : 아니, 나 양복 있다니까요? 면접볼 때 산 거에요!


두둘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두둘 : 아니 오빠. 알아요 나도. 오빠 양복 있는 거. 근데 이제 날이 날이니만큼 좋은 옷 한 벌 하자니까요. 우리 어차피 따로 예복 같은 거 안 하잖아요. 그럼 거기에 들어갈 대여비나 이런 걸로 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두팔 : 내 양복 좋아요!


떼를 쓰는 아이를 보는 엄마의 심정으로 두둘이 또박또박 얘기했다.


두둘 : 저기요. 그런 거 말고요. 진짜 좋은 옷이요.


이번에는 또박또박이 아닌 따박따박 느낌으로 한 번 더.


두둘 : 솔직히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오빠가 비싼 옷을 해입겠어요.


그건 맞는 말이었다. 나는 원체 내게 돈을 잘 안 쓰는 타입이니까.


두둘 : 나 오빠가 좋은 옷 입는 거 보고 싶어요.


이렇게 얘기하는 여자친구에게 어떤 남자가 이길까. 나 역시 졌다. 두둘이의 끈질긴 설득에 두 손 두 발 들고야 말았다.



결혼식 없는 결혼. 퍼포먼스가 물씬 묻어있는 신랑신부 입장도 없고, 그 어떤 쇼잉을 해도 보여줄 하객 한 명 없는 결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날만을 위한 옷은 따로 하지 않기로 했다. 남자가 입는 턱시도니, 여자가 입는 웨딩드레스니 같은 것들 말이다.


다만 디테일에서 서로의 생각이 좀 달랐나보다. 신랑의 복장에서도 그랬다. 평범한 양복을 입자는 큰 틀에는 동의했으나, 있는 옷을 입으면 그만이라는 나와는 달리, 두둘은 이번 기회에 비싸고 좋은 옷을 한 벌 하기를 원했다.


사실 이런 얘기를 두둘이만 한 건 아니었다. 부모님은 한참 전부터 하시던 얘기였다. 집에 결혼한다는 얘기를 드렸을 때, 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말씀하셨으니까. 이번 기회에 좋은 옷을 하나 해입으면 되겠다는, 맞춤양복 한 벌 하자는, 두둘이의 말과 거의 똑같은 얘기를 말이다.


당시에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다. 허례허식 싫어서 결혼식도 안 하는데 예복을 하겠냐며 말이다. 허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고, 아내 이기는 남편 없는 법. 결국 나는 두둘이의 말대로 옷을 하기로 했고, 이왕 하기로 한 거 부모님이 바라시던 대로 맞춤양복을 해보기로 했다.


두팔 : 저 옷 한 벌 하려고요.


부모님은 옳타꾸나 반기셨다.


아빠 :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네.
두팔 : 이참에 옷 하나 하라고 두둘이가 계속 얘기하더라고요.
엄마 : 그래 그래, 어쩜.


순간, 부모님의 얼굴이 놀랍도록 밝아졌었다. 우리 며느리가 참 괜찮네, 두팔이가 장가를 참 잘 갔네, 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깟 옷이 뭐라고 이렇게 간절히 바라셨나 싶다가도, 그깟 옷이 뭐라고 내가 그렇게 안 한다고 고집을 부렸나 싶기도 했다. 포기하지 않고 나를 설득해준 두둘이에게 감사했다.



옷은 하기로 했지만 결코 예복은 아니었다. 말그대로 양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비싼 옷 값을 충분히 뽕 뽑을 수 있도록, 늘상 회사에 입고 나가도 되는 평범한 양복. 그걸 하기로 했다.


아빠 : 두팔이 하면, 아빠도 같이 할까?


엇, 아빠도? 이건 미처 생각을 못 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둘이 같이 옷 맞추러 가자는 건 아빠가 이미 몇 번 하셨던 얘기였다. 거의 십 년은 됐던 것 같다. 돈을 잘 못 쓰는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넘겨버렸지만. 여튼 왜 미리 떠올리지 못 했을까 싶을 만큼 왕왕 하셨던 얘기. 순전히 내가 생각을 깊이 못 한 탓이고, 내 시야가 너무 좁았던 탓이다.


