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리즘의 장막을 벗어나면 새로운 사고가 열린다

#단상 #에세이 #내셔널리즘 #민족주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jpg

<내셔널리즘의 장막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단상>

'민민투 VS 자민투'

다른 말로 PD(반제반파쇼 민족민주투쟁위원회)와 NL(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이라 한다.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PDR)의 이 쌍생아는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니 웬 고리타분한 운동권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 놓나 싶을 거다.

이 고리타분한 운동권 계파에 대한 소회는 그 시절 향수를 느끼는 90년대 이전 학번들과 어디서 듣긴 들었는데 무슨 소린지는 잘 모를 90년대 이후 학번들로 나뉜다.

나도 뭐 우연히 들어간 사회과학학회 동아리에서 전설처럼 듣기만 한 이야기들이라 사실 무슨 개념인지는 잘 몰랐다.

나중에야 광주민주화운동이네 서울의 봄이네 일련의 사건들을 편린처럼 주워듣고, 강준만 교수의 <한국현대사산책> 같은 책을 떠들러 보면서 학습 아닌 자율학습을 통해 대충 내용이나 파악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소련붕괴로 인한 운동권 조직 와해와 운동권 세대의 기성세대화(이재오, 김문수 운동권 ㅡㅡ)로 운동권이 혐오의 대상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속에서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동아리는 PD를 표방했지만, 꼭 거기에 천착했던 것만은 아녔다.

당시에는 이미 운동권이 멸종 위기에 있었고, 그냥 그 바운더리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도른도른한 취급을 받던 시대였으니 NL이니 PD니 하는 것이 별로 중하지 않은 그런 때였다.

내가 지금도 진보적 색채를 가진 것도 운동권 동아리 덕이 아니라 그냥 태생이 없이 자란 반체제적 출신 성분 때문인 것이 더 크다.

대신 내가 저 바닥에 약하게나마 연을 맺음으로써 확실히 얻은 것은 있다.

바로 민족자주가 먼저냐 반제반파쇼가 먼저냐는 고민을 통해 PD 편에 서면서 민족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 틀을 깼을 때 너무나 기뻐서 ASUS 노트북으로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틀어놓고 주인공들이 동료의 장례식에서 인터내셔널가(歌)를 부르는 장면을 여러차례 구간 반복으로 봤었더랬다.

민족주의, 영어로 내셔널리즘. 그러니까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 사고하는 이념의 부스러기는 굉장한 위험을 수반한다.

그 틀에 갇혀 버리면 국가를 벗어났을 때는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는 묘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봐왔다.

이런 독초 같은 이념임에도 우리 사회에 내셔널리즘이 만연한 것은 위정자들이 민중을 통치하는데 이만한 정치적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열광하는 월드컵, 올림픽, WBC 등도 이런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는 좋은 수단이다.

내가 축구나 야구를 보지 않게 된 것도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사회과학 서적을 훑어보고, 이런 고민을 하면서부터였다. 국가대항 경기를 보면서 애국심에 불타는 것이 괜히 휘둘리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야구팬과 축구팬을 무지몽매하다고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도 스포츠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스포츠 자체에 대한 멸시나 경시가 아니라 이를 이용해 못된 짓을 하는 나쁜 위정자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이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은 근대 이후 정립된 '국가'라는 테두리에 우리의 사고를 가두는 데 일조한다.

아무리 착하고 선한 사람이라도 국가라는 개념이 머리에 들어오면 비이성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하고, 이유 없는 포비아를 발산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만 해도 아직도 괜히 한일전에서 일본을 이기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고 그러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내셔널리즘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알 수 있다.

내가 다시 내셔널리즘을 떠올리게 된 것은 사실 우리 둘째 비글 단이를 보면서부터다.

단이는 올해 만으로 갓 4살을 넘겼다.

그러니까 반평생을 중국에서 산샘이고, 실제로 중국에서 산 시간이 더 길다.

