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친구를 만났다...세상을 살아갈 힘이 생겼다

#단상 #에세이

by 돼지터리언국 총리
진짜 친구.jpg

<헌 친구를 만나는 것에 대한 단상>

'헌 친구를 만났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수채 보는 것이 새 친구들이다.

새 친구들은 우리의 생활에 뭔가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답게 너무 다른 사고관이나 성격으로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헌 친구를 찾아간다.

헌 친구를 만나는 것은 설레지도, 격하게 기쁘지도, 그다지 실망스럽지도 않은 그런 것이다. 음식으로 치면 잣같은 게 많이 든 '잣죽' 같은 느낌이랄까.

밍숭맹숭한데 맛은 있고, 그냥 찾아 먹자니 귀찮은데 또 있으면 몸 생각해서 먹게 되는 그런 맛 말이다.

헌 친구를 만나면 일단 모든 것에 있어서 편하다.

헌 친구는 내가 앞에 앉혀 두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페북을 하든, 게임을 하든, 책을 보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또 저거 저 모양이네' 하고 마는 것이다.

자기 물건을 건드려도 마찬가지다. 특히 헌 친구의 집을 방문해 서가를 뒤적거리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필요한 책을 헌 친구한테 구하는 법이 제법 많다.

서로 떨어져 있었던 기간이 길어 헌 친구의 사고가 이전과 많이 변해 있다면 반드시 서가를 휘휘 둘러보고 요새 뭘 읽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짐작해 보는 것이 좋다.

헌 친구를 만나는 것 중 또 하나 좋은 것은 추억을 소환하는 것이다.

핸드폰 게임이고, SNS고, 서로 질릴 만큼 하고 나면,

그제야 '저 새퀴 저거 예전엔 그 모양 그 꼴이었는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럼 "맥주 있냐?"를 외치고, "너 예전에 기억나냐"를 시전하면 그 뒤로 5시간 동안 JYP의 유지를 받들어 '욕반말반'으로 섞어서 대화를 나누면 된다.

말이 오가면서 옛 감정이 되살아나고, 그 시절이 재현되면, 그간의 변한 모습을 서로 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런 추억 소환은 페북 따위가 전해주는 추억과는 다른 헌 친구만 줄 수 있는 소소한 기쁨 아닌가.

대화가 이어지고 이어지다가 이사 문제, 건강 문제, 애들 교육 문제까지 다다르면 그만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런 것은 그냥 새 친구랑 하는 것이 낫다. 그런 소리 하려면 헌 친구를 만나는 의미가 없으니까.

헌 친구와 같이 있는 시간이 지루해지면 다른 친구를 불러 가스차에 조강지처 썬연료를 넣은 것처럼 부스터 기능을 발현해보자.

이때 나와는 새 친구이지만, 헌 친구의 헌 친구를 만난다면 그건 행운이다.

헌 친구의 헌 친구는 나에게는 이제 막 만난 새 친구이지만, 이미 헌 친구를 통해 검증된 친구니 서로 탐색 기간을 확 줄일 수 있다. 오래 두고 봐야 아는 인간사 최대 난제인 인간관계 검증 시간을 하룻밤에 줄여 버릴 수 있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첫인상이 좋지 않아도, 오해가 생기는 언행을 해도, 그 새 친구는 분명 좋은 친구다. 아니 절대 선은 아니고 나와는 맞는 친구쯤으로 해두자.

우리는 그렇게 또 하나의 헌 친구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헌 친구만이 내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다.

아. 선물 이야기가 나왔으니 헌 친구가 줄 수 있는 선물 이야기를 해보자.

헌 친구는 선물을 많이 주는 편이다. 솔직히 안 줘도 그냥 가져오면 되니까 진짜 필요한 것은 헌 친구네 집에 가면 반드시 들고 오자.

들고 가는 제스처를 취했을 때 강력한 반발이 나온다면 반드시 가져가자. 분명 재밌는 물건일 테니까.

너무 한다고? 아니다. 이 쉐키는 더 가져가니까 그냥 가져가면 된다. 정 필요하면 다시 살 것이다.

그리고 나올 때 전날 밤에 봐뒀던 책도 몇 권 가지고 나오자. 어차피 책은 사놓고 안 읽는 거니까 가져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헌 친구와 있을 때 가장 좋은 점을 적어 본다.

헌 친구와는 허물이 없다. 경계가 없는 것이다. 내 흉도, 아픔도, 기쁨도, 슬픔도, 원망도, 흑역사도 다 나누었으니 감출 것이 무엇인가.

그래서 헌 친구네 집에 가면 반드시 발가벗고 거실을 활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발가벗고 활보해도 살색 전신 스타킹을 신었겠거니 하면서 신경도 안 쓴다.

세수할 때는 친구의 질레트 면도기에 비싼 새날을 끼워 쓰면 된다. 그래도 칫솔은 더러우니 가지고 가야 한다는 꿀팁은 머릿속에 장착하자.

헌 친구와는 한 침대에서 빤스만 입고 한 이불을 덮어도 되는 것도 좋다.

깨끗한 이부자리를 봐주는 새 친구도 좋지만, 그냥 으슬으슬 추울 때 서로 상대의 이불을 바짝 땡겨 덮어가며 새벽잠을 깨우는 것은 부부 사이에도 하기 쉽지 않은 일이니 이때라도 해보자.

이런 상호민폐는 사회에 나갔을 때 '내 뒤에는 헌 친구 같은 새끼가 있으니 든든해'라는 팥죽 한 그릇 같은 따순 마음을 심겨 준다.

다들 이 글을 보고 헌 친구가 생각나거든 오늘 전화해서 '개새끼'라고 욕을 하고 끊자. 그리고 저녁때 '무슨 일이냐'라고 카톡을 보낸 그 개놈이랑 만나서 소주 한 잔을 기울이자.

불금에 소주 한 잔하니 창정이 형이 생각난다. 모두 잣같은 불금 되라.

#단상 #에세이 #헌친구 #빤스담에줄게

keyword
이전 01화착한 인재가 성공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