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운동
<운동적 인간에 대한 단상>
엘리트 선수 출신 같이 운동을 한 사람들은 묘한 특성이 있다.
여기서 말한 '운동을 한 사람들'이란 과거에 운동을 했는데 지금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나도 어려서 운동을 했는데 종목은 어울리지 않게 유도를 했다.
뭐 엘리트 체육 수준은 아니고 꽤 오랜 기간 수련을 하다 보니 그쪽(?)에 조금 연이 닿아 있는 정도다.
유도부가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전교 최단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도부가 아닌 일반 학생이 참여하는 무체급 대회에서 매년 우승을 했을 정도니 그래도 준엘리트급 정도는 된다.
처음 유도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인 것 같은데 초등학교 고학년 때인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한량인 울아빠가 태권도 도장이라고 나를 속여서 데려갔던 것이 시작이었다.
나는 태권도가 무척 하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씨름이나 유도 같은 운동을 좋아해 나에게 유도를 가르쳤다. 정작 본인은 태권도 유단자면서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한 유도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작은 체구였던 나는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유도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당연히 수련 시간은 힘이 들었는데 수업이 끝나고 형들이랑 노는 게 너무 재밌었다. 집에서 만날 나를 괴롭히는 누나하고 달리 형들은 나를 무척 예뻐해 줬다.
그리고 우리 유도장은 경찰행정학과가 있는 ㅇㄱ대 앞에 있었는데 그 과 누나들이 유도장에 오면 제일 막내인 나와 짝이 돼 수련했다.
모든 형님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지만, 집에 있는 누나 때문인지 그냥 시큰둥했던 기억이 있다.
잡설은 놔두고 다시 운동 이야기로 넘어가면, 운동한 사람들은 독특한 특성이 있다.
한마디로 설명하면 뭐든지 '극복'하려는 성향이 있다.
풀어 설명하면 남들이 보면 진짜 바보 같고, 절대 안 될 거 같은 일인데 고집을 피우면서 그 일을 해내려고 하는 특성이다.
나는 운동하던 사람은 아니지만 저런 사람들 옆에 있다 보니 약간 그런 성향이 묻어 있다.
간단한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보통 통풍이 왔을 때는 격한 운동을 하면 안 된다.
이건 상식에 가깝다.
옷감이 살갗에 닿기만 해도 아픈 데 땡땡 부은 발을 보면서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남들이 '통풍 왔을 때 운동을 한다고?'라는 말을 하면 내 안에서 '왜 안 돼? 해보지도 않고?'라는 삐딱한 감정이 샘솟는다.
그러고는 꼭 가서 한번 해보는 것이다.
조금 고상하게 표현하면 시 '바다와 나비'의 흰나비처럼 시퍼런 바다가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 날개가 물에 젖어 돌아오는 것이고,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아는 무지렁이 같은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가끔 이런 무대포 정신은 자신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운동을 할 때 진짜 드럽게 되지 않던 동작이나 기술이 하얗게 몸을 불태우고 나서야 경직된 근육이 흐물흐물 풀리면서 매끄럽게 되는 경험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이 경험은 거의 마약 같은 쾌감을 주는데 아무래도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이런 경험이 더 많을 테니 이런 쾌감에 중독돼 무대포 같은 도전을 하는지 모르겠다.
어제 술자리에서 한 형님의 회사에 있는 엘리트 선수 출신 직원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생각을 정리해 이야기해 봤는데 다들 맞는 것 같다며 동의했다.
기자 일을 하면서도 나는 이런 경험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내가 있던 전북 지역은 사실 이렇다 할 아이템이 없다.
솔직히 기사량으로 따지면 제주, 강원, 다음이 전북이니 뭐 쓸만한 게 있을까 싶을 정도다.
징그럽게 글을 못 쓰던 초년병 시절에 이런 체념 섞인 분위기가 싫어 오기로 매일 아이템을 발굴해 쓰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억지로 억지로 쓰다 보니 그럴싸한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주요 일간지에 전재가 되는 아이템을 발굴하기도 하고, 죽어도 안 될 것만 같던 일이 일어나는 경험을 했다.
지금 이렇게 매일 SNS에 글을 써 대는 것도 아마 그때 그 버릇이 몸에 배서 그런 것 같다.
문제는 이런 특성이 때론 독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만 봐도 몸을 거의 번아웃 상태까지 쓰는 습관을 더는 지속 가능하기 어려워 보인다.
20대까지만 해도 4~5일 날을 새도 낮에 짬짬이 한두 시간 눈을 붙이면 버틸 만했는데 지금은 거의 몸이 패스추리처럼 바스러지는 느낌이다.
몸을 함부로 써 온 대가겠거니 싶다가도 '여기서 내가 무너진단 말인가? 더 해봐?'하고 오기가 불쑥 생기기도 한다.
어제 술자리가 파하고 집에 오는 길에 다시 한 번 이런 운동적 인간의 특성을 생각해 봤다.
그리곤 욕심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 때에 맞는 행동거지가 있는 법인데 나는 이제 그런 때는 지난 모양이다 생각하니 약간 서글퍼지기도 했다.
뭔가를 내려놓는 것. 아직도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생활태도나 습관을 내려놓는 것은 물질적인 것을 내려놓는 것보다 무척 힘든 것 같다.
'유도 소년 금진방아. 이젠 안녕~'
#단상 #운동적인간
++사진은 체육 싫어 하는 김단. 마지못해 태권도를 하고 있음. 너도 유도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