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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17. 2018

'중국 간판요리' 베이징덕이 베이징 음식이 아니라고?

#맛객 #베이징덕 #카오야


<베이징덕 특집> 베이징덕이 베이징 음식이 아니라고?

 


    세계적인 중국의 대표 음식으로 정평이 나 있는 베이징덕(카오야·烤鸭). 그 명성만큼이나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요리입니다.

    중국 최고의 베이징덕으로 평가받는 취엔쥐더(全聚德)을 비롯해 다둥(大董), 쓰지민푸(四季民福), 또 베이징덕의 원조인 피엔이팡(便宜坊) 등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베이징덕 유명 브랜드들이 중국인들은 물론 세계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으며 엄청나게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베이징덕의 기원이나 제조방식, 계파별 특징 등은 크게 조명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돼지터리언 총리인 제가 직접 베이징덕의 연원과 종류, 현재의 문파가 갈리게 된 배경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그간 무심코 단체관광을 와서 먹고, 지인에게 소개받아 먹던 베이징덕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이번 <베이징덕 특집> 시리즈는 '베이징덕 제대로 알고 먹자'는 취지로 중국판 <냉장고를 부탁해> 최다 우승에 빛나는 셰프이자 베이징덕 최고 문파 중 하나인 피엔이팡에서 수학하신 안현민 셰프의 도움을 받아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며 작성된 글입니다.

    <베이징덕 특집>은 ①베이징 음식이 아니라고? ②최고(最故)의 베이징덕 ③천하제일 베이징덕대회 등 총 3편으로 연재됩니다.


1편 : '중국 간판요리 베이징덕이 베이징 음식이 아니라고?

2편 : '최고(最故)의 베이징덕' 600년 전통의 피엔이팡

3편 : '베이징덕 삼국지' 천하제일 베이징덕대회




    '베이징덕은 사실 베이징 음식이 아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이건 또 무슨 댕댕이 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베이징덕'이라고 떡하니 이름에 쓰여 있는데 베이징덕이 베이징 음식이 아니라고?

    사실 베이징덕은 베이징 음식이 맞다. 다만, 그 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베이징덕은 중국 문화의 정수인 남방 지역에서 온 음식이다.

    무슨 선문답 같은 소리 그만하고 얼른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하니 콕 집어서 이야기하자면, 사실 베이징덕이란 음식은 명나라 시조 홍무제 주원장이 정한 수도 난징(南京)에서 온 음식이다.

    베이징덕이 베이징에 오기 전에는 지금처럼 오븐 형태의 루(爐.화덕)에서 굽는 것이 아닌 화롯불에 직화로 구운 오리요리였다. 그러니까 난징에서 귀족과 황족들이 먹던 고급 오리구이를 명나라의 이단아이자 상마초이자 또 전쟁의 신인 3대 황제 영락제 주체(朱체<木+隶>)가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면서 함께 북방으로 딸려온 음식이라고 하는 게 가장 맞다.

황건적 두령 출신인 명나라 시조 주원장과 그의 넷째아들인 전쟁의 신  영락제

    주원장의 넷째 아들인 영락제는 명나라의 용맹한 황제로 그는 처음에는 태자의 지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넷째 아들인 그는 당시 몰락해 가던 원나라 몽골족의 공격에 대비해 북방수비를 맡는 연(燕·지금의 베이징 지역) 지역의 연왕(燕王)으로 봉해졌다.

    '왕좌의 게임' 존 스노우처럼 그가 변방을 맡은 이유는 정확하지는 않은 데 아마도 그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확실치 않은 출신 성분 때문에 가장 험지로 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목숨을 잃었던 존 스노우와 달리 타고난 전쟁광인 영락제는 이후 혁혁한 전적을 쌓고 황위에 오른다.

    영락제는 황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친조카이자 명나라 2대 황제인 건문제 주윤문을 뚜까패는 등 4년간의 내전을 치르는 혈전을 벌였다.

    사실 '조카를 죽인 비정한 삼촌'이라는 오명을 쓰기에는 영락제는 억울한 면도 좀 있다.

    1398년 주원장이 사망하고 이제 막 황제로 즉위한 건문제는 힘이 세진 영락제에게 위협을 느끼고, 그를 죽이기 위해 자객을 보내는 등 온갖 암투와 계략을 일삼았다는 설이 있다. 이에 영락제는 시궁창에서 잠을 자는 등 바보짓을 가장해 건문제를 방심하게 하고, 그 틈을 타 힘을 키웠다. 1399년 모든 준비를 마친 영락제는 본국으로 쳐들어갈 준비를 마친 뒤 거병했다.

    뭐 역모의 뻔한 스토리처럼 영락제는 황제를 둘러싼 간신들을 처단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난징으로 쳐들어갔지만, 이 건문제도 황건적의 두령에서 한 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찜한 걸출한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양락제는 거병 초기에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린 건문제에게 떡실신이 되기도 한다.

    간신히 목숨을 건사한 영락제는 다른 세력들과 연합해 4년간 내전을 치렀고, 1402년 6월 난징을 기습 공격해 궁을 탈환하며 황위에 오르게 된다.