국제 유치원에 다니는 단이에게는 중국에 대한 혐오의 개념이 없다.

더 나아가서 유치원에서 만난 친구들을 이야기할 때도 얼굴이 검고, 하얗고, 노랗고 그렇게 지칭은 하되 이런 표현에 민족주의적 편견이나 인종차별적 개념이 들어있지 않다.

최근 세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단이와 대화를 잠시 나눴다.

"아빠 우리 이제 집에 가는 거야?"

"응. 집에 가지"

"중국가니까 좋다"

"중국이 좋아? 단이 한국사람인데"

"응 좋아. 그리고 우리 중국사람이야"

"왜?"

"중국에 사니까 중국사람이지"

뭔가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아. 이 아이한테는 내가 어려서부터 뼛속 깊이 아로새겨 온 내셔널리즘이나 국가, 국경의 개념이 없구나.

이런 생각과 함께 나는 여전히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중국의 한한령 해제 조짐에 관한 기사를 썼다.

댓글 창에는 중국을 혐오하는 글들이 난무했고, 나와 그들이 다를 바 없구나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났다.

지난해 난민 문제로 한반도가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

사실 사건기자로서 범죄율과 난민 유입의 상관관계에 관해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결국 말을 내뱉진 않았다. 찬반논쟁이 극렬한 상황에서 나까지 뭐 보탤 필요가 있나 싶었다.

어쨌든 당시 논쟁이 뜨거웠는데 내가 평소 인품에 대해 흠모하고, 멋들어진 사람으로 여겼던 분마저 너무나도 저급한 표현까지 사용해 난민들을 배척하는 것을 봤다.

참으로 몽골족스러운 우리 한민족 국가 타령은 언제 끝나나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는 얼마나 내셔널리즘에 휘둘리고 있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물론 나에겐 그들을 비난할 자격도 의무도 없다. 그저 조금만 노력하면 민족주의적 사고의 틀을 깰 수 있고 같이 이런 노력을 해나가자고 설득을 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가 민족주의적 사고의 틀을 깨는 것이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한 차원 더 높은 사고를 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쓸데없이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는 것보다 이런 사고의 틀을 깨는 것이 인생에 더 도움이 된다.

만약 당신이 사고의 틀을 깨는 데 성공한다면 마음 한편에 항시 찜찜하게 자리 잡았던 내 사고의 부정합성을 상당 부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요새 내가 재미있게 읽고 있는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인간이란 자신을 해석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라는 표현이다.

책에서는 사람들이 황량한 현실을 외면하려고 현실을 화려하고, 의미있게 포장하는 행위로 '해석'이란 말을 사용했다. 현대 사회의 인간은 김영민 교수가 통찰한 것처럼 '호모 해석쿠스'가 맞다.

이념이니 사랑이니 가족이니 인류애니 뭐든 자기 합리화라는 해석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이 세상은 황망하니까 어쩔 수 없다.

기왕 해석을 해야 한다면 해석의 포장지가 심하게 구겨져 있는 것을 잘 펴야 할 것 아닌가.

내셔널리즘은 이 포장지를 못 쓰게 만들 정도로 한번에 심하게 우리 사고를 망가뜨리지는 않지만, 암암리에 속이 문드러지도록 병들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우린 국가의 테두리 안에 살고 있고, 어느 국가의 국민으로서 자신이 규정되고, 또 이를 통해 보호받는 것도 맞다.

나는 아나키즘처럼 국가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무 그 틀에 갇혀 이성을 잃지는 말자는 소리다.

이참에 우리 안에 들어있는 국가의 개념을 재정립해보고, 애국심을 앞세우는 위정자들의 교묘한 술책과 내셔널리즘 앞에 배척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떠올려 보자.

내가 쏜 이념의 화살들은 언젠가 해외로 나갔을 때 나에게 그대로 돌아와 꽂힐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민족주의 뽕빨 날리는 베이징에서 외노자 올림.

#단상 #애세이 #민족주의 #아죽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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