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축복의 말을 하는 것 대한 단상>
++기독교적 색채가 담긴 글이니 무신론자분들은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는 워낙 내 스타일대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열성 신자에게는 별로 호감을 받는 스타일이 아니다.
반대로 악의 근원인 개독교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비호감 필터가 씌워지기 때문에 무신론자나 다른 종교 신자님들에게도 호감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종교가 위기의 순간마다 나를 지탱해주고 여기까지 이끌고 와준 큰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느 성지에선가 3편으로 된 성화를 본 적이 있다. 이 그림들은 지금까지 내가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데 큰 힘이 돼 준 그림이다.
그림의 내용은 이렇다.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하리니'라는 문구와 함께 사막 위에 한 사람의 발자국이 쭉 지평선을 따라 나 있다.
이다음 그림에는 고통으로 잔뜩 찡그린 표정의 한 신자와 함께 이런 문구가 나온다.
'나와 함께 한다더니 어디에 계신 겁니까?'
그리고 마지막 그림에는 그 신자를 업고 가는 그리스도의 모습과 사막에 난 발자국이 함께 나온다. 그리고 그 표정은 고통에 울부짖는 신자의 표정보다 더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휴학하고, 온갖 알바에 치여 무척 힘이 드는 상태에다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집안의 불운에 지쳐 있을 때였다.
내심 마음 한켠에 '아. ㅅㅂ 신이 있긴 있는 것인가?'라고 생각할 때였으니까 그림을 제때 만난 셈이었다.
고통스러워 죽겠는 나보다 옆에서 더 안타까워하고, 나를 업고 다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다.
그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의 능력 없음에 나보다 더 슬퍼하는 엄마와 말은 안 해도 '일을 좀 할걸'하고 후회하는 아빠, 매번 의도치 않은 일로 동생 돈을 끌어가야 했던 누나의 미안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나한테 매우 미안해하는 이들은 사실은 나보다 더 나를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되자 내 입에서는 'ㅅㅂ'보다는 축복의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20대 초반에 이런 득도를 했으니 나는 행운아인 셈이다.
다시 예배로 돌아와서 내가 예배에 가는 이유는 딱 하나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내가 축복의 말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예배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축복송을 부르는 시간이다.
대부분 모든 교회가 이 시간이 있는데 내가 다니는 베이징 온누리 교회에도 이 시간이 있다. 무려 연속해서 두 번이나 있다.
첫 타임은 베이징에 갓 도착해 온누리 교회에 처음 나온 신자들을 위한 시간이다. 그리고 다음은 그 예배를 끝으로 베이징을 떠나는 사람을 위한 축복의 시간이다.
가사를 한번 적어보면,
은혜의 주님이 당신을 축복하고 사랑의 주님이 함께 하시네
은혜의 주님이 내 삶을 축복하고 사랑의 주님이 함께 하시네
뭐 생각해보면 별 가사는 아닌데 이제 막 베이징에 와서 낯선 환경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이런 축복을 준다는 것과 힘들고 지난한 베이징 생활을 마치고 한국이나 또 다른 삶의 터전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축복의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아주 감동적인 순간이 연출된다.
심한 갱년기를 앓는 집사님이나 권사님들은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하는데 나는 뭐 울어본 적은 없다.
사실 교회를 30년 넘게 다니다 보면 설교 말씀보다는 이런 순간순간 홀리를 느끼는 시간이 더 뜻깊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축복송 시간이 좋은 이유는 비단 종교적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남을 축복하는 말을 얼마나 하는지 생각해보자.
설날을 맞아 새해 인사를 하면서 느꼈겠지만, 명절이나 돼야 친지와 이웃에게 축복의 인사를 건네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네의 모습이다.
나도 그렇고, 그대도 그렇고, 우리 모두 그렇다.
그러니 교회에 나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축복의 말을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어느 날은 전날까지 칼바람이 부는 공항에서 뻗치기를 하고 들어와 심신이 지쳐 교회를 재끼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축복의 말을 내뱉기 위해 애들과 와이프를 채근해 지친 몸을 이끌고 교회로 가는 때도 있다.
아이들에게도 어려서부터 남을 축복하는 법을 가르치고, 옆자리에 앉은 아내에게도 축복의 말을 해주고, 또 나도 받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종교를 강요할 생각이 나는 전혀 없다. 지금이야 내 테두리 안에 있으니 어디에다 둘 곳도 없고, 그리고 딱히 교회가 나쁜 곳도 아니니 데리고 다니는 것이다.
아내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은 열에 예닐곱번은 록수와 함께 교회에 가지만, 아내가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나와 비글들만 교회에 간다.
물론 나중에 나도 없고, 아내도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없는 날이 오면 우리 아이들이 세상살이에 넘어져 눈물지을 때 어떤 무한한 존재에 기대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다. 그게 내가 믿는 신이 되든 아니면 다른 신이 되든 그것은 운명이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설 연휴 마지막날, 이제 언제 있을지 모를 축복의 기회를 마음껏 누리기를 바라면서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해 본다.
#단상 #축복의말
++밥 올려 놓고 흑구기자차 마시며 한줄 적어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