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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Aug 12. 2019

<'내 영혼의 간식' 누나의 떡볶이>

#떡볶이

사진 : 박혜원

<누나의 떡볶이>


    '떡볶이 함부로 욕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소울 푸드였느냐'


    용암같이 뽀골뽀골 진득하게 끓는 빨간 떡볶이 국물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따뜻해진다.

    물론 엄청 먹고 싶기도 하지만, 그냥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고 할까.

    떡볶이를 예찬하는 글은 차고 넘치기 때문에 굳이 쓸 생각을 안 했는데 요 며칠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떡볶이 사진을 보니 옛 향수에 젖어 꼭 글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영혼의 떡볶이는 하나다. 


    바로 '누나의 떡볶이'.


    예전에 단칸방에 살 때 엄마가 늦는 날이면, 누나는 가끔 스뎅 냄비에 떡볶이를 만들어 줬다.

    누나가 떡볶이를 만드는 내내 부엌 가스레인지 옆에 서서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지켜보다가 마침내 떡볶이가 완성되면, 방에 굴러다니는 보라색인지 파란색인지 애매한 색의 탐구생활을 냄비에 받쳐서 둘이 머리를 맞대고 먹었다.

    고추장 소스가 유달리 매웠던 우리 집 떡볶이를 누나와 호호 불며 먹었던 기억은 아직도 떡볶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이다.

    누나가 멀리 시집가기 전까지는 가끔 떡볶이를 얻어먹곤 했는데 그 뒤로는 엄마가 하든 내가 하든 와이프가 하든 그 맛은 안 난다.


    지금 언뜻 생각나는 이미지대로 레시피를 떠올려보면, 

    누나는 고추장을 꽤 걸쭉하게 풀었던 것 같다. 떡은 설에 뽑았던 가래떡을 이용했던 것 같고, 형태는 얇게 썬 것을 쓸 때도 있었고, 일반적인 기다란 모양일 때도 있었다.

    마늘이 꼭 들어갔던 것 같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국물용 멸치를 육수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떡볶이랑 같이 넣어서 만들었다.

    누나는 대파도 꼭 넣었는데 어려서 나는 파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파 머리인 흰 부분을 떡으로 잘못 알고 가끔 씹는 때가 있어서 기억이 선명히 난다.

    맛은 좀 짜고 매웠던 것 같은데 먹고 나면 머릿속에서부터 땀이 뻘뻘 났다. 네 살 터울인 누나 인중에 맺힌 땀방울이 기억나는 걸 보면 누나 입맛에도 꽤 맵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가끔 계란을 삶아서 넣기도 했고, 오뎅이 없으면 그냥 떡만 가지고 만들기도 했다. 

    구성물이 어떻게 되든 양념 맛은 그대로였는데 지금도 맛이 고스란히 생각날 만큼 맛이 좋았다.


    맛을 설명하고 싶어도 요즘에는 잘 없는 맛이라 예를 들기가 참 어렵다.

    그러니까 어떤 맛이냐면, 일단 색은 엄청 빨갛다. 보기만 해도 매움의 포스가 느껴지는 그런 비주얼이다. 

    그런데 얼른 집어서 한입 넣으면 의외로 단맛이 먼저 올라온다. 아마도 우리 집 고추장에 넣는 찹쌀이 달짝지근한 맛을 내서 그런 맛이 났던 것 같다.

    단맛이 입맛을 돋우면서 침샘을 자극하면 뒤따라 오는 '화이어~~'.

    얼마나 매운지 누나와 아카펠라 하듯 '스읍-씁'소리를 번갈아 가며 냈다. 그래도 멈출 수 없는 그 맛이라니.

    입맛이 예민한 나는 떡볶이를 삼키면 따라오는 멸치 똥 맛을 가끔 느꼈는데 아마도 누나가 귀찮은 날은 국물 멸치 똥을 제거하지 않고 통째로 넣어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생각나는 게 누나랑 평소에 투닥투닥 엄청 다퉜는데 떡볶이 먹는 날은 누나 말을 잘 들었다.

    요새 부쩍 생각나는 누나의 떡볶이가 무척 그립다.

    오늘 저녁은 떡볶이로 해야겠다.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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