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객 #베이징덕 #피엔이팡
세계적인 중국의 대표 음식으로 정평이 나 있는 베이징덕(카오야·??). 그 명성만큼이나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요리입니다.
중국 최고의 베이징덕으로 평가받는 취엔쥐더(全聚德)을 비롯해 다둥(大董), 쓰지민푸(四季民福), 또 베이징덕의 원조인 비엔이팡(便宜坊) 등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베이징덕 유명 브랜드들이 중국인들은 물론 세계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으며 엄청나게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베이징덕의 기원이나 제조방식, 계파별 특징 등은 크게 조명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돼지터리언 총리인 제가 직접 베이징덕의 연원과 종류, 현재의 문파가 갈리게 된 배경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그간 무심코 단체관광을 와서 먹고, 지인에게 소개받아 먹던 베이징덕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이번 <베이징덕 특집> 시리즈는 '베이징덕 제대로 알고 먹자'는 취지로 중국판 <냉장고를 부탁해> 최다 우승에 빛나는 셰프이자 베이징덕 최고 문파 중 하나인 피엔이팡에서 수학하신 안현민 셰프의 도움을 받아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며 작성된 글입니다.
<베이징덕 특집>은 ①베이징 음식이 아니라고? ②최고(最故)의 베이징덕 ③천하제일 베이징덕대회 등 총 3편으로 연재됩니다.
1편 : '중국 간판요리 베이징덕이 베이징 음식이 아니라고?
2편 : '최고(最故)의 베이징덕' 600년 전통의 피엔이팡
'최고(最故)의 베이징덕을 찾아서'
베이징에는 현재 엄청 다양한 베이징덕 브랜드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외국인들에게도 친숙한 브랜드는 바로 '취엔쥐더'다.
베이징 관광명소인 천안문 광장에 가보면 취엔쥐더 천안문점이 있고, 취엔쥐더 본점은 거기서 남쪽으로 약 1.5km 떨어진 첸먼다제(前門大街)에 자리하고 있다.
취엔쥐더는 얼마전 작고한 아버지 부시부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등등 유명인사가 많이 찾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천안문 광장에는 취엔쥐더에서 산 진공포장 베이징덕을 쇼핑백에 담아 들고 다니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것만 봐도 그 명성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1864년 베이징에 문을 연 취엔쥐더는 중국 정부에서 지정한 라오즈하오(老字號·1편 참조)로 베이징을 중심으로 많은 지역에 체인점이 있고, 베이징에만 해도 어마어마한 손님을 받는다.
2010년 기준 1년에 취엔쥐더에서 소비되는 오리 수만 해도 500만 마리가 넘고, 손님 회차수도 5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고용 직원 수만 해도 1만명이 넘는다. 기업가치도 1조8천억원이 넘는 사실 식당이라기 보단 하나의 중견기업에 가깝다.
취엔쥐더는 처음엔 화덕에 문이 달린 먼루(焖炉) 방식에 근간을 둔 카오야(구운오리) 요리를 선보였다. 그러다 나중에는 문이 없는 과루(挂炉) 방식을 채택해 겉이 바삭한 카오야를 주 무기로 해 인기를 끌었다. 이 조리 방식은 국가급 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사실상 베이징덕의 기술 표준이 됐다.
특히 취엔쥐더가 명성을 얻은 것은 중국공산당이 국공내전을 치를 당시 전쟁자금을 댄 것도 큰 이유가 됐다. 취엔쥐더는 나중에 중화인민공화국이 건설되고 은혜 갚은 호랑이마냥 공산당의 지지를 바탕으로 국가가 인정하는 최고의 베이징덕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어쨌든 그 역사와 공산당과의 관계 등을 놓고 보면 취엔쥐더가 최고(最高)의 베이징덕 브랜드인 것을 부정할만한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취엔쥐더를 중국 최고의 베이징덕 을 만드는 식당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솔직히 맛객 입장에서는 이런 대량생산 대량소비형 맛집은 성에 차지 않는다.
너무 상업화된 베이징덕 브랜드를 최고로 인정하는 것이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 나는 취엔쥐더에 필적할만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비엔이팡(便宜坊)을 소개해 볼까한다.
