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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Aug 05. 2019

아비정전·중경삼림으로 본 홍콩시위

#홍콩

<내 맘대로 리뷰> 아비정전·중경삼림으로 본 홍콩시위

    '그들은 왜 거리로 나왔을까'
    아비정전에 이어 중경삼림을 봤다.
    왕가위 감독은 천재가 확실하다.
    영상미, 연출, 스토리, 캐스팅 이런 걸 다 떠나서 그냥 흡입력, 그리고 은유와 상징이 최고인 것 같다.
    장국영 형님이 주연한 아비정전에 이어 중경삼림으로 이어지는 왕 감독의 하이 커리어 라인은 따라올 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작들이다.
    개인적인 역량 못지않게 이런 수작을 잉태해 낸 공은 아무래도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 사람들의 불안감과 세기말이라는 기묘한 시대적 배경에 있지 않을까.
    이제 와 이런 때 지난 영화를 관 속에서 끄집어내서 리뷰까지 쓰고 앉아 있는 이유는 현재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위에 연대와 지지를 보내고자 하는 대의명분 때문은 아니다.
     그저 중국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그들을 좀 더 이해해 보자는 취지가 더 맞겠다.

중경삼림의 한 장면. 누가 홍콩이고 누가 중국일까.

    1997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 사람들의 불안감은 아비정전에  나타나 있다.
      애정결핍의 아이콘인 장국영은 자신을 낳아  어머니(영국) 찾아 필리핀에 찾아갔다가 자신을 외면하는 모습에 실망해 끝내 얼굴을 보이지 않고 뒤돌아 나온다.  후에는 괜스레 불법 여권을 만들어 주는 필리핀 갱단을 건들었다가 기차에서 총에 맞아 죽음을 맞는다.
    그의 양어머니(중국) 술에 찌들어 살며, 친모가 보내 주는  양육비로  남자  남자를 만나며 지낸다. 그야말로 무책임한 부모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런 양어머니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모습은 개혁개방 시기 중국을 걷어 먹이는 홍콩의 모습과 닮았다.
    장국영이 영화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읊어 대는 죽어서야 땅에 내려앉는 ' 발이 없는 ' 바로 홍콩을 상징한다.
     감독이 이런 것을 의도하고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가 홍콩 사람이고 홍콩 사람의 정서를 대변하는 예술가였다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런 정서가 작품에 자연스럽게 배어났을 것이다.

아비정전의 명장면-장국영의 맘보씬

    1995년 제작된 중경삼림은 5년 앞서 제작된 아비정전보다는 조금 밝은 분위기를 띠긴 하지만 여전히 세기말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어딘가 모르게 나사가 빠져 있는 듯한 젊은 사람들의 모습,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통해 반환을 2년 앞둔 홍콩 사람들의 불안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임청하가 노란 가발과 선글라스를 쓰고 분한 마약 중개상은 자신을 속인 마약상을 총으로 쏴 응징한다.
    왕 감독은 임청하를 통해 아편전쟁의 가해자이자 홍콩을 동양도 서양도 아닌 끔찍한 혼종으로 만든 서양세력(영국)으로부터 홍콩이 벗어났다는 것을 은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임청하는 언제 비가 내릴지 언제 해가 뜰지 몰라 레인코트와 선글라스를 함께 입고 끼고 다닌다고 말한다.
    이 대사 역시 왕 감독이 의도했든 안 했든 어느 손에 이끌려 유린을 당할지 모르는 홍콩의 처지와 그 와중에 적응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홍콩의 자아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

바의 주인을 총을 쏘는 임청하

    중경삼림은 두 남녀의 스토리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작품이다.
    그중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양조위와 왕페이 스토리는 해피엔딩을 암시하며 끝이 난다.
    강제로 끼워 맞춘듯한 이 결말을 보면서 코앞으로 다가온 홍콩 반환에 대해 홍콩인들은 그래도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쥐어짜 낸 희망에서 느껴지는 참담함. 그게 이 영화의 결론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영화에서 시종 밝은 톤의 OST가 흘러나옴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를 암울한 정서가 뿜어져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왕 감독의 후속 영화인 화양연화도 엇갈린 인연, 기다림을 상징하는 시계, 이뤄질 수 없는 양조위와 장만옥과의 관계 등이 홍콩과 중국의 관계를 상징하는 메타포일지도 모른다.


    그 뒤로 20여 년이 지났다.
    중경삼림 엔딩에 나온 바람과 달리 안타깝게도 오늘날 홍콩에는 해피엔딩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반환 당시보다 더 암울한 현실과 불안감만이 있을 뿐이다.
    종말의 모래시계 속에 떨어지는 모래를 가만히 바라만 봐야 하는 홍콩 사람들의 우울감과 절규는 그대로 시위 행렬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불안감은 반환을 경험한 기성세대보다 젊은 세대에게서 더 크게 돋아나고 번식해 가고 있다.
    1997년 중국은 홍콩을 반환받으며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약속했다. 단, 50년 동안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이제 앞으로 27년 후인 2046년이면 홍콩의 독립적 지위의 향배는 중국 손에 떨어진다.
    지금 시위대 앞줄에 선 젊은이들이 사회의 중추가 되는 바로 그때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왜 그들이 입법부와 경찰본부, 중앙정부 기관, 중국 국기를 공격하는지 두 영화를 보며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기를 바란다.
#내맘대로리뷰 #아비정전 #중경삼림

홍콩 시위대가 훼손한 중국 휘장과 오성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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