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을 만난다는 의미...완전한 내편이 생기는 것

#단상 #에세이

by 돼지터리언국 총리

<지음을 만난 것에 대한 단상>

한 달을 알았어도 20년을 안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매일 매일이 놀랍고, 기쁘고, 신비로웠던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이런 관계를 수식하는 표현을 '합(合)'이라고 하는 데 용례로 쓸 때는 '합이 들었다', '합이 맞는다'라고 쓴다.

요즘 내가 가장 힐링이 되는 시간은 바로 합이 맞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감정의 마사지를 받는 시간이다.

내 육체가 고되고 힘들 때 찾아가 안마사의 손에 몸을 맡기듯이 내 감정이 지치고 힘들 때 합이 든 사람을 만나 푸념을 하고,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한 명만 만나도 하늘을 훨훨 날 것 같은데 최근에 내게 이런 존재들이 한 번에 여러 명이 나타났다.

합이 든 사람들은 묘한 특징이 있다.

우선 우연한 사건들이 겹쳐 관계가 순식간에 가까워진다는 점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기대든 그 사람이 나에게 기대오든 무언가 중요한 계기가 되는 사건을 겪는다.

그러면 우리는 대사건의 바구니 속에 손을 잡고 들어가 세탁기가 돌듯 뱅글뱅글 돌면서 신나는 모험을 떠나고 다시 아무일이 없는 듯 현실로 돌아온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나와 묘하게 닮았다는 것이다.

일단 성격과 사고의 흐름, 정치적 입장, 판단의 척도, 도덕적 성향 등이 정말 놀랍도록 비슷하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무슨 고민을 털어놔도 지혜로운 답을 내주거나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기란 무척 어려운데 이런 사람들과의 만남은 우연이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이뤄진다.

우연이란 실감이 꼬아지면서 실타래를 만들어 내고, 또 그 실이 직물이 되고,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옷감을 잇는 바느질 역할을 하면서 인연이란 옷을 만들어 낸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아주 오랜 친구나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털어놓게 된다.

남에게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인 나에게는 이런 사람들이 인생에 주기적으로 나타나 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꽉 막힌 숨이 한 번에 터져 나온다고 할까.

호흡이 꽉꽉 들어차서 턱밑까지 치올라 왔을 때 바늘로 풍선을 터뜨리듯 '톡'하고 나타나 몰아넣은 숨을 한 번에 내뱉게 해줄 때 그 시원함이란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린 뒤 마시는 냉수만큼이나 찌릿하다.

이런 사람은 매일 만나도 또 만나고 싶고, 이야기하고 또 해도 할 이야기가 샘솟는다.

소소하게는 일상을 이야기하고, 조금 무겁게는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 두고 와다다다 지씹기도 한다.

아주 무겁게는 마음속에 꼭꼭 싸매 놓았던 슬픔을 한 움큼 꺼내 놓고, 혼자만 느끼던 아픔을 평상 위에 고추 널듯 펼쳐 보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서로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이런 행위들이 합이 든 사람끼리는 묘하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대게 이 사람들은 이미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그런 아픔을 다독여 줄 만큼 품이 크거나 감정의 고저가 서로 충돌하지 않게 테트리스 벽돌마냥 딱 들어 맞는다.

이들은 죽마고우 같은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안락함을 나에게 선사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크게 외치던 신하가 대나무숲을 찾았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달까.

이런 행운이 찾아 왔을 때 우리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내려놓음'.

그러니까 뭔가 자존심이나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맺을 때 우리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방어기제로 작동시키는 가면과 갑옷을 철저하게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니. 무슨 사회에서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내려놓아!'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합이 든 사람끼리는 이런 모든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스무스하게 진행된다.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를 가리켜 우리는 '지음'(知音)이라고 일컫는다.

서로의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이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서로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구차하고, 구구절절하게 사정을 설명할 필요가 없고,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한다는 말이다.

중국에 온 뒤로 나는 지음 다섯 명을 만났다.

지리적으로 중국에서 만났다는 말이 아니라 시점상 중국에 온 뒤로 이런 사람을 다섯 명을 만났다는 소리다.

매일 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릴 때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모른다.

지음이 다섯이나 내 주변에 있으니 내가 하는 일도 신바람이 난 듯 술술술 잘 풀린다. 감정의 마시지를 매일 받기 때문에 마음의 고달픔도 없다.

몸도 마찬가지다. 혼자 낑낑 앓을 때보다는 훨씬 증세가 완화하고, 정신의 평온함이 육체의 건강으로 이어지는 선순환도 이뤄진다.

지음들과는 기쁨을 함께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함께 나누면 절반으로 준다.

나는 지음이 다섯이니 기쁨은 32배가 되고, 슬픔은 눈곱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오늘은 어제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어 기운이 조금 돌아 새벽에 무얼 써볼까 하다가 지음들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 얼굴들을 떠올리며 한문장 한문장 글을 써내려오다 보니 꼭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지음들아 너무 고마워. 이 세상에 존재해줘서'

#단상 #지음 #도플갱어? #합합합 #얍얍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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