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에세이 #리더
<지장? 용장? 덕장? 리더 중의 리더는 '앞장'>
'돌격 앞으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사 중 하나가 바로 자기는 가만히 있으면서 부하 직원을 앞세우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뻔한데 전체 해야 할 일이 10개라면 편한 일 1, 2개를 틱 해놓고 이래라저래라 한다.
그러고선 항상 '돌격 앞으로~'를 외친다.
그러니 일이 잘 될 리도 없고, 부하들도 하는 시늉만 할 뿐 일은 전심을 다 하지도 않는다.
운 좋게 중간 관리자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면 조직이 어떻게든 굴러가지만, 이런 리더들의 특징은 또 그 와중에 중간 관리자를 엄청 시기한다.
그러다 보면 중간 관리자는 이직하든 퇴사를 하든 그 조직을 떠나게 되고, 결론적으로 그 조직은 망하게 된다.
나도 이제 슬슬 직급이 올라가면서 중간 관리자 정도 위치가 돼가고 있다.
이게 무슨 느낌이냐면 내가 플레이어로 열심히 뛸 때와 조그맣지만 팀을 이끌고 일을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일단 혼자 일할 때는 나 혼자 뭘 하든 크게 상관이 없고, 문제가 발생하면 위에 보고만 제대로 해주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솔루션 몇 개를 상사에게 제시해 지시를 받으면 끝이다.
하지만 팀장이 됐을 때는 완전히 문제가 달라진다. 일단 내 롤은 내 롤대로 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팀원들을 어떻게 배치해 솔루션을 만들지를 수도 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한다.
팀원들의 특성, 장점, 숙련도를 고려해서 롤을 부여해야 하고, 대부분 일을 내가 하는 것이 가장 낫지만, 어떤 일을 떼어줘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면 가장 잘하는 상황'을 빨리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후배들을 키워줘야 하는데 사람이라는 것이 내 존재 가치를 입증해주는 일들을 떼어 주는 것을 아까워하는 것이 본성이라 이 부분을 내려놓는 것이 너무 어렵다.
소위 리더십 과정이라는 교육 프로그램들은 이런 간극이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으로 생겨났을 것이다.
기자들은 이런 교육을 받을 일이 거의 없고, 일의 특성상 일반적인 리더십 과정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교육을 받는다 해도 디테일한 부분까지 충족시켜주기에는 무리가 있다.
내가 베이징에 오기 전에는 전북에서 사건팀의 장으로 일했었다.
우리 회사 후배는 하나였지만, 지방 경찰청 기자실은 뭐 니새끼 내새끼 가릴 것 없이 일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는 나도 저 '내려놓음'을 포기하지 못해서 결국 우리 후배를 제대로 키워주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결론적으로는 썩 좋은 리더가 되지는 못했다.
특히나 일이 많지 않다 보니 될 수 있으면 후배를 시키기보다는 답답한 마음에 내가 일을 처리해 버리거나 쉬운 롤을 계속 부여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위에 데스크도 후배에게 일을 줘 리스크를 높이기보다는 숙련된 나에게 일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베이징에 와서 꾸린 우리 공항 취재팀은 아주 팀워크가 훌륭하다.
나와 영혜와 숙연이가 이런 팀워크를 갖추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일의 성격 때문이다.
공항 취재란 것은 절대 혼자서는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선후배가 서로를 믿고 의지를 해야 한다.
한마디로 물리적 공간이 크기 때문에 순간이동이 가능하지 않은 한 공항을 올 커버 해낼 수가 없다는 말이다.
내가 A라는 곳을 마크할 때 B, C라는 곳을 후배들에게 나눠 맡겨야 하는 데 이때는 후배들이 나처럼 막아 낼 수 있다는 믿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당연히 후배들의 실력을 키워야 하고, 각자 특성에 맞게 장점도 키워 줘야 한다.
