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9.
오늘은 유난히 집 안 공기가 무거운 것 같아. 엄마가 여전히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거든.
거의 온종일 누워만 있었는데도, 아랫배가 자꾸 딱딱하게 뭉치는 기분이 든대. 엄마는 혹시라도 너를 세상에 일찍 내보내게 될까봐 잔뜩 겁을 먹고 있어. 충분히 자라고 나서 나와야 한다며 말이야.
오복아, 오해하면 안 돼. 엄마 아빠가 너를 어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이 아니야. 우리는 너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
하지만 엄마 아빠는 알아. 지금은 '기다림'이 곧 우리 아들을 향한 사랑이라는 것을.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느 과수원에 아주 탐스러운 사과가 열렸어. 농부가 보기에, 저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사과로 영글어 갈 것이 분명했지. 그런데 농부가 조바심을 낸 거야. 그 사과가 너무 먹고 싶은 나머지, 가을이 오기도 전인 한여름에 사과를 따버리고 말았어.
이 사과는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사과일까?
아니야, 그럴 수 없겠지. 그건 우리가 아는 달콤한 꿀사과가 아닐 거야. 채 영글지도 못해서, 떫고 시큼한. 도저히 삼킬 수 없는 설익은 무언가일 거야.
우리 오복이도 마찬가지란다. 엄마 아빠는 너를 당장이라도 품에 안고 싶지만, 꾹 참고 기다릴 거야. 네가 가을볕을 듬뿍 받은 빨간 사과처럼 속까지 꽉 차게 무르익었을 때. 그래서 이 낯선 세상에서도 씩씩하고 의젓하게 숨 쉴 수 있을 때.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엄마 아빠가 오복이를 함빡 안을 수 있을 거야.
어제부터 엄마는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쓰며 힘든 시간을 버티고 있어. 아침부터 밤까지 혼자 침대에 누워서 불안해했을 엄마를 생각하면 아빠 마음이 아파. 힘든 생각은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안 좋은 생각으로 이어지거든. 그러니까 얼른 엄마 곁에서 손이라도 잡아줘야 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빠는 퇴근도 늦어버렸단다.
허둥지둥. 아빠는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밥상을 차렸어. 마음이 급해서였는지, 음식은 상태가 엉망이었어.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인 파스타였는데, 면이 퉁퉁 불어버려서 도저히 손이 가지 않는 지경이었단다. 시간을 맞춰서 좋은 걸 잘 챙겨먹어야 할 때인데, 아빠가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한 거야. 어찌나 미안하던지.
우리 오복이, 이제 예정일까지 43일 남았어. 지금 몸무게는 2.2kg. 아직 바깥 바람을 맞기에는 너무 작고 가볍지.
그러니까 오복아. 네가 엄마를 도와주렴. 지금 네가 있는 그곳이 점점 좁아지고, 답답하게 느껴지더라도, 아빠를 닮아 갑갑한 걸 못 참아서 얼른 뛰쳐나오고 싶더라도, 조금만 더 버텨줘. 따뜻한 엄마 뱃속에서 조금만 더 있다가, 그래서 엄마 아빠가 너를 안전하게 맞을 수 있을 때까지 무럭무럭 살을 찌워서, 그 때 건강하게 만나자.
우리 아들, 아빠 말 들어줄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