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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15. 2018

재능없는 사람이 재능을 만드는 것에 대한 단상

#단상



    나는 재능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다.
    문송, 이과, 예체능 뭐든 남들보다 느리고, 뒤쳐지는 게 일상인 그런 캐릭터이다.
    뒤쳐지는 게 재능이라면 아이슈타인급 재능을 가졌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언급한 적 있지만, 세상에는 재능에 의해 많은 것이 좌우되는 일들이 많다.
    기자는 그런 의미에서 사실 넓고 얕은 지식만 있으면 밥값은 하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한테 딱 맞는 직업이다.
    물론 기라성 같은 전문기자와 대기자들도 있지만, 내가 그 정도 레벨까지 바라보기에는 이 직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너무 부끄러워 저런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송구하다.
    어제 옛친구와 옛이야기를 오래 나눠서인지 어린시절 내 최대 화두였던 '재능'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살면서 가장 좌절한 때가 언제였던가.
    번번이 모아둔 돈을 빚 탕감하는 데 써야 했을 때, 학교 입학을 한도 끝도 없이 미뤄야 했을 때, 대학원 합격증을 휴지통에 버려야 했을 때, 내 몸이 아팠을 때 이런 순간이 살면서 느꼈던 굵직한 좌절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좌절은 건강관리, 1일 3알바, 진로 변경 등 스스로 결심을 하고 마음을 다잡으면 극복 가능한 고난이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가장 좌절한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넘어 서기 어려운 존재를 마주했을 때였다.
    대학 때 항시 몰려다니던 3명의 친구가 있었다. 지금도 아주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지만, 당시는 뭐 좋은 게 있다고 그렇게도 붙어 다녔다. 

    한 친구는 센스가 남달랐고, 사교성이 뛰어났다. 한 친구는 그냥 천재다. 책을 같이 봐도 한번 스윽 보면 줄줄 외우고, 5개국어를 한다. 한 친구는 나이가 어린데 아주 통찰력이 깊고, 나이에 맞지 않게 신중하다.
    당시에는 나도 나이가 어렸으니 같이 어울리면서도 좁혀지지 않는 갭이 고통으로 다가왔다. 도서관에 처박혀서 자취방에 들어 앉아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저만치 앞서가는 친구들의 등을 바라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진짜 드럽게 재능이 없네'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느 날 문득 아무리 빈대라도 뛰는 재주는 있다는데 뭐라도 찾아보자는 마음에 오기가 생겼다. 몇 날 며칠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결론은 딱 하나 내가 잠이 없다는 것. 원래 그런 것은 아닌데 20대 초반에 고단한 일상이 몸에 배서 생긴 버릇 같은 것이었다.
    그래. 남들보다 들자니까 남는 시간에 뭐라도 꾸준히 하자. 그리고 옆을 보지 말고, 나를 바라보자.
    그때부터 할 수 있는 조그만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미션을 수행했다.
    학점이나 스펙을 쌓기보다는 그냥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했다.
    친구들한테 책을 소개받아 읽고, 영화를 하루 4편씩 보고, 미술관, 음악회를 찾아다니고, 와인, 위스키, 칵테일 등 술을 꾸준히 마셨다.
    1년, 2년, 3년, 4년이 지나고 졸업을 할 때까지 꾸준히 내가 정한 목표를 실천했다. 여전히 그 친구들과 갭은 좁혀지진 않았지만, 여러 지식과 스토리에 대한 감각, 음악을 듣는 법, 그림을 감상하는 법, 술을 즐기는 법 등 잡다한 지식이 생겼다.
    그리고 가장 기뻤던 것은 나에게도 드디어 재능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느 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왜 이렇게 잘하는 게 없냐?"라는 혼잣말을 했는데 한 놈이 "너 그거 잘하잖아. 꾸준히 하는 거" 지나치며 휙 내뱉은 그 말이 내게는 큰 훈장이라도 되는 거 마냥 크게 다가왔다.
    대학 생활 내내 내가 얻은 것은 학식도, 예술적 감각도, 술에 대한 잡스러운 상식도 아니었다. 바로 '꾸준함'이란 재능이 생긴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거북이 독서를 한다. 어려서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은 탓에 300페이지짜리 소설책 한 권을 읽는 데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일주일 안에 읽으려고 노력하고, 공항에서든 사무실에서든 페북을 하는 중간중간이든 책을 옆에 두고 꾸준히 집어 든다.
    기자생활을 시작하고 스스로 정한 목표가 하나 있었다. 매일 새벽 출근과 함께 날씨 기사를 쓰자는 것.
    베이징 생활이 힘들 때면 가끔 전주에서 막내 사건기자를 하던 시절을 떠올려 본다. 새벽 일찍 자전차를 타고 출근해 아무도 없는 기자실 문을 열고 들어가던 그시절. 취기가 가시잖은 채 자리에 앉아 기상청에 들어가 자료를 보고 날씨 기사를 쓰는 그때를 말이다.
    아직 아무 기사도 올라오지 않은 기사 창에 첫 기사를 올리는 그 상쾌한 기분과 뿌듯해하는 그 순수한 내 모습을 말이다.    
    재능이 없다고 좌절감이 든다면, 꾸준히 할 만한 일을 정해보자.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매일 편지를 써도 좋고, 클래식·록·재즈·아이돌 음악 같은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도 좋다. 피규어를 조립하거나 집 근처 미술관에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전시를 보러 가는 것도 좋은 미션이 될 수 있다.
    아니면 나처럼 꾸준히 맛난 음식을 먹어 봐도 좋다.
    앞서 가는 친구의 등을 보면서 좌절하지 말고, 좋은 길잡이가 있어 든든하다고 생각하자. 앞에 가는 친구는 안갯속을 더듬으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느라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모든 재능은 타고난다지만, 꾸준함의 재능은 얼마든지 내가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오늘도 온수 매트는 꾸준히 나의 엉덩이를 덥혀준다. 이런 꾸준한 친구 같으니라고.
    이 정도로 꾸준하게 온수 매트를 홍보했으면, 이제는 연락이 올만도 한데 참 온수 매트 업체들도 꾸준히 외면하는구나.
    오늘도 꾸준히 먹자 먹자 먹자!
#단상 #재능 #꾸준하게먹자 #뭐라도하자죽으면썩을몸뚱이 #온수매트바꿀때가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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