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한 달, 하루의 시간은 하고 싶은 일들 몇 개를 늘어놓기에 분주한 시간. 하지만 10분의 시간은 절박하고, 선명하며, 그만큼 간절한 시간이다.
‘설익은 쌀에게 주어진 10분의 뜸’처럼 문득 삶을 완전하고 충분케 하는 10분을 떠올린다. 작고 소소한 삶의 작은 10분. ‘나’ 하나도 버겁기만 일상의 무게에 치여 소중한 10분이 가벼이 흩어진다. 그렇게 10분, 10분, 10분이 흐른다.
가을이 주는 신호들을 감지하는 데는 10분이면 충분하다,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건네려는가, 눈 맞춤, 속삭임, 마주한 손안에 10분을 흘려보내자. 가장 충만한 감정의 순간이 된다.
무심코 흘려보낸 시간을 아쉬워하다가 ‘삶의 10분’이 너무나 소중한 시간을 임을 깨닫는다.
“당신에게 한 달만 주어진다면?”
"당신에게 딱 하루만 주어진다면?"
이라는 말 대신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에게 딱 10분 주어진다면?”
서른에서 마흔을 넘어가던 그때까지. 난 10분이 늘 힘겨웠다. 조금은 여유로워도 될 것을 10분이 아까워 늘 삶은 분주했다. 아침 식사는 늘 거르기 일쑤였고, 아이의 느린 걸음을 재촉했다. 점심밥은 구겨 넣듯 끼니를 때웠고, 걸을 땐 늘 앞만을 주시했다.
잠시 돌아보기에 충분했던 시간 10분, 잠깐 숨을 고르기엔 적당했던 10분, 도란도란 맘을 나누기 적당한 시간 10분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안간힘을 쓰며 말이다.
“‘나’를 견디지 못하는, 스스로를 무거워하는 당신이라서
그 10분을 가벼이 여기는 지도 모르는 당신에게... “
이병률 시인의 말처럼 나 스스로가 무거워 그 10분을 가벼이 여겼다. 진짜 소중한 것을 다루는 법을 몰랐던 탓이기도 하다. 그렇게 애써야 시간이 잡히는 줄 알았던 그때. 내 삶은 제대로 흔들렸다.
집에서 10분 거리의 단골 카페가 있다. 은행나무,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소복하게 쌓인 길을 10분 동안 걷고 걸으면 카페에 도착한다. 봄이면 봄 같은, 여름은 여름 같은, 가을은 가을 같은 그런 길. 분주한 마음으로 그 길을 걸을 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시간이다.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그 10분. 제대로 눈을 뜨고 보니 10분의 길에 계절이 탐스럽게 내려앉은 게 아닌가.
지하철을 기다린다. 6호선과 5호선이 맞닿은 환승역에서 플랫폼 앞에서 섰다. 전광판을 보니 남은 시간은 12분. 못다 읽은 책을 펼쳤다. 시인의 글을 바라본다. 한 줄의 글이 시간을 붙든다. 남은 시간만큼 그 글을 바라봐주었다. 어딘 가 비어있던 내 안의 그곳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그 짧은 시간에 글은 제자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