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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11. 2019

강풍이가 사라졌다...아버지는 넋을 놓으셨다

<강풍아 돌아와> 효자 막내 강풍이


    강풍이가 사라졌다.

    이틀 전 밤에 줄이 풀려 집을 나간 지 꼬박 사흘째인데 산에 들어가 다치기라도 한 건지 소식이 없다.

    강풍이를 기다리느라 아버지는 요 며칠 한숨도 못 주무셨다.

    그 심정 이해가 가는 것이 강풍이가 어떤 애인가.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개를 한 번도 끊이지 않고 키우셨다.

    셰퍼드부터 진돗개, 풍산개 같이 대형견만 키우셨는데 아파트로 이사 온 뒤에도 시골 할머니 댁에 개집을 크게 지어두고 풀어 키우실 정도로 개를 좋아하셨다.

    할머니가 몸이 아프셔서 시내로 나온 뒤로는 원래 있던 풍산개 6마리를 다른 집에 보내고 되게 마음 아파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5년 전쯤 아버지는 직장에 악성 종양이 생기셨고, 휴양차 치료차 대학 동기인 한 아저씨의 소개로 목포 외딴집을 얻어 내려가셨다.

    공기 좋고,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여 경치 좋은 곳이었지만, 인적이 드물고 그나마 동네에 아는 사람이라곤 없던 아버지는 목포 집에서 지척인 진도 오일장에 가서 장이 파할 때까지 주인을 못 만나고 있던 풍산개 강풍이를 데려오셨다.

    하기사 진도장에서 진돗개를 사지 누가 풍산개를 사겠나.

    아버지는 낯선 곳에 혼자 사니 집도 지키고, 외로움도 덜고, 소일거리로 산책을 시키며 몸도 움직이려는 생각에 강풍이를 들인 듯했다.

    그렇게 강풍이는 아버지의 막내아들이 됐다.

    둘은 매일 새벽에 동네 뒷산에 오르고, 낮에는 강으로 논으로 동네 산책을 빠짐없이 다녔다.

    시골이라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산짐승이 많았지만, 강풍이는 아버지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보디가드 역할을 하며 동행했다.

    아버지도 강풍이가 있어 적적하지 않았겠지만, 강풍이도 다른 개들에 비하면 주인과 온종일 들과 산으로  다니며 행복한 견생을 누렸다.   

    족보 같은 거 따지지 않고 데려온 애 치고 어찌나 영민한지 가끔 아버지가 강풍이 자랑을 하면 이게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정도였다.

    강풍이는 가끔 아버지 없이 산에 들어가 새며, 토끼며, 들쥐며 닥치는 대로 잡아왔다. 외모도 개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늠름하고 잘 생긴 미견이다.

    그런 강풍이는 식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아버지에겐 가족이자 친구이자 자랑거리였다.

    아버지는 잘생긴 강풍이 덕에 개 이야기를 하며 동네 사람들과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진도 근처 동네다 보니 그쪽 사람들은 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가끔 집을 나가 속을 썩일 때도 있었지만, 하루를 넘긴 적은 없었고, 새벽 등산 전에는 꼭 돌아와 아버지 곁을 지켰다.

    남의 손을 안 타고 아버지가 주는 밥만 먹어서 우리가 가끔 중국에서 한국에 다녀갈 때도 아버지는 새벽 일찍 강풍이 산책을 마치고, 밥을 준 뒤 전주에 오셨다가 저녁 늦게라도 목포로 돌아가셨다. 차로 3시간이 넘는 길이었지만 강풍이 생각에 꼭 목포로 돌아가셨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보는 손주들을 두고 강풍이 때문에 목포로 가시는 게 야속했는데 아버지 입장에선 4년 넘게 아픈 당신 옆을 지킨 강풍이나 아들, 손주가 큰 차이 없었을 것이다.

    예전부터 개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저렇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강풍이가 처음이었다.

    목포 집을 정리하고 익산으로 건너오시면서도 난생처음 대형 케이지를 사서 강풍이와 강풍이 동생 태풍이, 막내 진돗개 태양이를 이삿짐 트럭에 태워 오셨다.

    케이지가 낯선 강풍이가 힘으로 케이지를 부수고 나와 이삿짐이 다 풀어져 고속도로에 나뒹굴었는데도 아버지는 화 한번 내지 않고 강풍이를 먼저 챙겼다.

    새로 이사한 익산 동네도 뒤에 산이 있고, 강풍이랑 동생들이 뛰놀 넓은 마당도 있어 아버지는 매우 흡족해하셨다.

    그런데 새집 살림을 막 시작하자마자 강풍이가 사라져 버렸다.

    제 발로 나갔는지 누군가 데려간 건지 바깥에서 사고를 당한 건지 알 수가 없어 아버지는 더 속이 탔다.

    강풍이를 잃어버린 아버지는 식사도 못하고 잠도 못 주무시고 넋을 놓으셨다. 

    날도 차서 어디서 추위에 떨진 않을까, 못 먹고 배를 곯으며 헤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다.

    "개 오래 키우면 영물 돼서 사람 홀려 못 쓴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시더니 이미 강풍이는 아버지의 마음을 홀린 지 오랜 것 같다.

    내가 아버지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순 없지만 군대 간 자식 기다리는 마음보다 더 애끓는 심정이지 않을까.

    강풍아 어서 돌아와라. 

    형이 이번에 한국 가면 목줄도 더 편한 거로 사주고 간식도 사줄게. 

    늬 아버지 병나시겠다. 어서 돌아와.

#강풍이


++강풍이가 사흘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인근 공장에서 주인 있는 개 같다며 임시보호해주고 계셨데요. 지구대 경찰관 분들까지 나서서 CCTV 확인해 겨우 찾았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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