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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Jun 06. 2019

내가 나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고찰

#에세이 

<내가 나를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고찰>

1.

    '개구리 뒷다리와 뱀의 도막'

    사실 이글은 주말 내내 머릿속에 있던 것인데 너무 고어물 같아서 쓰진 않고 있었다.

    오늘은 낮에도 너무 바빠 글 쓸 시간이 없었다. 마침 저녁 약속도 없고 일찌감치 집에 온 김에 기력이 좀 남아 머릿속 문장을 글로 옮겨 본다.

    나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잘 쓰는 주체는 누구일까.

    바로 나(자아) 아닐까.

    내 몸을 일하도록 명령하는 것도 나요, 머리를 써서 정신 노동을 하는 것도 나요, 쉬도록 하는 것도 나요, 장단점을 가장 잘 아는 것도 나다.

    그러니까 나를 가장 잘 알고, 잘 사용하는 주체는 직장 상사도, 아내도, 선생님도, 부모님도 아닌 나인 셈이다.

    그래서 주말에 내가 나를 어떤 식으로 소비하고 있는지 생각해 봤다.

2.

    누군가 나를 움직이게 할 때는 말을 건다.

    일명 '지시'라고도 하고, '권유'라고도 하는 것인데 내가 나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거는지 떠올려 봤다.

    내가 나에게 말을 걸 때는 보통 "야. 힘내봐", "좀만 더 하면 된다", "이런 거를 마무리를 못 하고 낑낑대냐", "이걸 빨리 해야 저거 하지"라는 식의 채근을 할 때가 많다.

    나는 나를 매우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나를 다그치는 방법을 잘 안다.

    몸에 기력이 쫙 빠져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 때도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마무리하는 나만의 비결이 있다.

    비결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것이 그냥 나를 그 상황 속에 던져 넣는 게 전부다.

    뭔가 거창해 보이는 데 사실 스위치를 '딸칵' 올려 거실 등을 켜듯 간단한 동작으로 내 몸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몸이 축 늘어져 못 일어나겠다 싶을 때 그냥 '끙~차' 기합을 넣고 출근을 한다든지, 취재 현장에 낑낑대며 찾아간다든지, 전시장 문턱을 넘는 것을 목표로 무작정 걷는다든지 이런 간단한 행동만 하면 되는 것이다.

    출근한 나는 일감을 보면 의무감에 뚝딱뚝딱 어떻게든 일을 마친다. 취재현장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어디 숨었는지 모를 기운이 솟아 매끄럽게 현장 취재를 마무리한다.

    전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겨우 문턱 넘을 힘만 있었던 게 분명한데도 전시장에 도착하면 엔돌핀이 뿜어져 나오면서 전시장 곳곳을 샅샅이 훑고 다니면서 글감을 떠올린다.

3.

    이건 마치 어려서 과학실 실험 도구에 껍질이 벗겨진 채로 매달려 있는 개구리 뒷다리 같은 것이다.

    무조건 반사라고 하던가? 

    외부에서 어떤 자극을 주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근육 수축을 일으키는 그 개구리 뒷다리말이다.

    또는 머리를 잘라놓은 뱀의 중간 도막 같은 거다. 머리는 이미 잘려나가 없는데도 꿈틀꿈틀 흙바닥에 몸을 부비며 마지막 남은 생명력을 뿜어내는 그 뱀의 도막 같은 그런 것이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매달아 두고 자극을 주거나 도막을 내 바닥에 던져두면 엎치락뒤치락 연신 몸을 비비 꼬며 팔딱거릴 것이다.

    그렇게 지내다가 살갗이 벗겨지고, 피가 다 쏟아져 나와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멈춰서는 거겠지.

    마치 개구리 뒷다리의 근육에 핏기가 다 가시고, 머리 없는 뱀의 도막이 서서히 움직임을 멈추듯이.

4.

    이걸 그만두면 될 터인데 왜 그렇게 제 살을 깎아 먹는 짓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습관처럼 해오던 것이라 그런 것인지, 쉬는 법을 잘 몰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미 인이 박여 마약에 중독된 것마냥 멈출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이런 상태를 '번아웃'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번아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번아웃은 무기력증이 동반된다고 하는데 저 상태에서 나는 꽤 그럴싸한 퍼포먼스를 보인다.

    심지어 전시장에 갔을 때는 굉장히 업이 되고, 훨훨 날아다니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물론 번아웃의 전조 증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뭔가 다르긴 다르다.

    차라리 예선 1라운드부터 준결승까지 내리 연장전을 치르며 올라온 유도 선수가 결승에서 부드러운 동작을 선보이는 무아의 경지에 든 그런 그로기 상태라고 할까.

    아무튼, 나는 이렇게 나를 소비하고 있다. 

    실험실의 개구리 뒷다리처럼, 머리가 잘려 땅바닥에 나뒹구는 뱀의 도막처럼.

#개구리뒷다리와_뱀의도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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