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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15. 2018

'3류 학벌? 3류 출신?' 그런건 내가 정한다

#단상 #에세이 #3류 #

<1, 2, 3류는 내가 정한다는 것에 대한 단상>

    '힘들 때 울면 3류, 힘들 때 웃으면 2류, 1류는 힘든 거 안 해'

    우스갯소리로 내가 가끔 하는 말이다.

    그런데 할 때마다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기에는 아픈 말이기도 하다.

    힘들 때 울면 왜 3류인가? 그냥 울면 안 되나. 꼭 웃어야 하는 건 아닌데 산타할아버지 기다리는 애들처럼 울면 안 되기라도 하는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3류'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1류는 언감생심에 2류에는 못 미치고, 특별하지도 않고 흔한 그렇고 그런 것' 이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3류의 모습이다.

    잠시 세상적 기준을 빌려와 보자.

    나는 3류다. 

   그것도 아주 흔하고 흔해서 발에 치일 정도니 그냥 45류 정도로 해도 좋다.

    일단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5학년 때 바뀜).

    우리 고향에서 그래도 제법 규모 있는 학교에 다니다가 갑자기 3학년 때 집 앞에 조그마한 학교가 생겨서 전학을 왔다. 베이비붐 세대에서 흔치 않게 한 학년당 반이 3~4개로 편성된 학교였다. 그렇다. 나는 3류 초등학교를 나왔다.

    중학교. 

    집에서 시내버스로 50분. 익산의 끝에서 끝으로 등교했다. 이때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시내버스 맨 뒷자리 앉아서 담배 피우던 방위형아. 나를 무릎에 자주 앉혀 주었다.

    그리고 학교 끝나고 다니던 유도 도장. 하도 키가 작아서 아버지가 도장에 보내줬다. 태권도 도장 보내달라니까 "다 같은 거야"라고 날 속이고 보냈다. 덕분에 학교에서 안 맞고 다녔다.

    고등학교. 

    중3 때 진학 상담하고 온 엄마한테 도끼빗으로 맞은 기억이 있다. 오락실에서 신나게 오락하고 들어왔는데 현관문 쪽으로 빗이 날라왔다.

    "너 이러라고 엄마 고생하는 줄 알앗!"

    엄마는 안 울었는데 내 느낌엔 운 거 같았고, 그 뒤로 코피 쏟아가며 내가 사랑하는 우리 모교에 겨우 턱걸이로 들어갔다.

    수학을 하도 못해 '작도'로 풀었는데 옛 선생님들은 정직하신지 '위 삼각형의 밑변의 길이를 구하시오' 라는 문제를 대충 자로 재서 비례식으로 근삿값을 넣었는데 비례 맞춰서 내셔서 합격했다. 우리 학교는 우리 고향에 있는 3개 인문계 학교 중 공부를 젤 못하는 학교였다.

    대학. 

    인제 그만 이야기하자. 삼수했다.

    대학원. 

    그냥 깔끔하게 포기했다. 어려서 도끼빗 던지던 울엄마가 빗도 못 던질 만큼 기력이 쇠하셨는데 대학원 가서 뭐하겠나.

    직장. 

    삐가뻔적한 직장 때려치우고 기자 한다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서울 사람들 말로 하면 '시골' 기자가 됐다.

    쭉~ 써 놓고 보니 어디 하나 3류가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인생이 보잘것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리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집 앞에 있는 우리 초등학교는 밤늦게까지 내가 뛰어놀던 놀이터가 돼 줬고, 지긋지긋하게도 멀었던 중학교는 유도 도장 같이 다니던 학교 옆 상고 형아들 덕분에 덩치가 유달리 작던 내가 안 두들겨 맞고 무사히 학업을 마치게 해줬다. 또 익산 역전 근처에 있던 학교라 익산 시내 바닥을 이 잡듯이 뒤지고 돌아다니는 신나는 사춘기를 보내게 해줬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고등학교. 

    학생들이 공부를 못했으니 성적에서는 선생님들을 탓할 것이 없다. 하지만 공부 말고 인성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나는 우리 모교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 형편이 좋지 않다고 고깃집에서 우리 식구들이 외식하는 것을 보시면 조용히 나갈 때 계산을 해주시고 가시던 조문찬 스승님, 문제집 남는 거 나한테 버리던 이경근 선생님, 허구한 날 아침마다 집합시켜 좌로 굴러, 우로 굴러 타작마당을 여셨던 우리 송태규 사감 아니 교장 선생님. 

    이제야 말하지만 그냥 좌로 굴러 우로 굴러만 시켰지 8호실 말썽꾸러기들 엇나갈까 봐 밤에 소방호스 타고 PC방 갔던 것은 일언반구 말씀도 안 하시고 괜스레 억센 사내놈들 잡도리만 하셨던 것을 우리도 잘 알았다.

    취업 학원이 아니라 진정한 상아탑이 돼 주었던 어디 시골 분교만 한 이문동 교정. 훌륭한 내 친구들과 이홍규 샘, 박홍서 샘, 구성철 샘, 하남석 형 등등등 인생 선배님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돈 귀신이나 돼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돈은 좀 모았겠지만,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살 뻔했던 나를 세상에 나가기 전에 알토란 같이 예쁘게 깎아 주었다.

    자. 이제 다시 세상의 기준을 벗겨 내고 나를 바라보자.

    내 인생은 3류의 무저갱을 거쳐 왔는가? 

    동문회가 왕성한 초중고를 나오지 못했고, 인 서울 대학이긴 하지만 요새 인기 있는 드라마의 주제인 SKY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서 있던 그 자리는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 '45류'였다. 1, 2, 3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45류'.

    내가 어디에 있든, 세상 사람이 어떻게 나를 규정하든 내가 '45류'면 그만인 것이다.

    세상은 내 껍데기를 규정할 수는 있지만, 그 껍질 안에 있는 나를 연성해 내는 것은 바로 나니까. 

    1류든, 2류든, 3류든 아니면 45류든 내가 정한다.

    비린내 나는 부둣가를~ 내 세상처럼 누벼가며~

    두 주먹으로 또 하루를 겁없이 살아간다~

#단상 #1류 #45류 #내생에봄날은간다 #피아노에도조XX이나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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