피엔이팡은 <베이징덕 특집> 1편에서도 잠깐 소개했지만, 1416년 그러니까 명나라 3대 황제인 영락제가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겨 올 때 난징에서 귀족과 황족이 즐겨 먹던 오리 요리인 카오야를 베이징에 가져와 베이징덕으로 재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역사만 놓고 보면 6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니 취엔쥐더보다 450년이나 앞서있다. 그래서 최고(最高)는 모르겠지만, 최고(最故)인 것만은 확실하다.
피엔이팡은 아쉽게도 중국공산당의 전쟁자금을 대는데 소극적인 행보를 보였던지 중국 정부의 지원을 취엔쥐더만큼은 못받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취엔쥐더에 밀리게 됐고, 결국 잠깐 문을 닫는 부침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나중에 다시 문을 열고 명맥을 이어가며 현재 베이징 내에 8개 지점을 운영 중이다. 또 전통방식의 먼루를 사용한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허베이나 내몽골 등에도 분점이 생겨나고 있다.
피엔이팡의 먼루방식의 베이징덕 역시 중국 국가급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그 정도로 피엔이팡은 예전 방식을 고수하며 베이징덕 조리법을 전수해오고 있다.
비엔이팡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그 이름 때문에 한 번씩 웃게 되는데 중국어로 '비엔이'는 '싸다', '잘 쳐주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가성비가 좋다는 말로 치환하면 가장 좋다. 보통 한국인 관광객이 좋아하는 짝퉁시장에 가서 상인과 흥정을 할 때 사용하는 용어가 '피엔이디알'(便宜点兒)인데 '좀 깎아주세요'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비엔이팡의 뜻은 '깎아줘 식당' 또는 '가성비 좋은 식당'이 되겠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실제 뜻은 가성비가 좋다는 뜻인 후자다.
비엔이팡이 현재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명나라 11대 황제 세종(世宗·1522~1566)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명대 6대장아니 6대간신으로 불리는 엄숭(嚴嵩)이라는 인물이 악명을 떨치던 때다.
엄숭의 악행을 보고만 있을 수 없던 충신 양지성(楊繼盛)은 엄숭을 간악함을 황제에게 고하다가 역풍을 맞아 벼슬을 잃게 된다. 양지성은 헛헛한 마음에 궁 근처에 있는 차이스커우(菜市口·시장거리)의 쌀시장 후통(베이징의 골목)을 지나다가 우연히 비엔이팡을 보고 들어가게 된다.
비엔이팡의 주인은 다른 손님으로부터 양지성이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이라는 귀띔을 듣고 지극 정성으로 양지성의 주안상 수발을 든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서비스를 받은 양지성은 기분이 좋아져 붓과 벼루, 종이를 가져오라 한 뒤 '이 집은 맛도 좋고, 서비스도 좋다'는 뜻으로 '비엔이팡'이란 글씨를 써준다.
주인도 그 이름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비엔이팡이란 양지성의 글씨로 편액을 만들어 내걸었다.
나중에 양지성은 엄숭에 의해 죽게 된다. 엄숭은 이후 피엔이팡의 편액을 양지성이 썼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 비엔이팡의 간판을 떼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주인은 완강히 반발했고, 엄숭의 사람들은 그 주인을 개 패듯이 패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엄숭의 간악함이 알려지면서 민심이 흉흉해졌고, 결국 엄숭도 실각하게 됐다고 한다.
이름에서부터 라오즈하오의 포스가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전통성은 증명됐는데 맛은 어떠한지 알아보자.
비엔이팡에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느는 이유는 비엔이팡 본점 격인 첸먼점의 명예 셰프인 쑨리신(孫立新) 선생의 공이 크다.
쑨리신 선생은 중국 4대 요리인 산둥요리와 쓰촨요리의 전수자다. 그러니까 이 집에 오면 베이징덕뿐 아니라 아주 수준 높은 산둥요리와 쓰촨요리도 맛볼 수 있다. 이번 특집에 고문 역할을 해준 안현민 셰프가 이곳에서 수학한 이유도, 베이징덕도 베이징덕이지만 쑨리신 선생의 뛰어난 중국 요리를 배울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좀 궁금한 것이 있어야 정상인데 다들 눈치를 챘는지 모르겠다. 이상한 점은 바로 왜 베이징 요리인 베이징덕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산둥요리가 나오느냐는 것이다.
산둥요리와 베이징요리는 사실 부모와 자식 같은 관계다. 베이징 자체 요리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베이징 요리가 중국 4대 요리인 산둥요리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기 때문에 산둥요리 대가의 손맛이 중요한 것이다.
