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전부였다. 계란 후라이도 안 넣었고, 깨소금도 안 뿌렸다. 별다른 재료가 필요치 않노라고 겸손한 손사레를 칠 수도 없을만큼 단촐한 재료. 그냥 이게 다였다.
그래서 이렇게 불렀다.
간장기름밥.
어렸을 적 참 많이 먹던 메뉴다.
어디서 배운 이름도, 주워들은 이름도 아니다. 간장, 참기름 비빈 밥을 줄여서 말하다보니 자연스레 나왔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우리 어머니도 부엌에서 정교하게 계량을 하시는 일은 없었다. 동네 슈퍼에 진열된 모습 그대로의 간장병과 참기름통. 그 커다란 걸 들고 직접 밥 위에 뿌리셨다. 혹시나 힘 조절을 잘못해서 밥에 벌컥 쏟을까봐 스댕 숟가락을 보험처럼 갖다대고 계셨을 뿐이다.
그런데 참 우스운 게 있다. 간장기름밥은 결코 혼자서는 해먹지 못하는 밥이었다는 사실이다. 간장기름밥은 무조건 어머니가 만들어주셔야 했다. 다른 사람이 하면, 그 맛이 안 났기 때문이다. 계량도 없이, 특별한 레시피도 없이, 그렇게 터프하게 만들어진 게 말이다.
재료가 다를 수는 없다. 밥과 간장과 기름인데. 어머니만의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눈 앞에서 밥에 간장과 기름을 뿌려 비벼주셨는데, 어떤 다른 비법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비율이 그렇게 다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맛이 나지 않았던 것일까. 여전히 이유를 모른다.
새해다. 이번에도 습관처럼 나이를 먹었다.
사실 이만하면 어른이다. 조선시대였다면 손주가 있었을 거라는 얘기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어머니께서 이 나이 드셨을 적에는 이미 국민학교를 들어간 자식이 있으셨다. 그러니까, 이미 내 나이에, 어머니는 아들놈에게 간장기름밥을 해먹이신 거다.
하지만 안 된다. 아직도 달마다 간장기름밥을 해먹고 있지만, 언제나 안 됐다.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어머니의 간장기름밥 맛을 내는 데 말이다.
어쩌면 아직 미혼인 게 다행이다. 아이가 없는 게 다행이다. 내가 비빈 간장기름밥은 맛이 없으니까 말이다. 행여나 내 아이가 간장기름밥이 맛없는 음식인 줄 알면 어떡할 뻔 했나. 혼자인 게 차라리 다행이다.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 눈에는 애라고 한다. 아흔 넘은 노모가 일흔 넘은 아들에게 차 조심하라는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생각건대, 거꾸로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식 눈에 부모는 어른이다. 비록 신(神)과 같아 보였던 모습은 사라졌을지언정, 언젠가부터 굽은 등과 깊게 패인 얼굴 주름이 눈에 띌지언정, 눈빛은 흐릿해지고 새로 나온 기계에 굼뜰지언정. 평생토록 자식놈들이 결코 쫓아갈 수 없는 그 어떤 무언가가 있다.
당장 간장기름밥만 보아도 그렇잖은가. 그 간단한 걸. 그 단순한 걸. 그 아무 것도 아닌 걸. 아들은 아직도 흉내를 내지 못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