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에세이 #사상계의길치
<길치인 나에 대한 단상>
'나는 길치다'
요즘 길치가 유행이던데 나는 완벽한 길치다. 길치에도 증상이 있다면 중증 정도는 된다.
운전을 막 시작했던 2003년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어 10여㎞ 떨어진 친척 집에 갈 때도 열댓 차례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지도를 꺼내 볼 정도로 심각하다.
도보로 이동할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
일단 조금만 비슷한 골목이나 거리가 나오면 머리에 입력되는 지도는 다 하나로 겹쳐 보이고, 방향 감각은 바로 사라진다.
가장 심각하다고 느낄 때는 고생 고생해서 맛집 주변을 대여섯 차례 뱅뱅 돌다가 겨우 찾아가서 밥을 맛나게 먹고 나왔을 때 뱅글뱅글 돌았던 식당 주변이 완전히 처음 온 것처럼 생경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쟤 무슨 소리 하는 거냐' 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길치가 아니다.
혹은 길치더라도 중증은 아니고 이제 막 증상이 발현되려는 단계일 가능성이 크다.
길치들은 어느 건물에 들어갈 때 좌우에 있던 지표들이 건물에서 나올 때 우좌로 바뀌어 있는 것을 지독히도 인지를 못 한다.
아주 어릴 때는 아니고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 익산역 앞에 아카데미 극장 노래방과 당구장을 싸돌아다니던 중학교 시절 그 복잡한 골목골목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던지 노래방에 가도 노래를 부르는 시간보다 매일 가던 노래방을 찾아가는 시간이 더 걸릴 정도였다.
글을 쓰다 보니 당시 했던 황당한 생각이 떠올라 적어 본다.
아마 동네 미용실 한편에 있던 다 뜯어진 향유고래 책을 떠들러 보다가 들었던 생각 같다.
향유고래들은 지구의 자기장에 반응하는 뇌 속 무슨 전정기관이 있는데 이 기관 때문에 드넓은 바다를 헤엄쳐 돌아다녀도 전혀 길을 잃지 않는다고 한다.
'아. 고래 부럽다. 내 전정기관 고장났나'
얼마나 부러웠으면 머릿속에서 한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미용실 아주머니가 내가 재촉하는 줄 알고 '조금만 기다려'라고 하셔서 지금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어려서는 시간이 남아돌았으니 길치여도 내 두 다리만 힘이 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문제는 기자가 되고 나서부터였다.
막내들은 보통 노동단체, 환경단체, 자선단체, 비정부기구(NGO) 등을 출입처로 맡는데 이런 출입처들의 특징이 대부분 현장이 야외에 있다는 것이다.
'ㅇㅇ시, ㅇㅇㅇ 앞 거리' 뭐 이런 식으로 그날그날 이벤트 보도자료가 오면 현장에 가서 사진도 찍고 집회 내용을 취재하는 일이 다반사다.
문제는 나 같은 길치는 'ㅇㅇ시'에 현장에 도착할 방도가 없다. 아마도 'ㅇㅇ시 30분' 정도, 빨라봐야 'ㅇㅇ시 10분', 늦으면 'ㅇㅁ시'에 도착하는 일이 허다하다.
'에이. 길 헤매는 거 생각해서 1시간 정도 일찍 나가면 되는데 또 오바한다' 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길치가 아니다.
길치들은 일찍 나선 만큼 마음에 여유를 부리고 길을 헤매다가 평소와 아무런 차이가 없이 항상 같은 시간 만큼 늦게 도착하게 돼 있다.
사건기자를 할 때는 그래서 '다시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 왜냐면 이야기되는 '그림'은 집회 초반에 보도용으로 먼저 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면 이미 판이 다 끝난 경우가 많아서 꼭 다시 부탁을 드리는 일이 많았다.
지금은 '인간계 향유고래 뇌'인 GPS를 이용한 내비게이션이란 '길치류 최대 발명품'이 나오면서 증세가 많이 호전됐지만, 한국에 한 번씩 들어갈 때면 수도 없이 다녔던 전주 시내에서도 길을 잃곤 한다.
그래서 길치가 꼭 나쁘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아니다'이다.
길을 헤매고, 가끔은 낯선 길로 들어서서 무섭고, 진짜 급한 병원 진료 시간이나 집회 시간에 쫓겨서 등에 식은땀이 날 때면 나 자신이 너무 못나 보이고 싫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나쁘지 않다.
왜 안 나쁜가 생각하면 항상 정해진 길로 '못' 가기 때문에 목적지 주변을 휘휘 돌며 차근차근 둘러볼 수도 있고, 같은 곳에 매번 다녀도 늘 새로운 마음으로 다닐 수 있는 점도 시간 여유만 있다면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돌아섬'을 용기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돌아섬?'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길치들은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없다. 그렇다고 선택을 안 하고 가만히 있느냐 하면 또 자신감은 충만해서 그렇지는 않다. 어쨌든 어딘가로는 가야 하기 때문에 발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또 남들보다 열심히 움직이지만 아니다 싶으면 '돌아섬'에 망설임이 없다.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그만큼 내가 잘못됐다는 인식이 딱 머릿속에서 생기면 바로 돌아설 줄 안다.
내 생각이 옳다고 끝까지 우기는 법이 없으며, 내 잘못이 틀렸음에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법이 없다. 내 경우는 이런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의 사고적 유연성이 사상계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나는 누군가 '진방씨, 이거 조금 수정해야겠는데', 또는 조금 거칠게 '진방씨 이거 틀렸는데' 해도 '아. 그래요?'가 나오지 '뭐야 ㅅㅂ' 이런 반응을 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줏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당시에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무지 가열차게 열심히 하고는 있다. 다만, 누군가 '이게 아닌데' 라는 의견을 주면 '아. 그래요?'가 반드시 먼저 나온다. 에이 그러면 자기 확신이 없는 거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나이가 어렸을 때는 '아. 이거 너무 겐세이에 약한데' 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지적받는 일이 적고, 나이가 차면서 자기 확신이 아니라 '아집'이 커지는 나와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은 '나는 돌아설 줄 아는 용기는 있다'고 정신승리를 시전 중이다.
이런 생각은 기자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인데 기자생활 초기부터 나는 항의메일을 받으면, 꼼꼼히 읽어 보고 틀린 소리면 이래저래 해서 이 의견은 반영이 어렵겠습니다. 라고 답장을 보내거나 항의메일 속 내용이 맞는 말이면 즉시 반영하고, 감사하다는 답장을 꼭 보내줬다.
이렇게 사는 게 처음에는 자존심도 상하고, 굽신굽신하는 게 짜증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영화 화성침공에 나온 뭐든지 흡수해 덩치가 커지는 우주 괴물처럼 사고의 영역이 확장되고 남의 알토란 같은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인생에서도 중요한 순간에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내가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름 만족하고 있는 기자의 길을 걷게 된 것도 다 이 '돌아섬' 기능 덕분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사상계의 길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 사고와 생각, 지식에 대한 확신을 잠시 내려놓고 내가 틀렸다 싶으면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복잡 다변하고 엄청난 속도로 흘러가는 세상에서 진짜로 완전히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돌아설 줄 아는 길치인 게 너모 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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