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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Nov 25. 2020

빚쟁이 아들 둘과 삼계탕

삼계탕 : 경복궁 토속촌

"너네 엄마는 왜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니? 지금도 집에 있는 거 아냐? 진짜 없어? 당장 바꿔!"


격앙된 목소리. 역시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나.



10살 쯤 무렵이었을 거다. 기억 속 어머니는 N잡러였다.


직업을 고르는 기준은 딱 셋이었다. 첫째, 초기 자본이 필요치 않을 것. 둘째, 당장 시작할 수 있을 것. 셋째, 자식들 키우는 데 무리가 없을 것.


그래서 어머니는 선생님이었다. 공부방을 하셨다. 초등학교 1~2학년 꼬맹이에서 고등학생까지. 연령폭도 넓었다. 어린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는 이른 오후부터 고등학생이 공부를 마치는 밤까지 어머니의 목은 쉴 새가 없었다. 별다른 보조교사도 없이 연령대가 다른 십 수 명의 아이들을 혼자서 케어하는 상황. 그 와중에도 끼니 때에는 남편과 자식들에게 꼬박꼬박 밥을 해먹이셨다.


또한 어머니는 보따리장수였다. 휠라, 삐에르가르뎅, 아놀드바시니, 메트로시티.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오전 시간이나 공부방을 운영하지 않는 주말에 몇 가지 브랜드 로고가 찍힌 의류나 잡화들을 당신의 몸통만한 커다란 가방에 담고 물건을 팔러 돌아다니셨다. 주무대는 시장이었다. 시부모를 잘 모시는 효부로 소문이 나있었기 때문에 시장 상인들은 어머니의 물건을 더러 사주시곤 했다.


상인들이 항상 호의를 베푼 것은 아니었다. 장사가 잘 되지 않은 날이면, 그들도 선뜻 지갑을 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잔업을 하셨다. 연장근무를 하셨다. 그동안 동네에서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아는 사람들의 집을 돌아다니셨다. 말 그대로 방문판매였다.


이런 날이면, 어머니의 귀가가 늦었다. 저녁 시간을 한참 지나서 어둑해진 날, 팔지 못해 짐이 가득 담긴 가방을 들고 집에 돌아오시던 어머니. 다녀오셨냐며 어머니를 반기는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오히려 미안해하셨다.


"미안해. 엄마가 많이 늦었지? 배고프겠다. 얼른 밥 차려줄게."


어머니는 선생님이었고, 보따리장수였고, 어머니였다.



전화가 울렸다. 집 전화다. 커다란 장롱과 짝을 맞추어 무지개빛 자개 장식이 된 전화기다. 한 때는 이런 가구를 살 수 있을 만큼 돈이 있었구나. 옛 영광을 떠올리게 하는 전화기. 누가 걸었는지 모를 전화가 온다.


밝은 낮이었지만, 집에 어른은 안 계셨다. 동생과 둘 뿐이었다.


전화를 바로 받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가 걸려와도 받지 말라는. 상황은 잘 몰랐지만, 이유는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다. 어린 내가 받으면 안 되는 전화구나. 어머니께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전화가 계속 온다. 잠시 끊겼다가도, 계속 다시 온다.


몇 차례 망설이다가 결국 당부를 어겼다.


여보세요? 네, 큰엄마. 안녕하세요.


다행이다. 받으면 안 되는 전화가 아니었다. 큰엄마다.

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다행이지 않았다. 받으면 안 되는 전화였다. 어머니가 걱정하시던 전화가 그 전화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이미 격앙되어 있었다. 톤이 잔뜩 높아져 있었고, 숨이 가빠했다.


응, 그래. 집에 엄마 계시지? 엄마 좀 바꿔봐.


엄마 지금 안 계시는데요?


그럼 누구 계시니? 어른 바꿔봐.


집에 지금 아무도 안 계세요. 저랑 동생 둘만 있어요.