우리 팀의 후배 중 선임인 영혜는 독종스러운 맛이 있다. 일을 야무지게 잘하며, 약간 고지식한데 철저하게 맡긴 일을 해낸다. 그래서 나는 영혜에게 내가 해야 하는 퍼스트 롤을 맡겨 놓고, 변칙 플레이를 해서 특종을 잡으러 나가기도 하고, 요즘 같이 몸이 안 좋을 때는 퍼스트 롤을 맡기고 좀 쉬기도 한다.
이번에 김정은 취재에서도 특종을 잡을지 말지 알 수 없는 호텔 포스트에 내가 안심하고 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영혜가 베이징역 육교를 커버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바탕이 됐다.
막내 숙연이 같은 경우는 일단 시키는 것은 1-10까지 기억해서 꼭 실행하고, 정직해서 거짓말을 안 한다.
약간은 융통성이 없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래도 이런 친구는 지시를 꼼꼼하게 해주면 자기 몫을 충분히 하고 실수를 감추지 않기 때문에 리스크를 확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실수가 났을 때 나와 영혜가 재빨리 커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우리 팀이 처음부터 이런 팀워크를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기간 통신사로서 남북이슈를 인용 기사로만 쓸 수 없다는 회사의 결정이 내려지고, 한국인도 아닌 중국인 직원 두 명으로 팀을 꾸렸을 때 그 난감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 전주에서 후배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는 패배감이 있던 터라 오히려 두 명의 팀원이 더 부담됐다.
기자 일이라는 것이 옆에서 일일이 다 가르쳐주지도 못할뿐더러 개인의 역량에 따라 실력이 일찍 올라오기도 하고, 늦게 꽃피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게다가 언론의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 자란 친구들이 한국 기자 일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컸다.
고민 끝에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몸으로 보여줘 가면서 가르치자 였다.
그래서 항상 무슨 일이 생기든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 내가 제일 어려운 롤을 맡았다.
공항에서도 찬바람을 맞는 VIP 통로는 될 수 있으면 내가 맡고, 늦게 끝나는 북한 인사 취재는 내가 커버를 했다.
처음에는 주저주저하던 영혜와 숙연이는 매번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한 두 달이 지나자 "저도 할 수 있어요"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퍼스트 롤을 할 때 애들을 옆에 끼고 서너 번 시범을 보여주고 조금씩 조금씩 일의 무게감을 늘려줬고, 지금은 영혜 같은 경우는 내가 휴가를 가도 막내만 데리고도 웬만한 일본 기자보다 더 공항을 잘 커버한다.
숙연이도 선배들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항상 어려운 일이 있거나 번거로운 일이 있으면, 먼저 손을 들고 나선다. 그래서 우리의 주말 근무 당번은 순서를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이 되는 친구가 나와서 해도 될 정도로 지원자가 넘쳐난다. 물론 나는 디폴트 값이기 때문에 손을 들 필요가 없이 무조건이지만 말이다.
내가 많은 상사를 모셔본 것은 아니지만, 많은 CEO와 지도자들을 만나 본 결과 지장이니 덕장이니 용장이니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그저 자기가 얼마나 모범을 보이느냐에 따라서 그 조직은 탄탄해지느냐 서로 질책과 시기만 하느냐가 갈리는 것 같다.
우리 베이징 지사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중요한 기사에는 항상 바이라인에 세 기자의 이름이 올라간다. 누가 정한 룰은 아니고 우리 1진 선배가 그렇게 모범을 보였고, 우리는 그저 선배의 그런 모습을 본받아 따를 뿐이다.
우리 회사 내에서도 베이징 지사의 팀워크에 대해 아주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로 질시하고 기사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똘똘 뭉쳐서 일본 매체보다 3, 4배 적은 인원으로 비슷한 성과를 뽑아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1진, 2진 선배한테 솔선수범을 배웠고, 영혜는 나한테서 배웠고, 막내는 영혜를 보며 자연스럽게 몸에 익혔다.
자기계발서네 사회생활백서네 하는 책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냥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해서 한번 적어 봤다.
이제 우리 나이쯤 되면 다들 작든 크든 리더가 될터인데 장 중의 장인 '앞장'이 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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