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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20. 2018

문송이라고 좌절말고 이렇게 자소서를 써보자

#단상




   "회사에서 어떤 인재를 원할까요?"
    최근 한 후배로부터 뜻밖의 장문의 메일을 받았다. 나이차가 10년 가까이 나는 후밴데 안면이 몇번 있던게 다다. 취업준비 중에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 뒤로 나는 부랴부랴 취업 준비를 시작했고, 매우 운 좋게 입사 시험의 문턱을 넘었다.
    가진 스펙에 비해서는 꽤 좋은 성과를 냈다. 당시 가장 유행하던 전형 중 하나가 자소설(문항당 2천자ㅠㅠ)과 논술시험이었는데 여기서 좋은 점수를 딴 덕을 크게 봤다.
    지금은 양반집 규수처럼 조신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제 잘난 맛에 날뛰던 천방지축 같아서 무슨 되지도 않는 소리를 마구 휘갈기던 때다.
    아무튼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취준생 후배들의 희망으로 떠오르면서 진로 상담을 꽤 많이 했다. 이 친구도 그런 이야길 듣고 연락을 한 모양이다.
    취준생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부탁은 자소서 검토였다. 성장 과정이야 뭐 다 살아온 과정이 다르니 손댈 수 없고, 문제는 입사 각오, 장단점, 자신이 생각하는 인재상과 같은 항목들이었다. 잘 아는 후배들이니 입사 각오와 장단점은 어찌어찌 코치를 해주는데 저 '인재상'이라는 항목은 여간 골치가 아픈 게 아녔다.
    내가 입사하던 때나 지금이나 '인재상' 칸은 지원한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 회사의 인재상을 참고해 거기에 맞춰 소설을 써서 내는 게 대세다. 근데 이렇게 누구나 생각하는 방법으로 그 어렵다는 취업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잘 참았어 경기도 오산 드립 #뿌듯)
    회사가 인재상을 지원자에게 묻는 것은 우리 회사의 인재상에 맞는 사람을 찾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앞으로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갈지, 또 회사 생활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물음이다.
    '인재'(人材),
    한자 그대로 풀어보면 사람+재목. 뜻으로는 재목이 될만한 사람. 다시 재(材)자를 풀어보면 나무 목(木)에 재주 재(才)자가 합쳐진 글자다. 즉, 재주가 있어 쓸만한 사람을 인재라 한다.
    다시 근원적인 물음으로 돌아가 보자. 어떤 사람이 재주 있는 사람인가. 오랜 고민 끝에 당시 내가 내린 결론은 '희소성이 있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다.
    타자기가 처음 등장한 시기에는 타자수는 매우 재능이 있는 사람이자 인재였다. 반면, 활자공은 어떻게 됐을까? 더는 인재가 아닌 사람 취급을 받게 됐다. 현재는 어떤가? 타자를 못 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부분 사람이 컴퓨터 자판을 능숙하게 두드린다. 그럼 이제 타자수는 인재가 아니게 된 셈이다.
    이런 식으로 유추해보면 AI, 빅데이터, IoT 등 새로운 기술을 다루고 익힌 사람들을 인재라 부를 수 있을까. 이들도 결국 머지않은 미래에 타자수마냥 범인(凡人)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문송스러운 인재상에 대해 고민해 봤다. 현대 사회에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윤리적 인간'이다.
    뜬구름 같은 소리지만, 좀 쉬운 말로 풀어보면 '착한 사람'. 현재 내가 사는 세상에 가장 드물고, 영속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인재가 바로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자본주의의 굇수가 된 상황에서 현대인은 옆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내쫓기듯 살아간다. 어려서부터 남을 배려할 여유는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착함'을 추구하다가는 허상을 좇는 바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이런 모든 상황을 이겨내고 용기 있게 착한 성정을 갖춘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가 인재다. 이런 인재는 매우 귀하고, 소중한 존재다. 주변을 돌아보자 착한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는가?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 흔한가?
    무슨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마더 테레사나 간디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씩 선을 행하는 따순사람이 돼보자는 것이다.
    착한 사람은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귀가 있고, 배려하는 손이 있고, 솔선수범하는 발이 있고, 따순 마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옆에서 보면 빛이 난다.
    재능이 없고, 실무능력이 조금 뒤쳐져도 자기를 숙일 줄 알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알고, 배우려고 노력할 줄 안다. 또 리더가 잘못된 길을 걷는 것을 외면하지 못하고 아파하고, 용기를 내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윤리적인 사람이다.
    당신이 경영자라면 이런 인재에게 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는 식으로 써보렴 이라고 메일을 쓴 뒤 그 후배에게 보내주었다.
    메일을 다 쓰고 나는 선배와 후배, 동료에게 착한 사람이었는지 되돌아봤다. 귀와 손과 발과 마음에 떼가 꼈는지 찬찬히 들여다 보고 깨끗이 씻어내고 다시 시작해보자 다짐했다.
    오늘도 쓰다보니 댕댕이 소리의 향연이다. 온수매트는 이렇게 따순 것으로 보니 필시 착한 매트임이 분명하다.
     온수매트 함부로 차지 마라 너희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따순 사람이었느냐.
    취준생들 힘내라 힘!! 아자아자 많이 먹어!

#단상 #자소설 #인재상 #윤리적인간 #착한새럼 #온수매트 #매트인재 #합격하면첫월급내꺼

++여러분 그래도 이과에 가야합니다. 문과 가봐야 SNS 폐인만 돼요.
++아 너무 길어 뺐는데 김상봉 교수님의 <호모에티쿠스-윤리적 인간의 탄생> 꼭 읽어 보세요 인생 책. 담에 포스팅 한번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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