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권태는 어디서 오는가?>
'권태기가 왔다'
우리는 따분함, 지겨움,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움 같은 감정이 생길 때 '권태기가 왔다'는 말을 한다.
이런 감정은 사람마다 찾아오는 주기가 다른데 뭐든 쉽게 싫증을 내는 사람은 기간이 짧고, 반대로 단조로운 패턴을 잘 견디는 사람은 길다.
내 경우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는 권태기가 찾아오는 기간이 긴 편인데 특정 상황에 대해서는 미치도록 짧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싫증을 느끼거나 하지 않지만, 그 사람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상황이나 장소, 대화 등이 일정하게 고정되는 것은 참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권태는 왜 찾아오는 걸까?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권태가 대상에 대한 증오나 미움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권태로움은 미움이나 증오에서 오는 게 아니라 권태를 느끼기 때문에 대상이 밉거나 싫은 것이다.
한마디로 선후 관계가 바뀌었는지 모르고 우리는 착각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셈이다.
그럼 도대체 권태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익숙함'이다.
사람은 익숙한 것을 편안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따분해한다.
이 따분하다는 감정은 무엇일까?
따분하다는 것은 대상의 행동 패턴이나 예상 진로가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움직일 경우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감정이다.
뭔가 신선한 자극이 하나도 없이 몽글몽글한 상태의 대상을 바라보면, 익숙하면서도 때론 답답함을 느끼고, 가끔 바이오 리듬이 나쁜 날에는 화까지 치민다.
익숙함이 만들어낸 폐해인 권태는 당뇨같이 '침묵의 살인자'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사실 인간관계가 틀어지는 이유는 다툼이나 갈등 같은 특별한 이벤트보다는 이 권태라는 익숙함이 주는 허리춤을 지긋이 누르는 이물감 같은 감정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대상이 익숙해지면 무엇을 하든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고, 내 일상을 둘러싼 배경의 하나처럼 하찮게 느껴져 함부로 다루기 일쑤다.
그러다 보면 대상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되고, 점점 소홀해지면서 멀리하게 되고, 어느 순간 존재 자체를 잊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익숙한 대상이 권태를 피하고자 '이상 행동'을 하게 되면 그건 그거대로 짜증을 유발한다.
우리가 흔히 내뱉는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라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에 쓰인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경우에 익숙함의 굴레가 한번 씌우면 이를 벗어나기 어렵다.
아무리 애를 써봐야 익숙하거나 아니면 이상 행동으로 인지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익숙함은 관계를 파국으로 이끌면서 비극으로 끝을 맺게 된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파국의 끝에 서고 나서야 익숙함을 잃은 것을 실감하면서 후회가 물 밀듯 밀려오게 된다. 그래 봐야 이미 익숙함은 우리 곁을 떠난 뒤다.
익숙함은 사실 미움이나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오래 두고 입는 옷처럼 내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꼭 필요한 역할을 감당해주는 소중한 것이란 것을 우린 항상 뒤늦게 깨닫는다.
익숙함이 있어야 또 새로운 것을 만나고, 삶이 굳건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는 자명한 진리를 우리는 망각하고 사는 것이다.
사랑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것에 권태를 느끼기보다는 익숙할 때 편안함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항상 이 권태의 권능 앞에 무릎을 꿇으니 이런 글이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얼마 전 가볍게 여겼던 호텔 조식아.
요새 네가 너무 익숙해졌었나 봐. 배고프게 당직을 서고 있으니 함부로 대했던 네가 너무 그립다.
#권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