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단상 #잠 #불면
<잠이 없는 나에 대한 단상>
나는 잠을 많이 안 잔다.
아니 싫어한다고 해야 더 맞는 표현같다.
정확히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땅을 딛고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인데 이유는 딱히 없고, 무의식 상태로 짧은 생을 허비하는 것이 아쉽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으면 계속 잠만 잘 텐데 이 몸뚱이 방전된 베터리마냥 다 쓰고 죽어야지 아끼면 뭐하나. 하는 게 내 생활 철학이다.
그래서 하루에 많이 자면 5시간, 거의 대부분 4시간만 잔다.
잠을 적게 자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냥 눈만 껌벅껌벅 뜨고 있어도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할까?
록수의 평균 수면시간은 8시간 남짓, 내 수면시간은 4시간 남짓이니까 내가 두 배 덜 자는 셈이다.
그럼 이것을 한 달로 환산해 보면 약 120시간 정도 된다.
결론적으로 내가 록수보다 한 달에 5일을 더 사는 셈이다. 한마디로 록수의 한 달이 30일이라면, 나의 한 달은 35일이라는 것이다.
한 달을 다시 1년으로 확대해보자.
그럼 '60일'.
고로 나는 1년이 12달인 사람들보다 2달을 더 살고 있다.
무슨 미친 소린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맞는 말이고 트집 잡기도 어려운 소리다.
'그래서 좋은 게 뭔데?'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엄청 많아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천일야화로 풀어도 다 못할 정도다.
우선 지금 생각나는 좋은 점을 꼽으라면 똑같은 1년을 보내도 잠을 좀 덜 자면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 정도의 농도차가 날만큼 꽉꽉 채워서 삶을 살 수가 있다.
가끔 내가 애늙은이 같이 나이에 안 맞는 음악이나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하루를 꽉꽉 채워서 뭔가를 보고, 읽고, 듣고하는 세월이 쌓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애늙은이가 뭐가 그리 좋나?'라고 물어본다면 그냥 좋다고 하고 싶다. 일단 상대에 따라 맞춰 줄 수 있는 대화의 폭이 넓고, 주제도 다양하게 넘나들 수 있다. 특히 요즘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는 한 번 봐두고 디테일한 부분은 검색을 통해서 가다듬을 수도 있어 더 그렇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이유로 똑같이 1년을 살아도 삶을 꽁꽁만 김밥처럼 꽉꽉 채워서 사는 것을 나는 좋아한다.
'그렇게 살면 재밌느냐'고 묻는다면 재미보다는 멍 때리고 살면 무슨 일이 날까봐 하는 두려움이 커서 이렇게 산다고 말하고 싶다.
조금 일찍 자면 될 일을 너무 복잡하게 만드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마다 사정이 있고, 핑계 없는 무덤도 없는 법이다.
내가 처음부터 잠을 조금 잤던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또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러니까 학비를 모으려고 여기저기 바삐 뛰어다니던 때부터 불면의 역사가 시작된다.
여러 번 거론했던 아침에 부대에 가고, 저녁에 학원, 과외 알바를 하던 그 시절 이야기다. 당시 항상 저녁 과외를 마치고 집에 오면 새벽 2시가 다 됐다.
그때 잠자리에 들면 다음 날 아침에 6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집에서 부대까지 약 1시간 반이 걸리는데 부대는 학교처럼 지각이 허용되는 곳이 아니다.
'천금 같은 4시간' 딥슬립의 역사는 그때 시작됐다.
뭔가 고칠 수 없는 버릇이 있다면, 자신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어 보는 것도 시도는 해볼 만한 옵션이다. 예를 들면, 나처럼 군대라는 절대로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상황으로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4시간 자는 버릇은 대학교에서도 계속됐다. 대학 때 내가 꼭 지켜서 했던 나와의 약속이 있다.
바로 하루에 적어도 영화 4편 보기. 책을 느리게 읽는 나한테 맞춤형으로 내가 내준 숙제 같은 것이다.
다큐멘터리든, 통속극이든, 액션이든, 반체제 영화든 장르 구분 없이 반드시 4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 당시에는 가장 큰 미션이었다.
주로 학교 미디어 센터에서 DVD를 빌려서 보거나 친구들을 통해 구해 보거나 가끔 영화관에 가서 보거나 아니면 어둠의 경로를 통해 영화를 닥치는 대로 봤다. 봤다기보다는 먹어 치웠다는 표현이 더 맞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영화를 봤다.
이게 해보면 아는데 무지 어려운 일이다. 영화를 그렇게 사랑해도 1년 이상 '이 짓'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영화가 기본 2시간, 아무리 짧아도 러닝타임이 1시간 30분 정도가 된다. 그러면 하루 꼬빡 7~8시간은 영화를 봐야하는 셈이다.
그리고 나는 수강신청을 한 학기에 27학점 정도를 했었는데 모두 학점을 받는 수업을 신청한 것은 아니고 학점 수강 수업 19학점, 청강 수업 8~9학점 정도로 수강표를 짜서 들었다.
