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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May 26. 2019

봉준호 감독의 '황금 종려상 수상'에 부쳐

#영화 #봉준호 #팬심


<봉준호 감독의 황금 종려상 수상을 축하하며>


    봉준호 감독의 황금 종려상 수상 소식이 뉴스 포털과 SNS를 가득 메우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다. 배우로는 송강호 배우를 가장 좋아한다.

    두 사람이 함께한 작품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다니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언젠간 타지 않겠나 싶었다.

    팬심으로서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전날의 일탈로 이불을 둘둘 말고 누워있는 와이프를 뒤로하고 침대에서 나와 노트북을 켠다.


    봉준호 감독의 팬이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사실 감독으로서 봉준호 감독을 자세히 보기 시작한 것은 송강호 배우 때문이다.

    연출의 푸른 꿈을 안고 하루에 영화 4편 이상을 보던 대학 시절 우연히 때 지난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게 됐다.

    용의자를 향해  논두렁에서 이단 옆차기를 하고, 조사실에서 수사반장 인트로에 맞춰 눈을 깜빡대던 송강호 배우의 연기를 보다가 이런 재밌는 연출은 누가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를 다시 찾아보게 됐고, 다음 작품인 '괴물'은 손꼽아 기다려서 봤다.

    팽팽한 현처럼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줄을 확 풀어버리는 타이밍을 노린 그의 개그 코드는 플란다스의 개에서 싹을 틔워, 살인의 추억을 거쳐, 괴물에서 꽃을 피웠다.

    그런 것 있지 않나. 코드가 너무 잘 맞아서 무슨 말만 하면 웃긴 사람.

    나에게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헐랭헐랭해 보이는 그의 서사를 얼기설기 풀어가는 소품,  앵글, 배경과 같은 디테일한 장치들은

    '내가 우습게 보여도 호락호락하지 않지'

     라는 기합이 빡 들어간 갭 모에를 느끼게 해 줘서 더 좋았다.


    사실 국내에는 왕가위, 첸 카이거, 이안 같은 홍콩 감독들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미장센을 오마주하는 감독들이 많다.

    70, 80, 90년대 홍콩 영화를 보고 자란 시네 키즈들이니 영향력을 벗어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그들을 모방하면서 비장미만 넘치는 다른 감독들보다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봉준호 감독의 그것이 달리 보였다.

    그리고 내가 영화에서 가장 주의해 보는 '서사'가 좋았다.

    봉준호 감독의 최대 강점은 서사에 있다. 그래서 스케일을 전면에 내세운 그의 영화들은 호평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영화 역정을 보면 각본에 근간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출에는 틈이 있었지만, 각본은 쉬지 않고 쭉 써왔다.

    서사와 텐션의 조절을 통해 맛을 내는 사람에게 과도하게 큰 스케일은 몽골 기마병에게 거추장스러운 중세 기사의 갑옷을 입힌 꼴이다.

    안타깝게도 그게 잘 드러난 것이 '옥자'였고, 반대 포지션에는 '마더'가 있다.

    두 영화를 잘 보면 그가 어떤 연출에 장점이 있는지 잘 드러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흔히 '주제의식'이라고 말하는 건데 뭔가 대의명분을 상정한 영화에서 그는 약점을 보인다.

    그는 오히려 대의명분을 강조하는 영화보다는 세상을 냉소하는 영화에 더 강점이 있는 것 같다.

    이는 중국과 일본간의 스타일 차이로 설명하면 좋겠다. 봉준호 감독은 스케일이 크면서 선이 굵은 대국스러움보다는 아기자기하고 꼼꼼데스한 닛혼스러움이 더 어울린다.


    마지막으로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피씨함에 있다.

    '설국열차'가 바로 그러한 영화다.

    설국열차는 영화계에서 혹평하는 사람과 호평을 하는 사람이 반반으로 나뉜 그런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를 너무 재미있게 봤다. 보는 내내 꿘(운동권) 선배들과 술자리에서 나누던 대화를 고대로 영상 작품으로 옮겨 놓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생각도 나고, 뭔가 정치적 올바름을 이야기하고, 하고, 하고, 하고, 또 하다가 허무로 끝맺는 그 영화의 서사가 좋았다.

    사실 설국열차의 엔딩에서 나는 희망보다 허무를 보았다.

    우리가 기를 쓰고 이루려고 했던 것이 사실은 누군가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것이었고, 그 손바닥을 벗어난다고 해도 우릴 기다리는 것은 눈보라 치는 냉엄한 현실이라는 그런 것.

    그렇게 목놓아 외치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소련의 붕괴로 갈길 잃은 동공처럼 헤매게 됐던 그 허무 말이다.

    그 뒤로 북한의 주체사상을 찾아 떠난 자들과 죽은 자식 퐈이어 에그 만지듯 국제사회주의를 다시 들고 나온 사람과 소련의 혁명은 혁명이 아니었음을 외치는 사람들로 갈려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그 끝이 무언가 장대하거나 장엄한 절경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감독의 냉소가 너무 좋았다.

    봉준호 감독이 가장 강점이 있는 긴장 속 허무가 잘 나타난 영화 아닐까 싶다.


    이번 기생충이란 영화가 어떤 것일지 모르겠지만, 박철현 작가님 말대로 힘을 빼고 특유의 텐션 조절을 통해 피식피식 웃음이 나게 하는 그런 서사 중심의 영화일 것 같다.

    한국에 들어갔을 때 기생충이 꼭 개봉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다시 한번 그의 수상을 축하하며, 그의 페르소나 송강호 배우에게도 축하인사를 전하고 싶다.

    봉준호 파이팅!

#봉준호 #기생충

++다 쓰고 보니 내가 뭐라고 축하를 하고 난리냐 ㅋㄷㅋㄷ. 아 에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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