일단 베이징덕을 찍어 먹는 거무튀튀하고 달짝지근한 톈미엔장(甛面醬)도 산둥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산둥 요리의 특징을 꼽으라면 간이 세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산둥이 콩장을 사용한 요리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건너온 자장면에 들어가는 춘장 역시 산둥지역의 콩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
베이징덕을 찍어 먹는 톈미엔장을 보면 콩과 밀가루를 섞어서 발효를 시키는 데 콩만 써서 메주를 만들어 담그는 한국식 된장과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자장면은 사실 산둥요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경인고속도로가 놓일 당시 산둥지역 화교들이 많이 인천으로 건너왔고, 인천에 정착해 한국식 자장면을 만들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전에 한번 포스팅을 한 적이 있지만, 중국에는 한국식 자장면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안현민 셰프의 말로는 산둥지역에서 한국식 자장면과 거의 흡사한 자장면 요리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베이징 요리로 널리 알려진 징장러우쓰(京醬肉絲) 등 많은 베이징 요리가 산둥요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피엔이팡에 오면 베이징덕과 함께 최고 수준의 산둥요리도 즐길 수 있다는 소리다.
다음으로는 피엔이팡의 베이징덕 화덕인 먼루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자. 먼루가 점차 현대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일단 문을 꽉 닫고 오리를 볼 수 없는 상태로 화덕을 운용해야하는 고난도 기술이 가장 큰 이유다. 과루에 비해 조리 성공률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 브랜드는 먼루방식을 포기했다.
두번째 이유는 청나라 때에 들어서면서 베이징덕이 바삭바삭한 식감이 더 맛이 좋은 것으로 대우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베이징덕의 묘미는 바삭한 껍질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비엔이팡의 베이징덕은 겉도 어느 정도 바삭하고, 속살은 정말 부드러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요즘에는 위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문이 없어 화덕 안을 훤히 들여다보면서 오리를 갈고리에 걸어서 굽는 과루를 대부분 브랜드가 선호하고, 취엔쥐더 같은 경우는 몰려드는 손님을 받기 위해서 일부 매장에서는 전기화덕을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먼루와 과루는 배나무와 대추나무 사용해 오리에 나무 향까지 배게 하는 것이 특징인데 전기화덕을 쓰면 이런 깊은 맛이 사라지게 된다.
현재 베이징 내에서 유명한 다둥이나 쓰지민푸도 대부분 피엔이팡에서 갈라져 나가 세워진 분파라고 보면 된다.
비엔이팡은 베이징덕을 싸먹는 방법도 독특하다. 일반적인 대파, 오이, 염장식품, 설탕, 톈미엔장 등이 사이드 쌈재료가 나오는 것과 달리 비엔이팡은 박하잎과 허브같이 향이 강한 채소도 추가로 함께 준다.
이유는 이곳이 중국 관리들 자주 오는 곳으로, 파 같이 입에서 냄새가 나는 재료를 먹을 경우 손님에게 실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재료 배합 역시 쑨리신 선생이 직접 고안한 것이라고 한다.
박하를 넣어서 베이징덕을 먹어 봤는데 정말 잘 어울리고, 오리의 느끼한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역시 멘솔의 위력은 대단하다.
비엔이팡은 오리 절반은 종업원이 직접 싸서 찜기에 주고 나머지는 DIY를 즐길 수 있게 서빙해 준다.
그 밖에 산둥요리들도 모두 훌륭했는데 특히 소고기 마라 볶음은 정말 모두가 극찬할 정도로 맛이 좋았다. 이 소고기는 마치 잘 익은 보쌈고기처럼 부드러웠는데 다 쑨리신 선생의 고기를 재는 기술 때문이라고 한다.
이 집 베이징덕은 모두 채소 물을 이용하는 절임법을 써서 잡내를 잡는다고 하는데 다른 베이징덕 브랜드가 각종 조미료를 사용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천연의 방식을 사용하면서 잡내를 싹 잡아낸다는 것은 신기에 가깝다.
비엔이팡의 매력을 이제 좀 알 것 같나? 나보고 지금 딱 한 군데 베이징덕을 먹을 수 있는데 식당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않고 피엔이팡을 추전할 거다.
다음편은 춘추전국시대 못지 않게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베이징의 베이징덕 브랜드들의 이야기와 베이징덕의 분파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맛객 #베이징덕 #비엔이팡 #취엔쥐더 #전취덕 #최고의베이징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