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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Jun 23. 2019

<석별의 정-기분 좋은 슬픔>

#에세이

<석별의 정-기분 좋은 슬픔>

    '석별의 정(情)'이란 말이 있다.
    애석한 이별의 마음이라고 풀면 될까.
    이렇게 8자로 표현하기에는 조금 더 복잡 미묘하고 소중한 감정인데 글로 표현하기가 어려우니 다들 석별의 정을 나눈 순간들을 떠올려 보자.
    초등학교 졸업식 때 호랑이 같은데 어딘가 모르게 다정다감했던 선생님과 교실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라던지 대학교 때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여러 국적의 학우들과 공항에서 포옹을 나눌 때, 음… 또 결혼식을 마치고 해외살이를 하러 떠나는 누나를 집 현관문에서 배웅해 줄 때.
    이런 이별의 순간에는 무언가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하면서도 맑은 감정의 덩어리가 솟아오른다.
    아마도 떠나는 사람 또는 남겨지는 사람들과 지냈던 옛 경험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기 때문이겠지.
    이별의 순간에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고, 엉엉 우는 사람도 있고, 그냥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사람도 있다.
    뭐가 됐든 눈물 포인트가 되는 지점은 대게 비슷한 것 같다.
    사람의 뇌라는 게 특이한 것이 기뻤던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떠나는 사람과 남겨둔 사람들에게 미안했던 순간을 길게 보여준다.
    기뻤던 순간이 머리를 스치며 기분을 최고조로 올려둔 다음에 미안한 감정이 길고 느긋하게 저만치부터 밀려오면 누구도 배겨낼 재간이 없다.
    그러면 세상으로 나의 감정을 발산하고, 세상의 온갖 삼라만상을 받아들이는 눈을 통해 감정이 튀어나오는 수밖에.
    이때 느껴지는 슬픔은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눈물을 흘리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저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분 좋은 슬픔이랄까.
    그래서 이런 때의 감정을 우리는 석별의 정이라 부른다.
    기뻤던 기억을 지나 혹시나 있었을지 모르는 미안함, 당분간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아쉬움, 이 모든 게 아우러져 애석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감정은 우리가 세상에 치여 괴물로 변해 가는 중에 여전히 인간으로 남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이다.
    그러니까 이런 감정을 피하거나 외면하거나 거부하거나 숨길 필요가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안의 애석함을 상대에게 허물없이 표현하는 게 좋다.
    특히 남자들.
    왜 그런지 우리 사회는 남자들에게 이런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터부시 하는 경향이 있는 데 그런 것을 느낄 때마다 안타까움이 앞선다.
    삭막한 세상에서 가족을 지키고, 세파에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기둥으로 남아야 한다는 강박이 남자들의 눈물을 뺏았아간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본능적으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오늘 베이징에 와서 가족끼리 특히 엄마와 애들끼리 정말 친하게 지내던 식구들이 떠났다.
    함께 말레이시아도 가고, 세부도 가고, 호캉스도 가고 그래서 그런지 집 앞에서 공항 가는 밴에 짐을 실어 주는 데 주마등이 내 머리에도 스쳐 지나갔다.
    애들과 엄마들이 너무 엉엉 울어 버리길래 한 발짝 뒤에 떨어져서 묵직하게 올라오는 감정을 정말 맛 좋은 양식집 수프 음미하듯 음미해 봤다.
    여름이라 그런지 햇살도 따스하고, 애들과 엄마들이 엉켜서 눈물 흘리는 장면을 바라보니 맘이 따숴지고, 이번 주 내내 격무에 시달린 몸이 힐링되고 참 좋았다.
    이런 석별의 정을 느끼는 순간을 내 마음대로 만날 수는 없지만, 바쁘게 살다가 우연히 만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런 순간이 있다면 이렇게 가만히 마음을 열고 즐겨보면 어떨까.
    잘 가 민제야. 이제 삼촌한테 아빠라고 안 부르니까 서운하더라.
    한국 가서 만나자.
#석별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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