두팔 : 그러시죠. 어디 좋은 곳 아세요?
아빠 : 응, 그치. 두팔이랑 같이 하려고 몇 군데 봐둔 데들은 있지. 근데 너무 오래 전부터 봐왔던 곳들이라 지금도 있는지는 한번 다시 봐야겠네. 아빠가 찾아보고 연락 줄게.


툭 건드리니 주르르 나오는 얘기. 세상에. 아빠는 그동안 양복점도 켜켜이 모아오셨던 거다. 아들이랑 같이 양복 맞추는 날을 기다리며 말이다. 새삼 스스로가 창피했고, 더 큰 잘못을 안 할 수 있게 해준 두둘이에게 다시 또 감사했다.


아빠 : 아빠 옷은 아빠가 하고 두팔이 양복도 아빠가 해줄게. 아빠가 계속 해주고 싶었어.


옷을 사주신다는 아빠.


두팔 : 어, 네. 제 옷이야 해주신다면 감사하죠. 근데 아빠 옷은 저희가 해드려야 되는데? 저희 결혼하는 기념으로 부모님들께 선물 하나씩 해드리기로 했거든요.


예물은 아니고 선물. 이만큼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부모님께 선물 하나씩은 드리고 싶었다. (예물 얘기는 나중에 다시 자세히 하기로 하자.)


아빠 : 그래? 그럼 좋지.


기분이 적이 유쾌하신 듯 했다.



며칠 뒤, 아마 2주가 채 안 지났을 거다. 내 옷을 해주시겠다던 아빠는 갑자기 입장을 180도 바꾸셨다.


아빠 : 근데 두팔이 옷 아빠가 해주는 게 괜찮냐?
두팔 : 네? 아빠가 사주신다는데 그럼 좋죠?
아빠 : 아니 그거 두둘이랑도 얘기 된 거야?


아들 옷을 아빠가 사주실 수도 있지, 웬 두둘이 얘기를 하실까.


두팔 : 얘기가 됐다기 보다는 아빠가 사주시겠다더라는 걸 공유하긴 했죠.
아빠 : 음... 그래? 다른 얘기는 없고?
두팔 : 뭐 딱 맞는 얘기는 아니지만 구두 얘기는 하더라고요.
아빠 : 구두?
두팔 : 네, 옷을 그렇게 좋은 걸 사입는데 신발이 안 맞으면 되겠냐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사줄 테니까 구두 고르러 같이 백화점에 가자고 했어요.


아빠는 구두 얘기를 들으시더니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아빠 : 양복은 아빠가 안 해주는 게 맞겠네.
두팔 : 네? 갑자기요?
아빠 : 저번에 두팔이랑 얘기하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두둘이가 하고 싶은 걸 아빠가 뺏는 거 같더라고.


아니 그게 뭐 대단한 기회라고 빼앗는다고까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쓰는 건데.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게 얼굴에 표가 났나보다. 아빠가 이어서 설명을 하셨다.


아빠 : 아내들 마음은 그렇지. 결혼하면서 남편한테 양복 한 벌 해입히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있지 충분히.


그런가. 아직 갸웃하자 또다시 이어지는 아빠의 설명.


아빠 : 시아버지가 남편 양복을 해주겠다는데 두둘이가 그러지 마시라고 아빠한테 얘기하기는 어려울 거고, 그래서 구두라도 사주겠다고 그런 거야. 아잇, 당연하지.


그럴 수도 있겠네. 반복되는 아빠의 말에 나는 점차 설득되었다.


아빠 : 아빠 결혼할 때도 엄마가 양복 해주셨어. 그게 아빠 첫 양복이었잖아.
두팔 : 아하, 아빠 첫 양복을 엄마가 해주셨다고요? 몰랐네.


결국 아빠는 아들을 완벽히 설득하셨다. 엄마 얘기에 남아있던 의심의 잔해가 사라졌다. 이 얘기부터 진작 하시지.


아빠 : 에잇! 이번 껀 아빠가 며느리한테 양보한다!


그렇게 열심히 얘기하시던 아빠는, 정작 당신이 못내 아쉬우신 듯 한 마디 덧붙이셨다.


아빠 : 평생을 벼러오던 건데. 아빠가 진짜 큰 거 양보했다. 두둘이한테 꼭 얘기해, 아빠가 큰 거 양보했다고. 알았지? 꼭 얘기해!
두팔 : 네, 알겠어요.