비싼 등록금이 아까워서라기보다는 진짜 듣고 싶은 수업은 시험 부담 없이 청강으로 듣고, 전공이나 교양 수업 중 수월한 수업은 학점을 받는 수업으로 들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수업을 들으면 낮에 거의 공강 시간이 없다.
어떨 때는 이전 학기에 들었던 수업을 다시 듣기도 했다. 인기가 많은 수업은 수강신청계(界)의 '느린 손'으로 유명했던 나로서는 도저히 신청이 불가했다. 그래서 실패로 괴로워하느니 애초에 포기하고 청강으로 듣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수업들은 노장철학과 인도철학 수업인데 이 수업들은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학점으로도 수강하고, 한 학기 만에 이해하기가 당연히 어려워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청강으로 또 수업을 들었다. 소규모 강의여서 교수님의 배려가 없었으면 들을 수 없었던 수업들인데 지금 생각하면 폐강의 위기에도 청강생을 받아주신 교수님들께 무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낮에 수업 듣는 틈틈이 공강 시간에 아무리 열심히 영화를 봐도 저녁 취침시간은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당시 기숙사에 살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후배 룸메이트들이 나 때문에 노트북 팬 돌아가는 소리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대학 시절이 지나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사정이 좀 나아졌다.
첫 직장인 인천 공항은 거의 9 to 6 근무 패턴을 유지했다. 해외사업팀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특별한 이벤트가 없으면 기본적으로 야근하지 않는 부서였다. 그러나 공항이라는 곳은 항공 용어부터 보안 구역을 비롯한 섹터별 명칭, 업무에 사용하는 용어까지 OJT(on the job training)가 엄청나게 빡빡한 직장이다.
그래서 처음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면 6개월을 꼬박 OJT만 받는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오래 받느냐 하겠지만, 공항 일이라는 것이 사람의 생명과도 직결되기도 하고, 보안 문제부터 밀입국처럼 형사상 문제까지 얽혀 있고, 워낙 생소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일단, 슬롯, 게이트, 주기장, 보안 구역 구분, 기본 관제 용어, 항공기 기종, 활주로 개념, 이착륙 시설 등 듣기만 해도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나는 이직을 하면서도 힘겹게 받았던 OJT 내용을 잊는 것이 아쉬워 당시 교육 교재를 아직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
이 시절에도 낮에는 OJT를 받고, 밤에는 관련 내용을 좀 읽히고, 대학 때처럼 책과 영화를 보고 하다보니 4시간보단 좀 더 잤지만 사정은 비슷했다.
지금 회사로 이직한 뒤에는 뭐 모두가 알다시피 이러고 산다. 나중에 한번 꼭 다룰 것인데 기자의 도제식 교육 방식은 껍질을 벗겨 내고, 살을 뗀 다음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한다. 특히 처음 기자가 되고 경찰서에 배치를 받는 날을 모든 기자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날은 반드시 사건팀 회식을 하는데 폭탄주의 융단폭격을 온몸으로 맞은 뒤 각자 배정받은 경찰 라인으로 가서 '똑똑똑' 하고 경찰서 강력계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그 철제문 또는 유리 벽 사이로 애절한 눈빛을 보내며 당직 형사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은 정말 형언할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을 동반한다.
지금이야 너무 좋은 형님들이고 동생들이지만, 살면서 경찰서를 가볼 일이 거의 없는 수습기자들은 이때 처음으로 강력계에 발을 들여놓는 경우가 많다. 가끔 얄궂은 형사들은 일부러 "누구요?" 하고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러면 주절주절 설명하거나 군기가 바짝 들어서 1진 선배께 보고하듯 'ㅇㅇ신문, ㅁㅁㅁ입니닷'하고 대답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금 생각해도 자다가 이불 킥을 할 정도로 창피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진지하게 임하는 일이다.
이 시기에는 보통 마지막 보고가 새벽 1시30~새벽 2시에 끝나고 첫 보고가 5시께 이뤄진다. 각 라인에 경찰서가 보통 3개, 많게는 4, 5개까지도 있기 때문에 말이 5시 보고지 경찰서를 돌아보려면 적어도 4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그럼 근무 시간이 21~22시간 가까이 된다.
수습이 끝난다고 상황이 달라지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이때부터는 몸은 좀 편해지는데 엄청난 부담감이 엄습해 온다. 잠을 자려 해도 혹시 물 먹은 사건은 없나 불안하고, 아침에 조간신문이 나오면 정신없이 챙겨서 읽어보고 빠진 기사는 꼼꼼히 체크해 1진 선배나 부장한테 보고하고 깨지기를 반복해야 한다. 그러니까 잠을 푹 자지도, 많이 자지도 못하는 상태로 1~2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면 나처럼 알람 없이도 새벽 4시30분 이쪽저쪽으로 일어나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아. 어제는 베이징에 사는 아주 귀한 페친 분을 우연히 만나 폭탄주를 온몸으로 받았더니 지금 너무 졸린다. 그래서 한번 나의 불면의 역사에 대해서 써봤다. 다 썼으니 조금 눈 좀 붙여야 겠다. 그럼 모두 오야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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