진짜야? 진짜 맞아?

너네 엄마는 왜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니?

지금도 집에 있잖아! 있는 거 아냐?

진짜 없어? 아니잖아! 너도 거짓말하니?

당장 바꿔!

아니 돈을 갚기로 했으면 갚아야 될 거 아냐!

왜 그렇게 거짓말만 해?


별 일 아니다. 그냥 전화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분한 마음에 눈물이 찼고, 윗니와 아랫니가 맞물리도록 입을 꽉 깨물게 되었다.


아이, 왜 애한테 그래


수화기 너머 큰엄마를 말리는 큰아빠의 목소리도 들렸다.


대답했다.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음색을 더 높여 말했다. 알겠노라고. 이따가 어머니가 귀가하시거든 전화가 왔었다고 전하겠노라고.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그 날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한 번 더 해야했다.


어머니는 늦은 저녁에서야 집에 돌아오셨고, 여느 때처럼 우리에게 미안하다 하시며 얼른 밥을 차려주겠노라 말씀하셨다.


세 식구의 저녁 밥상. 깜빡하고 있었다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이, 그렇게 아무일도 아니었덨다는 듯이 어머니께 말했다.


아 맞다! 큰엄마한테 전화왔었어요. 전화달라고 하시던데요?


순간 어머니의 표정이 굳어졌다.


별 말씀 안 하셨니?


네! 잊지말고 꼭 전화달라고만 하셨어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어머니는 먼저 일어나셨다. 건넛방으로 가서 전화를 하셨다. 미안해하는 목소리로 사정을 구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거실을 건너 저녁 밥상에까지 다다랐다.


그 날. 어린 아들이 아무렇지 않은 척을 두 번 한 날. 어머니도 곱절로 미안하셨다.



그로부터 10년쯤 흐른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과외를 하게 됐다. 첫 과외 상대는 친척이었다. 나와는 6촌 관계. 6촌 동생.


그 큰엄마의 아들이었다.


그리 비싼 값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40만원. 일주일에 이틀이었지만, 한 번 갈 때마다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해줬으니까 싯가보다 저렴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게 참 우습다. 입장이 반대가 됐다.


하필 그 즈음에 그 집 상황이 안 좋아졌다. 경기가 안 좋았던 탓인지, 사업을 잘 못한 탓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과외비가 밀리기 시작했다는 거다.


한 달, 두 달, 그렇게 반 년.

200만원쯤 되는 돈이 밀렸다.

그 집은 내게 빚을 지게 됐다.


어린 조카에게 그 어미 흠을 보던 앙칼진 목소리는 어느덧 한껏 부드러워졌다. 우리 어머니가 10년 전에 그랬듯이, 이제 거꾸로 큰엄마가 사정을 구한다. 조금만 더 있다 주겠다고. 자꾸 밀려서 미안하다고. 지나가던 큰아빠도 큰엄마에게 슬쩍 말한다. 돈이 생기면 과외비부터 제일 먼저 챙겨주라고. 들리게. 일부러.


한껏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다고. 천천히 주시라고. 많이 힘드시지 않냐고.


입장이 정 반대로 바뀐 때. 성을 내며 재촉하지 않고 되레 위로를 건낸다. 6촌 동생은 안절부절 미안해한다. 자신이 돈을 벌어서라도 밀린 과외비를 꼭 갚겠다고 한다.


큰엄마는 무슨 기분이 들었을까.

자신과 다르게 웃으며 토닥이는 조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미안해 하는 자신의 아들을 보는 마음은 어땠을까.

그 날의 전화를 조금은 반성했을까.


이것이 나의 복수였다.



6촌 동생이 대학에 진학한 후 몇 개월 뒤, 밥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닭을 먹잔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경복궁역 토속촌이었다.


삼계탕 두 개를 주문한다. 미리 준비해두었는지, 바로 서빙이 된다.



