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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Aug 04. 2019

아흔 인생, 그 쓸쓸함에 대하여

#노년

<아흔의 인생, 그 쓸쓸함에 대하여>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말을 한 번씩 되뇌어 보자.


    '우린 모두 늙는다'


    나이를 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상히는 알 수 없지만, 무척 외로워진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것 같다.

    이번 휴가 때 아흔셋, 아흔 되신 양가 할머니들을 보면서 '외로움'이란 말을 온몸으로 형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어 간다는 것, 주변에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 그렇게 홀로된다는 것은 도도한 세월의 흐름과 같은 것이겠지.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길에 혹시라도 후회될까 아이들 손을 잡고 할머니 병실에 들른 아내를 보며, 그리고 황달기 가득한 얼굴로 병상에서 그들을 맞는 노상옥 여사를 보며, 또 치매로 가장 아끼던 아들과 손주도 못 알아보던 우리 할머니를 보며, 쓸쓸한 노년에 대해 생각해 봤다.


    양가 할머니는 닮은 점이 참 많다.

    일찍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몸으로 어려운 가정을 일으킨 철의 여인들.

    집안에서 공적 순으로 줄을 세우면 맨 앞줄 아니면 적어도 그 바로 뒷줄에는 서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로는 참으로 외롭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할머니들을 꺼리고, 부담스러워 한다.

    떨어져 지내면 안타깝고, 안쓰럽지만, 막상 마주하고 있노라면 성가시고, 귀찮다는 감정이 먼저다.

    아무 걱정 없이 제 하고 싶은 대로 천방지축 뛰노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너나 할 것 없이 "예쁘다, 예쁘다"하며 온갖 애정을 쏟지만, 온몸으로 가정을 지탱해온 그들이 기댈 곳은 한 뼘 조그마한 공간도 남아 있지 않다.

    세대가 이어져 내려간다는 이치가 그러하니 누구를 탓할 필요도 원망할 필요도 없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면 할머니들은 세상을 떠날 테고, 우리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평소처럼 밥을 먹고, 학교에 가고, 직장에 다니고, 주말엔 외식도 하고, 가끔은 여행을 떠날지도 모른다.

    그러곤 이따금 할머니들을 그리워하고, 눈물을 흘릴 것이다.

    누군가는 죄스러움에 큰 울음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할머니들을 반기지도 찾지도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할머니들의 세상이 한기가 뼛속 깊이 스미는 겨울 방죽이나 다름 없어 보였다.

    그저 다 죽어가는 억새대만 찬바람에 삐걱삐걱 흔들리는 그런 쓸쓸한 풍경의 방죽인 것이다.


    옛 어른들이 가끔 상갓집에서 이런 말을 하시곤 했다.

    "참. 이렇게 가시려고 그렇게 모질게 정을 떼셨나 보다"

    나는 할머니들의 노년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남겨진 자들의 변명이었구나'

    정을 뗀 것은 떠난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귀찮아한 남겨진 사람들이었다.

    할머니들을 보다가 이어령 선생의 <정말 그럴 때가>라는 시가 떠올랐다.

    이 시의 가장 시린 부분인 2연을 옮겨본다.    


    「누가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도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노엽고 외로운 때가 있을 겁니다」


    왜 이 시가 떠올랐는지 나도 잘은 모르겠다.

    아마도 노상옥 여사에게 병문안을 가서 "할머니 괜찮으세요?"라고 물었을 때 할머니가 눈물을 왈칵 쏟는 모습이 한없이 외로워 보여서 그랬을까.

    나이가 들면 그냥 노여움에 가까워진 외로움을 녹일 "괜찮아요?"라는 질문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나도 잘 못 하고, 당신도 잘 못 하는 그 말,

    "괜찮아요?", "아픈 데는 어때요?", "잘 지내시죠?", "한번 갈게요", "지금도 예쁘세요"

    라는 그 말을 지금이라도 건네 보자.

    나중에 지나고 나서,

    "그립습니다", "죄송합니다", "거기서는 평안하시죠?", "나중에 그곳에서 꼭 만나요", "그때 참 예뻤어요"

    라는 후회의 말이 남겨지지 않도록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늙는다. 또 우리 모두는 늙고 나서야 노년의 쓸쓸함을 사무치게 온몸으로 체감한다.

#노년 #쓸쓸함

++책은 이번 휴가에서 유일하게 샀던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라는 책. 글과 시가 너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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