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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17. 2018

나같이 살아라 강요하는 멘토들에 대한 단상

#단상



    곧통을 정면으로 맞으려 하지 말고 피할 수 있음 피하자. 이번에 피해도 또 곧통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요즘 강연 프로그램이 여기저기서 인기다.
    최근 박산호 작가님이 내신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라는 책이 인기인 것처럼 현대사회를 사는 어른들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갈피를 못 잡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터다.
    나도 어느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훌륭한 멘토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가끔 보는 편인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멘토는 자신의 방법을 강요해 약간 거부감이 느껴진다.
    그런 분들의 특징은 나는 당신보다 더 힘들었다. 그 역경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섰다. 나를 따르라. 와~~ 류(類)다.
    곧통을 견디라고 하는 사람은 필시 변태거나 혹은 사이비 약장수일 가능성이 크다.
    전에도 말했지만,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면 골병든다.
    우리가 살아온 환경은 모두 다르다. 출발선 역시 다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곧통이 왔을 때 그것을 견딜 수 있는 맷집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도 없다. 똑같은 환경에서 나고 자란 나와 누나를 보자.
    누나 역시 구김살이 없이 잘 컸지만, 나는 수더분한 성격에 생물학적으로 남성, 누나는 예민한 성격에 여성이었다. 남녀의 차이가 극명히 갈리는 것은 사춘기 때인데 그때 누나는 우리 집의 상황을 못 견뎌 했다. 사춘기 여중생이 단칸방에서 시컴시컴한 남동생과 아빠와 함께 지낸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지금 생각해도 누나가 가출을 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조금 더 범위를 넓혀 보자. 당시 다가구 주택에 같이 살던 내 또래 친구들은 아쉽게도 힘든 삶을 살고 있다.(누가 누구보고 힘들다 하는가ㅠㅠ)
    뭐가 달랐을까? 그건 가족의 테두리에서 느낀 사랑의 차이였다고 생각한다.
    가난을 경험해 보신 분이면 알겠지만, 자신의 무능력으로 힘들어하는 가족들, 그런 가족을 지켜 보면서 괜스레 치밀어 오는 화, 화를 발산할 곳이 없을 때 애먼 가족들을 향해 터져 나오는 악다구니와 다툼,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다는 것은 생각보다 끔찍한 경험이다.
    다행히 우리 집은 초긍정, 무념무상에 귀여운 것을 보면 '아이 귀여워'하는 아빠가 계셨고, 말 수는 적지만 항시 누더기가 된 가계부를 붙들고 고군분투하는 엄마가 든든히 울타리가 돼 줬다. 그래서 가난은 했지만, 나와 누나는 무척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렇다면, 누나와 내 또래 친구들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성별과 가족이라는 요인으로 좌절과 고통을 맛보고, 때론 방황하기를 반복한 것이 자신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일까.
    또 이런 사람들에게 특정한 형태의 성공담을 강요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물론 성공하신 분들의 기본적인 삶의 태도나 습관 등은 참고할 만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통제 변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일괄적인 솔루션을 강조하는 것은 어쩌면 잔인한 멘토링이 될 수 있다.(좀 이과 갬성 있었나요? 통제변인이래 크큭)
    아무튼,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진짜 멘토가 되고 싶다면, 자신이 명성을 얻는 대중 강연(대량생산)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 그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어주는 맞춤형(커스텀 제품) 멘토링을 하라는 것이다.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진심을 담아 그 사람의 상황에 맞는 맞춤형 솔루션을 주는 것이다. 멘토링을 할 때도 단정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청유형' 문장으로 "~~~해보는 건 어떨까?", "~~~이런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말해보자. 그리고 마지막엔 항상 "이게 정답은 아니야"라는 말을 붙여주자.
    나는 선택권을 멘토가 쥐는 것보다는 멘티가 쥐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고통을 호소하는 그 사람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사람은 멘토가 아니라 그저 위로가 필요하고, 자신이 갇힌 테두리를 벗어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과 마주앉는 낯설음이 주는 기분 전환이 필요한 것일 지 모른다.
    개똥철학 같은 내 말 역시 정답은 아니다. 그냥 내가 살면서 그런 어른을 만나 보지 못해서 아쉬워서 하는 푸념쯤으로 여기면 된다.
    '나 같이 살아라' 이 말 같이 위험하고 잔인한 말이 있을까. 나는 우리 비글들과 내가 사랑하는 후배, 지인들이 나처럼 어린 시절을 보내길 원하지도 않고, 나처럼 고생고생하며 일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나처럼이라니 세상에 지자스, 고타마싯다르타, 조로아스터, 크리스니타 무르티여 저들을 물리치소서.
    앞으로 우리는 누군가 조언을 구할 때 이렇게 말해보자.
    '내가 찾은 방법보다 훨씬 편한 방법을 찾아봅시다', '최대한 안 아프게 극복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피할 수 있는 것을 일단 적어 보고 이건 피해 갑시다' 라고 말이다.
    온수매트야 너보다 훨~~씬 좋은 코타츠라는 게 있다는 데 우리 같이 타오바오에 들어가서 알아볼까? 거기 들어가면 출근을 못할 정도로 따숩데. 물론 널 버리진 않을 거야. 내 다리랑 머리는 니가 책임져야니까.

#단상 #멘토 #나처럼해봐라요렇게 #코타츠가오면질투하면안돼 #요질투쟁이같으니라고

++어제는 꼭 한번 써보고 싶었던 아빠, 엄마에 대한 글을 썼는데 강철 심장인 저도 하루종일 좀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페친들께 괜스레 멜랑꼴리한 불금을 보내게 한 것 아닌가 반성해 봅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고, 일요일은 휴재 또는 테니스 치다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괜히 꾸준함이 재능이라고 해서 부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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