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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Jun 01. 2019

'익숙함과 낯섦' 그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에 대하여

#에세이 #단상

    'I don't drink coffee I take tea my dear'

    오늘 아침 출근길에 문득 스팅이 듣고 싶었다.

    내가 가장 즐겨 듣는 스팅의 노래는 '잉글리쉬맨 인 뉴욕'이라는 노랜데 낯선 곳에 사는 이방인의 심정을 노래한 가사 말이 참 좋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차를 마시지'라는 도입부부터 두괄식으로 주제가 확 드러나는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짧은 인생이지만 내게 다가왔던 선택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사람은 누구나 살다 보면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돼 있다.

    보통 이런 순간에 우리는 익숙함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내 인생을 되짚어 지금까지 선택의 갈림길에 섰던 목록을 적어 보면, 



    -고등학교 진학 때 애매한 성적 때문에 실업계를 갈 것인가 인문계를 갈 것인가

    -고3 수능을 치고 재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재수를 마치고 교대를 갈 것인가 삼수를 할 것인가

    -삼수 끝에 서울로 대학을 갈 것인가 그냥 교대에 갈 것인가

    -대학에 입학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를 다닐 것인가 바로 입대할 것인가

    -복학을 앞두고 자퇴하고 학원 강사를 계속할 것인가 복학을 할 것인가

    -대학교 4학년 때 대학원을 갈 것인가 취직을 할 것인가

    -안정적인 직장을 계속 다닐 것인가 이직을 할 것인가

    -특파원을 나올 때 지방에서 안락하게 기자생활을 할 것인가 베이징으로 갈 것인가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고민의 순간마다 나는 '익숙함'과 '낯섦', '안락'과 '도전' 중에서 후자를 택했다.

    그만큼 젊었던 것이기도 하고 워낙 새로운 것을 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탓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질질 끌려다니는 가족과 록수를 생각하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선택마다 그래도 크게 후회한 적은 없었다.

    중요한 선택을 한 뒤에는 꼭 스팅의 '잉글리쉬맨 인 뉴욕'을 한동안 들었었다.

    낯선 환경에서 내가 나를 완전히 죽이고 새로운 환경에 모두 맞추기보다는 나만의 개성과 심지를 가지고 곤조 있게 나만의 스타일로 승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샤머니즘 주문 같은 것이었다.


    베이징에 온 뒤로 줄곧 평탄했던 내 생활에 다시금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9월에 임기 연장 건이 결정되면 치열한 고민에 들어가야 하는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임기가 연장되지 않아 내년 1월에 한국에 가야 한다면 나는 두 가지 옵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서울에 남아 다른 환경의 출입처에서 기자생활을 하느냐, 아니면 다시 전주로 돌아가느냐.

    첫 번째 옵션은 그냥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되고, 두 번째 옵션은 전주에 있는 선배들과 작업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1번을 택할 경우 몇 년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중국에 나오게 될 확률이 높고, 2번을 택하면 전주에 그냥 눌러앉아 유유자적하며 인생을 즐길 수 있다.

    또 1번을 택할 경우 마치 수습처럼 새 출입처에서 빡세게 구르며 다시 취재망을 확보해야 하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2번을 택할 경우 그간 단단히 다져온 내 홈그라운드로 돌아가는 것이니 앉아서도 천 리를 보는 게 가능하다.

    안락함과 도전, 익숙함과 낯섦의 선택지가 또다시 내 앞에 온 셈이다.


    이전 같았으면 앞뒤 잴 것도 없이 낯섦과 도전을 택했겠지만, 나이가 들어 총기가 사라진 것인지 자꾸만 익숙하고 안락함을 택하고 싶어 진다.

    또 한편으로는 여기서 'stop'버튼을 누르면 내 인생에서 역주의 시기가 다 끝이 나는 것이겠지? 라는 생각에 뭔가 도태되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고 그렇다.

    건강이 받쳐주지 않으니 자신감이 준 탓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 안에 있는 열정의 불꽃이 사그라지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험을 내 목전에 끌어다 두고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 

    나는 무얼 바라 이렇게 침전하고 있는지 한심하기도 하고, 조금은 성숙해진 것 같아 대견스럽기도 하고 그런 나날이다.

    일단은 오늘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내고 다시 홀로 가만히 생각에 잠겨 보고, 인생의 선후배들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단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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