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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Feb 01. 2019

전주의 손맛은 '저주받은 재능'이 되선 안된다

#맛객 #전주의손맛 #전주맛집

변산 바지락죽

<전주의 맛이 변하는 것에 대한 단상>

    '손맛'

    전주의 맛을 표현하라면 이리 표현할 길 외에는 없다.

    어제 전주에 내려와서 식당 두 곳을 찾았다.

    하나는 정든 고향 같은 전북대 홍보실 식구들을 만났던 역 앞 변산 바지락죽 집, 또 하나는 장모님과 함께 한 옛 시가지에 있는 병어조림 전문집.

    전주의 맛은 손맛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전주의 음식은 이 손맛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우리 지역 어머니들이 하시는 3대 거짓말 중 하나를 소개해본다.

    '미원? 응. 거짓말만큼 넣었어'

    무슨 말이냐면 손맛으로 음식을 90% 완성한 뒤에 조미료에 길든 현대인의 입맛에 조금 더 맞추기 위해 미원을 소량 넣었다는 말이다.

우리집 내 전속요리사 처할머니 노상옥 여사의 손맛

    그런데 문제는 외식이 잦아지는 현대인의 입맛이 점점 미원의 양을 늘리게 되고, 늘어나는 관광객으로 인해 미원의 함량 증가가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들의 손맛은 관광객과 외식족(族)의 입맛을 따라가고 있다.

    결과는 무엇일까.

    '천편일률'

    그렇다. 전주 맛집의 모든 음식 맛이 천편일률적으로 변하고 있다.

    지금이야 화려한 어머니들의 손맛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전주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난 다음 물을 켜는 일이 잦아지는 것은 씁쓸한 현실이다.

    어제 두 식당을 다녀오면서 나는 확실히 느꼈다. 이렇게 가다가는 반도 맛집 1번지의 명성은 이제 다신 찾아 올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부안 변산해수욕장이나 내변산을 가본 사람이라면 변산 바지락죽 집을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특히, 변산에서 나는 바지락을 듬뿍 넣은 죽과 전, 초무침은 그냥 그 자체로 하나의 정식이 된다.

    부안을 벗어나면 어떨까?

    내륙인 전주와 익산에도 바지락죽을 하는 집이 많다. 다만, 바지락이 그 바지락이 아니다.

    변산 바지락이 비싸기도 하거니와 화려한 손맛 때문에 수입산 바지락을 쓰면 되지 굳이 변산 바지락을 쓰지 않고도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손맛이 좋아봐야  변산 갯벌에서 나는 바지락처럼 탱글탱글하고 약간 단맛이 나는 바지락을 따라갈 수는 없다.

    이것이 남도의 음식이 북도의 음식을 앞질러 가는 이유 중 하나다.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면 머리가 너무 좋아서 노력하지 않는 친구들이 반에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이런 친구들은 결국 스스로의 재능에 함몰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북도의 손맛은 바로 이런 저주받은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북도의 식당들은 손맛 때문에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공수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대신 양념과 조리법, 조미료 배합 등을 통해 이를 극복해 내려 한다.

    나는 재능이 있는 친구가 노력까지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들은 피나는 노력을 통해 재능을 꽃피우고 궁극의 영역에까지 들어가는 기염을 토하는데 세상에서는 그들을 '마스터'라고 부른다.

    북도는 음식에 있어서 마스터의 자리를 꿰찰 가장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냥 아무 집에나 가도 집집이 '18번 음식'이 있고, 어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도 필살기 음식이 하나씩 있으니 한반도에서 손맛의 DNA가 가장 풍부한 지역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어제 간 변산 바지락죽 집은 좋은 재료를 엄선하고 공수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바지락전은 내가 여태 먹어 본 전 중에서 가장 맛이 좋았다. 이 식당은 패기 넘치는 젊은 부부가 운영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지만, 손님의 입맛은 맛을 따라오게 돼 있다. 지금은 점심에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북적북적하다고 한다.

    손님들은 손맛이 어마무시한 할매가 수분이 다 빠져 삐쩍 골은 중국산 바지락으로 만든 바지락죽보다는 탱글탱글한 바지락이 듬뿍 들어간 마스터피스를 선택한 것이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면서 면사리가 눈에 띠었다. 가격이 싼 갓뚜기 사리면이 아니라 신라면을 쓰고 있었다.

    일행 중 한 분이 "이거 비싼데 왜 이거 쓰세요?"라고 묻자 젊은 여사장님은 "이게 더 맛있잖아요"라고 답했다.

    이 집이 흥하는 이유는 이런 맛의 추구에 있는 것이다.

    반면, 전주 영화의 거리 끝자락에 있는 병어조림 전문점 향리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일단 죽어가는 옛시가지 상권과 줄어드는 손님 탓에 손님의 입맛에 자신의 손맛을 맞추려는 악수가 반복되는 모양새다.

    어제 먹은 병어조림은 전에 내가 먹었던 병어조림이 아니었다.

    주말이면 관광객이 바글바글한 지역답게 너무 짜고, 간이 셌다.

    먹고 집에 와서 과일을 듬뿍 먹었는데도 자다가 일어나 물을 찾을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음식 맛을 끌고 간다면 머지않아 정말 파리가 날리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실제로 전의 명성에 비해서 저녁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나는 전주의 맛이 나아갈 길이 변산 바지락죽 집 같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관광객의 입맛은 마스터피스가 캐리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는 무리다. 관광객의 입맛은 전주의 맛을 마스터피스로 안내하지 않는다.

    선도 높은 재료를 공수하려는 노력을 남도의 반만 쏟아도 북도는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압도적인 손맛이 훌륭한 재료를 만났을 때 나오는 그 영광의 시절이 되돌아오길 바란다.

    그러면 새만금공항도 넘쳐나는 승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웬만한 데 보다는 훨 맛있음.

#맛객 #전주의맛 #고향의맛돠시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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