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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25. 2018

"또 샀어?" 구박에도 내가 그림을 자꾸 사는 이유

#단상

<또 샀어? 자꾸 그림을 사는 나에 대한 단상>


    '또 산 거야!'


    웬만한 건 사지 말자는 주의인 내가 유일하게 덜컥덜컥 사는 물건 종류가 몇 개 있다.


    책, 음식, 그림.


    더 있을 수도 있는데 지금 생각나는 것은 이 세 가지 정도다.

    책과 음식은 이미 여러 차례 모두가 알 정도로 자주 언급을 했기 때문에 굳이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림은 의외의 품목일 거다.

    그림을 산다고? 부잔가? 할 수 있겠지만,

    우리 집 재정은 마이너스와 플러스 경계를 확 넘어 서지도, 팍 떨어지지도 않는 그 어딘가 쯤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림을 사지?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비싼 그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을 봐 두었다가 사거나 아니면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사두는 편이다.

    문제는 걸 곳이 없기 때문에 많이 보유할 수 없다는 것. 그럴 때는 '돌려 걸기'를 하면 된다.

    주변에 그림을 사지는 않지만 집이 큰 사람, 혹은 그림을 취미로 배우는 사람, 아니면 그림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눈 여겨 뒀다가 그 집에 그림을 맡기 거나 선물한다. 그리고 그 집에 찾아가서 그림을 보는 그 재미란.

    이런 짓을 하다 보니 와이프의 '또 산 거야!'라는 소리가 나오면, 잠시 몸을 피하거나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헤헤, 헤헤'거리며 동네 바보로 변신해 방어에 나선다.

    그러면 그림을 왜 사는 건가? 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내가 그림을 사게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그림이 주는 '영감의 에너지'를 좋아하고, 동경하고, 아끼기 때문이랄까.

    대학 시절과 막 직장에 다닐 무렵 한참 그림을 보러 다녔다. 샤갈전, 루소전, 신인작가전 등등등 시립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인사동의 거리를 쏘다니고, 전주에 내려와서 문화부 출입을 겸했을 때도 전주 시내 예술회관이나 도립미술관, 갤러리 카페 등을 다니며 그림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했던 이유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 개인에 대한 존경보다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혼이 담긴 듯한 기운이 좋아서였다.

    나는 음악가나 소설가, 사진작가, 화가 같은 예술가 중에 화가가 가장 고통스럽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자신의 마음과 머릿속에 있는 영감을 끄집어내서 가장 직관적인 감각인 시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마치 영혼을 갈아서 작품에 쏟아 부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그림을 볼 때 항시 '아. 좋다'라는 감탄 뒤에 '진짜 그리다가 죽고 싶었겠다'라는 안쓰러운 생각이 따라 나온다.

    신혼여행을 극구 유럽으로 가고 싶다던 와이프를 따라간 프랑스 루브르에서 인파에 둘러싸여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봤을 때도 그랬고,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샤갈전에서 '파란집'을 봤을 때도 그랬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루소의 '뱀을 부리는 주술사'를 봤을 때도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해도 그림을 굳이 왜 사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가서 보면 되지 왜 굳이 사야 하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일단, 한번 사보세요'로 하고 싶다.

    내가 그림을 처음 산 것은 불과 5년 전이다. 막 처가살이를 끝내고 지금 전주에 있는 아파트에 입주를 앞둔 시점이었는데 와이프가 전자 제품이랑 가구를 마구 사들이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 소비 분위기에 편승해 '나도 하나 사고 싶은 거 있는데'라고 슬쩍 말을 꺼냈다.

    원체 뭘 사질 않는 편인 내가 무언가를 사고 싶다고 말하자 와이프도 자기 것만 사서 미안했는지 저 인간이 뭘 사나 흥미가 생겼는지 흔쾌히 허락해 줬다. 나는 무엇을 살지는 말해주지 않고, 일단 정해지면 이야기를 하겠다고만 일러두고 빠꾸 없는 특유의 실행력을 동원해 행동에 나섰다.