그러고보니 아빠 말을 두둘이한테 전했었나?



맞춤양복을 하는 건 생각보다 더 귀찮은 일이었다. 만들어져있는 옷을 사기만하면 끝나는 보통의 쇼핑과 달리, 양복을 맞추기 위해서는 매장에 찾아가서 채촌(치수재기)을 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디테일한 디자인들을 고르고, 기장과 라인을 얘기하고, 원단도 선택해야 했다. 그 후에 직접 방문이 필요한 몇 번의 가봉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옷을 받아볼 수 있었다.


나와 두둘이는 서울에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양복을 맞추는 이 과정들이 번거로웠다. 양복점에 가려면 기차라도 타야했으니 말이다. 왔다 갔다만 해도 그게 얼마나 걸리는데, 어우, 길바닥에 버린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양복점에 갈 때마다 두둘이는 나와 함께 해줬고, 그 때마다 두둘의 표정은 늘 웃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보였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아빠와 같은 곳에서 옷을 맞췄기 때문에 다른 일정이 없다면 가봉일도 함께 맞춰 만났는데, 가봉된 걸 시착하는 나를 볼 때마다 부모님은 흐뭇해하셨다. 두둘이와는 좀 다른 종류의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기분 좋아 하시는 건 비슷했다.


양복점에서 나와서는 엄마 아빠와 함께 저녁을 하곤 했다. 음식점에서는 자연스레 옷 얘기가 나왔다.


엄마 : 아까 시착한 거 봤어? 확실히 비싼 옷이라 그런지 태가 나드만.
두둘 : 그러니까요, 어머님. 좋은 옷이라 그런지 예쁘더라고요. 잘 어울렸어요.
엄마 : 진작 좋은 옷 좀 하랬는데 저렇게 말을 안 들어요. 저 잘 어울리는 옷을. 어휴.


아들의 첫 맞춤양복을 해주는 며느리를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삼십 여 년 전, 아빠에게 사주셨던 그 양복을 떠올리셨을까. 내 옷으로 대화를 나누는 고부를 보며 나 혼자 괜히 감성에 젖어 눈이 시큰했다.


COOKIE : 못 다 한 이야기

신랑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예복 보다 양복을 더 추천한다.

많은 결혼식을 다녀봤지만 예복이 아닌 양복을 입은 신랑의 모습도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예복과 양복의 차이(디자인이랄지)가 굉장히 크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제3자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마치 군인이 군복을 각 잡고 다려 입든 대충 구겨진 걸 입든 민간인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 이치랄까.

어차피 남들이 볼 때는 거기서 거기인 신랑 옷인데 예복을 대여한다면 대여비를 그대로 날리는 셈이고, 예복을 따로 구입한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 중 한 두 번쯤 더 입을까 말까 하다. 그런데 양복을 하면 두고두고 쓸 일이 많다. 나 역시 회사 출퇴근용 또는 경조사용으로 정말 잘 쓰고 있다.

다만, 꼭 맞춤양복을 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맞춤양복이 아니더라도 기성품을 구입하는 것도 방법이고, 명품 브랜드를 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맞춤양복은 원단이나 디자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게는 80만원부터 많게는 300만원까지 정도가 시세인 듯 하다. 기성품은 잘만 산다면 수 십 만원 정도로 충분하니, 가격적으로 확실히 부담스럽다.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만든다는 것, 세세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는 것, 꾸준한 사후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지만 말이다.

기성품은 가격적인 메리트가 가장 크지만, 그 외에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맞춤양복은 일단 양복점에 방문을 하면서부터 제작이 가능하고, 채촌 이후에도 거진 한 달 정도는 필요하기 때문에 급하게 옷이 필요한 경우에는 맞춤양복을 할 수가 없다.

물론 명품 브랜드 양복을 장만하는 것도 방법이다. 맞춤양복과 달리 명품은 누구에게나 먹어주는 맛이 있으니까, 그걸 원하면 그것도 충분히 좋은 선택이다. 맞춤양복 보다도 비싼 가격 때문에 주저하게 되겠지만.

결국 본인의 상황과 여건에 맞게 여러 선택지들을 비교해보고 결정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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