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날 , 쓰기

뭐라도 쓰고 싶은 날엔

by roman editor


지난날. 난 늘 하려는 의지 사이로 끼어드는 조급함의
참견이 문제였음을 자각한다.


욕심만큼, 의지만큼 조급함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던 때를 떠올린다. 안절부절,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후회만 남긴 채 체념해버리곤 했던 그날들. 입시를 준비하던 그때도 그랬다.

목표만큼 채우지 못한 성적표를 들고 늘 조급해하며 불안해했던 기억. 늘어놓은 교과서 사이사이마다 비집고 들어 온 불안은 늘 길고 깊게 자리를 잡곤 했다.

나의 다이어리는 늘 계획들로 가득 찼다. 유일하게 평온했던 시간. 공부를 계획하고, 목표를 상상하며 불안을 잠재우던 때다. ‘그래 이렇게 하면 성적이 좋아질 거야’. 공허한 다짐만 오갔던 다이어리의 흔적. 불안한 나머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계획 짜기로 온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해버렸던 그때다.

오늘은 수능일. 지나고 보니 별 것 아닌 지난날의 흔적이 그때의 오늘이 되니 진하게 다가온다.



이토록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때도 없다.


할 일이 늘어나고, 삶의 무게가 늘어날수록 더해진다. 쓰고 싶은 마음이.

잘 쓰고 싶은 생각이 차오를수록 잘 쓰는 이들을 바라본다. 바라볼수록 난 더 작아진다. 후회는 덤이다. 진작 더 많이 쓸 것을, 어릴 때 더 많이 읽을 것을. 쓰지 않았던 지난날은 온통 후회로 진하게 뒤덮인다.

그래.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펜을 들지만 첫 문장 앞에 무너진다. 조급한 마음은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다. 간절해질수록 조급한 마음.

쓰고 싶지만 쓰지 못하는 내 마음에 겹쳐지나 시험지를 앞에 둔 그들을 짐작한다. 발을 동동 구른다.

시간이 흘러 달라진 게 있다면, 조금함, 불안함이 다가올 때마다 다이어리에 계획을 짜며 위안했듯 이제 난 글을 쓰며 스스로를 토닥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안한 생 가운데 기필코 써낸 수많은 작가들을 떠올린다.


매일 달리며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매일 밭을 일구며 펜을 놓지 않았던, 부엌 한편 새벽어둠 속 작은 불빛에 의지해 쓰며 삶을 살아냈던 작가들 말이다. 물론 그들의 필력은 따라 할 수 없지만 글에 대한 자세, 그들의 마음을 따라 쓰다 보면 어느새 회오리치던 마음은 잠잠해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쓰는 일. 그때와는 달리 이젠 글 안에서 잠잠해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맘이다.

불안, 조급함의 참견이 이젠 더 이상 성가시지 않다.


지금, 여기, 발 딛고 있는 불안을 터전 삼아 글을 발아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coffee-1869820_640.jpg

by pixabay.com

마음 놓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에 그토록 목말라했고 일상적 생활공간과 창조적 공간의 상충하는 성질에 대한 토로가 그토록 도도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집 부엌에 대한 기억은 정답고 소중하다. 조리대와 나란히 놓인 책상에서 글을 쓰면서 밥 짓기와 글쓰기가 결코 생각처럼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 문학이라든가 창조적 생활이란 저 멀리서 나부끼는 깃발이 아니라 지금, 여기, 발 딛고 있는 자리를 굳건한 터전 삼아 발아하는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오정희 / 내 마음의 무늬 중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일#불안#글쓰기

keyword
이전 02화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