    그때부터 지역 문화부 출입 선배들에게 어떤 그림을 사야 좋을지 물어보고, 그림을 직접 그리시는 처작은엄마에게 조언도 구하고,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전북대 갤러리, 시내 갤러리, 인사동 갤러리를 휘휘 돌아다니며 '하나 걸리기만 해라'하고 다녔다.

    그러다 한 선배에게 추천 받은 작가님이 내 출입처 근처 예술 카페에서 작게 전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서 보니 색감이 너무 좋고, 붓 터치에도 매우 세심한 정성이 담겨 있는 그림이 걸려 있는 것 아닌가.

    '一见钟情'.

    첫 눈에 반했다. 이거다. 이거야.

    요정 같이 생긴 여성이 파마를 하는 듯한 모양의 제법 큰 그림이었는데 그날부터 그 카페를 들락 달락 거리면서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를 반복했다. 카페에 예닐곱 작품이 걸려 있었는데 생각 같아서는 다 사고 싶었을 정도로 이 작가님의 그림들이 마음에 쏙 들었다.

    내가 반한 그림은 너무 커서 집에 맞지 않아 살 수가 없어 작가님의 다른 그림을 사기로 마음 먹었다.

    그 뒤로 문화부 선배를 통해 작가님께 언질을 넣어 두고, 적정한 그림값을 매겨 작가님 그림 중 하나를 샀다. 작가님이 처음 사는 그림이라고 하니 훈훈한 인정도 듬뿍 베풀어 주셨다.

    입주 날 그림을 건네받기로 하고 그날부터 빨리 입주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되뇌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보니 저런 훌륭한 작품을 덩그러니 가족사진 거는 것처럼 걸 수도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같은 아파트에 입주하는 우리 형에게 가서 뽐뿌질을 좀 했다. 아파트 안방과 작은방 사이에 벽이 너무 허한데 거기를 좀 카페처럼 꾸며서 그림 같은 거 겁시다. 은근 이런 거에 혹하는 형은 콜을 외쳤고, 그날부터 우린 인테리어 업자가 돼서 벽을 꾸미기 시작했다.

    조각 벽돌을 사고, 시공용 접착제를 사고, 조명 가게에 가서 갤러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그마한 핀 조명도 샀다. 한 보름도 넘게 형 집과 우리 집을 드나들며 벽 꾸미기에 매달린 끝에 그럴싸한 나만의 전시장이 완성됐다.

    대망의 입주날. 작가님과 그 카페에서 만나 잔금을 치르고 표구가 된 그림을 건네받아 차에 실었다. 이삿짐 정리가 다 끝나고 해가 졌을 때 차에서 그림을 가지고 올라와 벽에 걸려니 약간 뭉클한 것은 뭔지.

    그림을 걸고 나서 집 조명을 다 끈 다음 핀 조명을 켰을 때 그 황홀한 감정이란. 그러니까 일단 사보면 안다.

    와이프도 뭐 그런 허세를 부리네 어쩌네 했었는데 그 모습을 보더니 에헴 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아니 뭐. 돈 좀 버는가보다 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신인 작가님들의 그림 가격은 요즘 나오는 최신형 스마트폰 가격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스마트폰도 2년에 한 번씩 바꾸는 마당에 이런 취미 하나에 과소비란 딱지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

    그럼 차라리 명화가 프린팅된 액자를 사는 게 낫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시 이번에도 내 대답은 그러니까 일단 사보면 안다다.

    스마트폰 한 대 가격으로 예술가의 고뇌와 열정이 담긴 영혼의 조각을 사 모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번 주에는 조그마한 소액자라도 집 근처 전시장에 가서 하나 사 들고 와 보자. 근처 대학의 졸업작품전에 가도 좋고, 예술 카페에 가도 좋고, 친한 작가님의 작업실에 가서 내 그림을 골라서 데려와 보자. 그러면 여태껏 느끼지 못했던 생기가 집 안 가득 뿜어져 나올 것이다.

#단상 #그림 #사세요 #두개 #사세요


++포스팅에 있는 사진은 저와 우리형이 직접 만든 벽에 건 제 첫 그림과 내가 한눈에 반했던 작품입니다. 김보영 작가님의 그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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