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실수할 수 있어
"어른도 실수할 수 있어. 실수했다고 모두 나쁜 사람은 아니야.
하지만 잘못된 걸 알면서도 계속하면 정말 나쁜 사람이 되는 거야."
오늘은 근무 날이다. 고작 일주일에 이틀 근무지만 늦게 집에 들어온다는 것을 핑계로, 남편과 그 날은 배달음식을 주문하여 먹기로 정한 날이다. 그런데 오늘은 남편이 야근을 하게 되어, 혼자서 늦은 저녁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엇을 시킬까 고민하다가 호기롭게 육회 혼술 세트를 주문했다. 아이들에게 자기 전 책을 읽어주는 동안, 내 마음은 이미 육회에게로.
"띵동" 벨이 울렸다.
아이들에게 아직 책을 다 읽어주지 못하여, 얼른 육회를 냉장고에 넣고 다시 읽어주기로 하였다.
선결제까지 되는 이런 최신의 배달시스템을 지닌 우리나라, 이때만큼은 정말 최고다. 잠옷 차림에, 뱅뱅이 안경에, 허름한 나를 보여주지 않고도 빼꼼 손만 내밀어 배달기사로부터 음식을 전달받을 수 있다.
건네받은 육회를 냉장고에 넣기 위해 부엌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꺼지지 않은 인터폰 화면에 배달기사가 보였다.
'뭐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과 함께 내 몸은 일순간 정지. 내 머릿속에서는 여러 경우의 수들이 펼쳐지기 시작했고, 심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래, 지레 사람을 의심하지 말자. 기다려보자. 그냥 구경하는 것일 거야.'
라며, 딸의 자전거 손잡이를 만지작 거리는 기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기사는 결국 반짝거리는 불빛을 손아귀에 쥐고 돌아섰다. 다섯 살 딸아이의 자전거 라이트를 떼어간 것이다.
오 이런. 육회는 식탁 위에 던져버리고 현관으로 뛰어갔다.
"저기요!"
다행히 "네에."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그걸 가져가시면 어떡해요!"
그러자 기사가 민망한 웃음을 띄우며 "아... 죄송합니다."라며, 내 손에 직접 건네지 못한 라이트를 다시 자전거 손잡이에 달아 놓았다. 허둥지둥 뒤돌아서 가는 기사를 향해 말했다.
"아휴, 그거 아이 건데. 아이 것을 가져가시면 어떡해요!"
그대로 복도의 불은 꺼졌다.
기분 좋게 먹자고 시킨 쫄깃한 육회가, 오래간만에 내 심장까지 쫄깃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되돌려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문을 닫는 순간,
'아, 큰일 났다!'
아니나 다를 까,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나온 아들이 내 뒤에 서 있었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진 채, 눈썹을 찡그리며 겁을 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실 내 아들은 정서적으로 상당히 예민하다. 좋게 말하자면, 그만큼 정서 자극에 민감하여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하며 배려하는 데에 탁월하다. 그리고 감수성이 풍부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세상을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있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일도 안 되는 자극이, 아들에게는 십이 되고 백이 될 때도 있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쉽게 감동을 하여 행복해하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반면 쉽게 우울해하고 불안해하기도 한다.
이번 사건은 후자였다. 아들이 울먹이며 물었다.
"아저씨가... 뭘 가져갔어요? 가져가면 안 되는 건데... 나쁜 사람인가 봐."
혹시나 비슷한 일이 반복될까 싶어 아들과 딸의 자전거에서 떼어 온 라이트가 내 손에 쥐어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아저씨가 캄캄할 때 다니느라 불빛이 필요했나 봐.'라고도 말했지만, 감수성 만점의 정의로운 아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일곱 살 아들의 때 묻지 않은 양심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긴장되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어야, 아이들이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들과 딸을 앉히고 얘기를 시작했다.
"음... 있잖아, 어른들도 실수할 때가 있어.
필요하다고 갖고 싶다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지. 그래서 '하지 말아야지.'라고 참아보지만, 그래도 갖고 싶다는 나쁜 마음이 이길 때가 있어. 그래서 알고 있어도, 이렇게 실수할 때가 있어. 어른이라고 다 잘하는 게 아니야.
아저씨가 아까는 가져가고 싶은 나쁜 마음이 이겨버려서 불빛을 가져갔지만, 엄마가 가져가면 안 된다고 말하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고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어. 그러면 된 거야.
그런데 만약에 잘못된걸 알면서도 똑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그때는 정말 나쁜 사람이 될 수 도 있는 거지.
하지만 한번 실수했다고 나쁜 사람인 건 아냐.
엄마도 실수하잖아, 너희 옷 거꾸로 줄 때도 있고, 지용이가 한 거 아닌데 지용이가 한 줄 알고 잘못 생각한 적도 있잖아."
"맞아 맞아... 실수한 거야. 어른도 실수할 수 있어."
아들의 표정은 아직 일그러져 있었지만, 스스로를 이해시켜보려는 듯 엄마의 말을 되뇌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곁눈질로는 전혀 괜찮지 않은 아들의 얼굴을 살피면서 말이다.
책을 모두 읽고 침대에 누웠지만, 역시나 아들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다시 내게 물었다.
"엄마, 내 거랑 지안이 거 (라이트) 모두 다 가져왔어요?"
결국 다시 일어나 신발장에 넣어둔 라이트 두 개를 확인시켜주었다. 생각하지 말아야지 해도 '아저씨가 나쁜 사람인 것 같아서, 그리고 라이트를 또 잃어버리게 될까 봐 걱정이 되어서' 계속 불안하다는 아들에게 심호흡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놀았던 재미있었던 놀이를 생각하라고 알려주었다.
다행히 아들은 십여분이 지나자 잠이 들었다.
센터에 찾아오는 아이들 중에는, 부모나 어른들이 부적절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권위와 힘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았거나 경험한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은 자신이 당했던 비합리적이거나 억울했던 경험들을 보상 받으려는 듯, 치료사인 나에게 온갖 센 척, 강한 척을 하며 힘을 과시하고, 통제하려 하고, 상당히 지시적이다.
그러다가 진짜이든지, 의도적이든지 선생님인 내가 나의 실수에 대해 사과를 하게 되면,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선 "선생님도 이거 몰랐어요?/ 선생님도 이거 잘 못해요?"라며 무척 반가워하며 신기해한다. 어쩔 땐 실수한 나의 모습에 꽁꽁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여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어른'은 전지전능하고 완벽하고 흠잡을 데 없는 '착한(good)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 아빠 또는 어른들의 말만으로도 자아상과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가고 그려나가기도 한다. 물론 어른의 말 말고도 여러 좋은 것들이 많이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말할 것도 없이, 아이들에게 어른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른'의 말이란, 절대 틀릴 일이 없는 옳은 진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항상 선함으로 이끄는 그런 이상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는 절대 그렇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그런 완벽한 어른이 실수를 했다니.
내 아들만 해도, 이 실수 많고 푼수 같은 엄마마저 그런 완벽한 사람, 어른이었나 보다.
아마도 아들에게 오늘의 가르침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본 세상의 쓴맛이었을 듯하다. 세상의 또 다른 면모를 알게 되었다.
"어른도 실수할 수 있어."
그래도,
아이는, 아이 것은 건드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