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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16. 2018

해진 옷을 꿰매입는 것에 대한 단상

#단상


    워낙에 옷에 관심이 없다보니 별명이 단벌 신사 아니 단벌 그지다. 패션테러리스트를 넘어서 언제나 같은 옷을 입는다는 뜻에 여고괴담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졸업을 했는데도 항상 같은 옷을 입고 있어 아~~악)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한 옷만 입는 것이 아니라 한 스타일의 옷을 여러 개 사서 깨끗이 빨아 입기 때문에 냄새가 나진 않는다는 점.
    땀이 많은 나는 몇 해 전만해도 4~5월이 되면 유니클로 매장에 가서 남색티를 3벌 정도 사서 작년에 입었던 유니클로 남색티 3벌 중 쓸만한 2벌과 함께 매일 같이 입고 다녔다. 바지는 청바지. 메이커는 안 따지는 데 몸의 구조상 팔다리가 짧아서 닛뽄 스타일의 유니클로가 잘 맞았다.
    오프에서 나를 아는 지인이라면 사진마다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지박령 같은 나의 모습을 잘 기억할 것이다. 문제는 가을 겨울 옷인데 위에 입는 잠바나 코트야 한 벌이면 충분하지만, 나름 챙겨 입어야 하는 출입처를 가거나 행사에 갈 때는 가다마이를 입어야 한다.(가다마이는 뭐 콤비라고도 하고, 자켓이라고도 하는 그 옷)
    주로 현장에서 일하는 막내(언제까지 막내인가ㅠㅠ)이고, 또 책상에 앉아 타자를 치는 일이 많아서 팔꿈치 부분이 쉽게 해지는 일이 많았다. 가다마이는 값이 비싸 몇 벌씩 사기가 그렇다. 매번 해져서 새로 사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해진 옷을 그지처럼 입고 다니기도 그렇다.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궁리하던 중 평소 흠모(?)하던 노신사 같은 선배 한 분이 해진 팔꿈치 부분을 꿰매 입고 다니시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됐다. 높은 연차에도 항시 현장에 나오시고, 취재가 미흡한 부분에 대해 전화를 걸어 물어보실 때도 '정말 미안해 김기자'라고 앞소리를 다시며 예를 차리시는 눈가 주름이 멋진 그런 선배셨다. 그때부터였나 해진 옷을 입는 게 하나도 창피하지 않고 멋져 보였다.
    그후로 허구한 날 터진 바지와 가다마이를 두번 세번 수선해 입고 다녔다. 뭔가 훈장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다 보니 옷 위에 해진 자국마저 멋스러 보였다.(응. 아냐. 거지같아)
    내 몸에는 두 군데 큰 상처가 있다. 하나는 오른쪽 팔목, 하나는 왼쪽 배 아랫부분. 눈에 잘 안 띄는 팔목이야 크게 신경 안 썼지만, 수술 후 배에 상처가 처음 생겼을 때는 사우나에 가는 게 꺼려졌다.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묻는 말에 일일이 대답하기도 귀찮고,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도 싫어서다.
    지금은 다르다. 상처는 잘 꿰매고 치유했을 때 부끄러운 과거나 흉(凶)터가 아니라 훈장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인생도 해진 옷과 같다. 구제 옷처럼 해진 곳을 잘 수선하면 더 밝게 빛나는 멋진 인생이 될 수 있다. 상처란 게 완전히 흔적도 없이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치유하기란 불가능하다. 옷을 덧대는 것처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고, 바늘이 수백 번 왔다 갔다 하는 고통의 과정을 겪어야 할 수도 있다.
    아름다운 상처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난한 반복, 굳은 의지, 주변의 도움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나온 세월이 우리 얼굴과 말과 몸짓에 남듯이 우리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치유의 지난한 바느질을 반복해야 한다.
    글을 쓰는 것이 곧통으로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내 얼굴 한가운데 내천(川)자가 새겨지고, 어느새 내가 쓰는 글들이 꼴도 보기 싫을 만큼 토악질이 났다. 기자란 직업은 그런 토사물 같은 글이라도 매일 손에 들고 대중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 곧통을 감수해야 한다. 너무 고치고 싶었다. 방법을 찾다가 부러 우스갯소리를 하고, 밝은 이야기를 쓰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글이 좋아지고 얼굴이 밝아졌다.
    최근에 타향 생활을 하면서 또다시 쓰레기통에 빠진 거마냥 글에서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공간적 제약이 있어 나는 다시 페북이란 공간으로 나왔다. 매일 같이 실없는 소리, 웃기는 소리를 하고, 좋은 분들과 교류하며 해진 곳을 꿰매고 있다.
    SNS 테라피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역시 멋진 훈장같은 상처가 새로 생길 것 같다.
    새벽에는 글을 쓰지 말아야는 데 온수 매트 바깥으로 나간 이놈의 족발같은 다리 때문에 잠이 깨 이 시간이면 꼭 이런 병맛 같은 글을 잘도 쓴다.  잠깐 누가 족발, 족발 소리를 내었는가. 흐흑흐흑 ㅠㅠ. 이번 귀국길엔 족발을 직접 삶는 법을 배워와야겠다.

#단상 #상처 #를치료해줄사람어디없나 #가다마이 #족발은앞발이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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