     이때 건문제에게 충성한 충신을 비롯해 신하들의 가족과 친인척을 다 죽였는데 이때 '구족을 멸한다'라는 말을 실제로 실행한 것은 영락제의 포악성을 잘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삼촌에게 역관광 당한 명나라 2대 황제 건문제와 드라마 속 정화

    그런데 이러한 노력에도 영락제는 건문제의 시신을 찾지 못했고, 항상 불안 속에 살게 된다. 이때 3500척의 대선단을 이끌고 16년간 동남아시아 말라카, 태국, 인도 캘리컷, 스리랑카, 페르시아 호르무즈, 아라비아 아덴, 아프리카 소말라이, 케냐까지 항해했다고 알려진 정화가 역사 속에서 빼꼼히 얼굴을 들이민다.

    정복왕인 영락제는 해외원정과 보물 수집을 위해 정화에게 항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은 건문제의 컴백을 두려워해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정화를 보냈다는 설이 있다. 참고로 정화는 색목인, 그러니까 이슬람 혈통의 사람이다. 그리고 몽골 세력에 붙어 영락제에 대항했던 운남 출신으로 운남을 함락한 영락제에게 영 좋지 못한 곳을 잘린 사마천과 같은 사람이기도 하다. 크흡 정화 파이어에그 R.I.P ㅠㅠ. 역시 완벽한 노예는 '회색벌레' 같은 거세병 아니 고자들이다.

    이런 일화를 보면 영락제는 역시 상마초 전쟁광이 맞는 듯하다.

    영락제는 황제가 된 뒤에는 사방이 온통 적뿐인 난징을 벗어나고자했다. 그래서 주원장이 정한 수도 난징을 자신의 주무대인 북평(北平)으로 천도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지금의 베이징, 즉 북경이다. 베이징은 이때부터 베이징으로 불렸다.

    지금의 자금성도 이때 현재와 비슷한 모습을 갖췄고, 수나라 수양제 때 건설된 대운하 역시 뚝뚝 끊긴 것을 이때 대규모로 확충했다. 또 북방 수비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영락제는 만리장성 역시 범위를 넓히는 등 개축하기도 했다.

     이런 4대강 같은 대규모 인프라 건설 사업은 예나 지금이나 민심의 불만을 야기하게 되는 모양이다. 영락제는 고율의 세금과 이집트 파라오급 동원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반대 여론에 부딪혀 서서히 힘을 잃게 된다.

     그럼에도 상마초였던 영락제는 죽을 때까지도 몽골 칸을 정벌하러 가는 데 결국 원정길에 고비사막에서 병으로 숨을 거두게 된다.

베이징덕은 60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적인 요리로 인정받고 있다.

    아무튼 영락제가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수도를 천도할 때 이 카오야(구운 오리)도 수도를 따라 베이징에 입성하게 됐다.

    정확히는 1416년 영락제 14년 때의 일이다. 베이징에 온 뒤로 화롯불에 구워 먹던 카오야는 요즘 말로 하면 오븐, 중국 말로 하면 루(爐.화덕)에 굽는 형식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때 처음 베이징덕을 만들었던 곳이 바로 중국에서 가장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최고(最故.오래된)의 베이징덕 브랜드인 피엔이팡(便宜坊)이라는 라오즈하오(老字號)다.

    중국에서는 100년 이상 전통과 역사를 가진 브랜드를 라오즈하오라고 부르고, 이를 국가에서 지정하는데 라오즈하오의 뜻은 '전통있는 노포'라고 생각하면 된다. 라오즈하오 등록을 시작한 초기에는 1600개의 브랜드가 있었지만, 중국 정부에서 재확인 작업을 거쳐 현재는 1000개의 브랜드만 남아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베이징덕 브랜드로 1864년 베이징에 문을 연 취엔쥐더(全聚德) 역시 피엔이팡과 같은 라오즈하오다.

    피엔이팡은 난징의 오리구이를 조금 다른 형태로 변화시켰는데 루에 문을 달아서 굽는 아니 사실 굽기와 찌기(뜸들이기)를 동시에 하는 조리법으로 베이징덕을 만들었다. 그래서 피엔이팡이 사용하는 루에 문을 달아 찌는 방식이라 하여 '먼루'(焖爐)라고 부른다.

    취엔쥐더나 다둥, 쓰지민푸 등은 대부분 청나라 때 만들어진 '과루'(挂爐)를 사용하는데 이 루는 문이 달리지 않고, 오픈된 형태의 모양이다.

베이징덕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피엔이팡의 먼루

    베이징덕을 먼루에서 조리한 것과 과루에서 조리한 것의 차이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먼루는 약간 찌는 조리과정이 추가되고 문을 닫은 상태에서 조리되기 때문에 육질이 훨씬 부드럽다. 반면, 문이 안 달린 과루에서 굽는 오리는 요리사가 눈으로 오리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계속 오리를 돌려가며 조리해 겉을 더 바삭하게 구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두 루의 차이일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먼루의 오리가 바삭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과루의 오리가 육질이 부드럽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냥 상대적으로 그렇다고 이해하면 된다.

    현재 베이징덕 브랜드들은 대부분 과루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일단 먼루보다는 루를 다루는 기술 난이도가 낮고, 사람들이 베이징덕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바삭한 식감을 더 잘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원조를 굳이 정하라면 먼루 방식을 사용하는 피엔이팡으로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다음 편에서는 먼루 방식을 600년째 고수하는 피엔이팡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맛객 #베이징덕 #영락제 #베이징천도 #먼루 #피엔이팡

1416년 창업년도를 적어 놓은 피엔이팡 첸먼점. (왼쪽 귀퉁이에 안현민 세프가 출연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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