토속촌은 의미가 깊은 곳이다.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다 그렇겠지만, 토속촌도 처음부터 잘 팔리는 곳은 아니었다. 한참 예전에는 지금의 서울지방경찰청 쪽의 작은 삼계탕집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흥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가게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게 된 곳이다. 자수성가. 삼계탕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집일 거다.


대개 삼계탕은 닭 안에 찹쌀, 은행, 대추, 삼 등을 채우고 몇 가지 한약재와 함께 푹 고아낸다. 그렇게 나온 국물은 뽀얗다. 파를 썰어넣으면 국물에 푸른빛이 돌 정도로 맑은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집 삼계탕은 여느 삼계탕과 다르다. 국물이 탁하다. 심지어 걸쭉하다. 쭉 들이켜면 율무차의 맛이 난다. 대한민국 대표 삼계탕집이라고 하기에는 여간 독특한 게 아니다. 그렇지만 이 집은 해냈다. 가장 독특한 삼계탕으로 주류 삼계탕들을 꺾어냈다.


토속촌 단골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 노무현 전 대통령일 거다. 그 역시 자수성가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상고출신. 대학도 못 간 상태에서 사시패스. 승부수를 던지며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 후, 결국 대통령 당선.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연혁과 행보로 승리를 이어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토속촌 같다. 일반적이지 않은 삼계탕으로 대표 삼계탕집이 된 토속촌. 일반적이지 않은 연혁과 행보로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른 노무현. 어쩌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토속촌의 단골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끌림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6촌 동생이 토속촌 삼계탕의 옅은 율무색깔을 닮은 봉투를 하나 건낸다. 몇 달 동안 자신이 모은 돈이란다. 밀린 과외비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라도 드리고 싶었단다.



세상에는 수많은 토속촌이 있다. 자신의 색을 잃지 않고 당당히 자리를 잡은 사람들. 그 성공의 크고 작음은 중요치 않다. 본인의 궤도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이 모두 토속촌이다.


자만하자면, 나 역시 토속촌이다. 빛깔을 잃지 않았다. 어린 조카에게 부모욕을 한다거나, 빚을 갚으라고 쏘아붙일 만큼 검게 물들지 않았다. 입에 풀칠도 한다. 부자는 아니지만, 거지도 아니다.



6촌 동생과 마주할 때마다 어렸을 적 전화 통화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때의 불편한 감정들도 함께 떠오른다.


그러나 6촌 동생에게 악감정은 없다. 잘못을 한 건 그가 아니니까.


누런 봉투에 손을 뻗지도 않고 말한다. 됐다고. 그 돈은 잊은 지 오래라고. 이미 안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그는 난처해한다. 이거라도 드려야 자신의 마음이 편할 것 같단다.


그에게 답한다. 돈은 안 받겠다고. 그러면 대신 부탁이나 하나만 하자고. 나중에 언젠가 누군가와 반대의 상황이 되었을 때, 지금 이 봉투 속에 들어있는 값만큼이라도 상대방을 봐달라고. 그 때 쓸 돈을 지금 미리 준 거라고 생각해달라고.


봉투 안에 얼마가 들어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얼마가 들어있든 결과는 같았을 거다. 10년 전 빚쟁이의 아들은 심한 말을 들었고, 그로부터 10년 뒤 빚쟁이의 아들은 빚을 갚기 위해 본인이 대신 노동을 했다. 과거의 빚쟁이 아들은 지금의 빚쟁이 아들을 보며 어린 시절의 본인을 보았다. 어떻게 그 돈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받을 수 없는 돈이었다.


다만 한 가지, 바라는 게 생겼다. 그 역시 토속촌이 되었으면 좋겠다. 주변에서 어떤 바람이 불어오든 자신의 경로를 이어가는 단단한. 그런 존재가 되어가기를 바란다.


"됐어. 밥이나 마저 먹자."


목구멍을 넘어가는 삼계탕 국물이 그 날따라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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