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투 원투' 힘이 들 땐 친구에게 손을 뻗어 보자

#에세이

by 돼지터리언국 총리

<누군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에 대한 단상>

++이 글은 현재 너무나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쓰는 글입니다

'카운셀러'
까진 아니지만,왜 때문인지 나는 어려서부터 남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을 많이 했다.
그냥 나를 보면 자신들의 짠한 스토리나 슬픈 이야기, 우울한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는가 보다.
그때부터 남의 말을 들어주는 기자를 할 운명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나는 남의 속 이야기를 듣는 것을 싫어하지 않아 언제든 요청이 오면 기꺼이 들어주었다.
사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됐다.
어려서 눈물이 말라버린 탓에 함께 울어주진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함께 울어줬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위치에서 힘든 일을 겪고 있다.
아무리 행복한 사람이라도 거실을 지나다가 레고를 밟는다든지 라면을 끓이다가 냄비 손잡이에 손을 댄다든지 하는 작은 일부터 급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늘나라로 떠난다든지 하는 큰 일까지 각각의 아픔을 겪기 마련이다.
그런 일을 꼭 끌어안고 심연 깊은 곳까지 떨어지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기운을 내고 방방 뜨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적당히 슬퍼하는 사람도 있다.
슬픔과 고난을 대하는 이 세 가지 방식에 대해서 나는 우열을 가리고 싶지는 않다.
주어진 상황과 자신의 위치에 따라 선택해서 잘 헤쳐 나오길 바랄 뿐이다.
요새는 주로 아픔을 끌어안고 심연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이 우울감은 끝이 없이 자신을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데 수직으로 뻗어 있을 것 같은 이 좁은 통로는 사실 내가 만들어 낸 환상일 뿐이다.
잔뜩 웅크린 몸을 좀 펴고 손을 쭉~하고 뻗으면 좁은 통로 벽은 화선지 같이 얇았다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쭉 뻗은 손이 얇은 창자 같은 통로 벽을 뚫고 밖으로 '뽁'하고 나가면 거기에는 당신의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우리는 용기가 없거나 너무 지쳐서 굳은 몸을 펼 수 없는 것뿐이다.
이 끝 없는 심연을 벗어나는 또 하나의 방법은 그냥 그 끝이 없을 것 같은 심연 속에 나를 던져 보는 것이다.
끝이 어딘지 모르고 떨어지는 수렁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에라이 모르겠다'하고 나를 던져버리면 언젠가 바닥이 나온다.
그리고 웅크린 자세에서 내 발바닥이 바닥에 '탁' 닿았을 때 우리는 박차고 다시 위로 솟구쳐 오를 힘을 얻는다.
김성모 화백의 명대사를 잠깐 빌려 보자면 이런 것을 '추진력을 얻기 위한 침전'이라고 한다.
통로를 지날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거 언제 끝나'라는 생각보다는 '언젠가 끝나겠지'이면 더 좋다.
세상 고통은 언젠가 끝난다. 영 안 끝날 것 같은 고통도 극단적으로는 병마에 시달려 생물학적으로 사망에 이르면 끝난다.
이렇게까지 사고를 확장하고 보면 지금 지나는 어둠의 동굴이 조금은 밝게 보일지도 모른다.
'아닌데. 절대 아닌데. 죽을 거 같은데'하는 생각이 더 크다면 세상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 대상을 택할 때는 될 수 있으면 건강한 정신, 건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택하는 것이 좋다.
그 사람이 구세주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간단한 길라잡이는 될 수 있다.
혹은 내가 아픔을 털어놓았을 때 그 사람 역시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세상에 나 혼자만 힘든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큰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삶의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옆에 있는 것인데 우리가 움츠러들고 또 움츠러들다 보니 내 배꼽만 보고 살게 돼 못 보고 지나칠 뿐이다.
내가 죽을 만큼 힘들면 까짓것 쪽팔리더라도 한 번 더 용기를 내서 도움을 청해 보자.
그러면 우리 마음속 '죽자'가 '살자'로 바뀌고, '자살'이 '살자'로 바뀌고, '살아보자'가 '더 잘살아 보자'로 바뀔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어리든 많든, 돈이 없든 많든, 가족이 적든 많든, 정이 없든 많든, 마음이 차갑든 따숩든 모두 외롭고, 우울하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온 지구를 덮고 있는 것만 같은 이 우울감은 현 인류가 지나는 시대적 요인에서 기인한 우울의 장막 때문일 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책인 김상봉 교수의 <호모 에티쿠스>라는 책을 보면 제국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두 가지로 나뉜다.
자기 절제와 금욕의 스토아학파와 향락과 쾌락을 좇는 에피쿠로스학파.
내가 보기엔 둘 다 우울한 시대를 지나는 좋은 방법이다.
너무 답답한 현실이 싫으면 매음굴보다 더 지독하게 타락한 굴속으로 들어갔다 오든지 아니면 반대로 지극히 성스러운 산사나 성당에 가서 자신을 경건하게 가다듬어 보자.
그리고 나랑 같은 아픔을 겪는 이웃들과 손을 잡자.
'나'는 안락한 그곳에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지만, '우리'는 항상 거기에 있고, 또 언제든지 있다.
'I'll be there'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손을 쭉 뻗어보자.
#단상 #다들살자 #힘내모두
++그림은 '얍얍, 원투 원투' 웨민쥔 작가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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