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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군 독립운동가 강석대(姜石大)

비로소 온 광복, 독립운동가 강석대 [1]

by JOHN

우리 집안 선조분들께서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할아버지께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던 2023년 설, 할아버지께서 아직 전수받지 못한 훈장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지금까지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돌아가셔서 받은 대통령 표창은 집에 있어서 그것만 있는 줄 알았는데, 또 다른 훈장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었다.


알아보니 강석대 독립운동가께서는 1977년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어 대통령 표창에 추서 되었다.


상훈법의 개정 이후 할아버지께서는 1991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 되신 증조부의 훈장을 전수받기 위해 국가보훈처에 연락했지만, 후손임이 증명되지 않아 전수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으셨다고 했다.


보훈처와 연락하신 게 1990년대이니 이는 약 2~30년 전의 일이다.


여전히 우리는 훈장을 전수받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자료를 모아 훈장을 전수받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이 일에 착수한 지 2년이 넘어가는 시점이다.


여러 기관에 연락해 보고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오래전의 일이라 자료가 많이 소실되고 없어진 상태이다.


현재 약 7,000명의 독립유공자분들의 훈장이 후손 확인이 되지 않아 미전수된 상태인데, 우리 가족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


내가 자료를 찾는 과정을 다른 분들도 참고하여 후손 증명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출처 : 독립운동인명사전

가장 먼저 한 것은 인터넷을 통해 관련된 자료를 모으는 일이었다.


국가보훈처나 국가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 많은 기록들이 있었다.


강석대 독립운동가는 강원도 화천 지역의 천도교인으로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천도교 중앙본부로부터 지령을 받아 독립선언문과 지령문을 수령해 비밀리에 화천군으로 가져오셨다.


할아버지께서 '독립운동 공적 사항'에 기재하신 표현을 빌리자면, 이 과정에서 강석대 독립운동가는 중앙과 화천 간 비밀 연락원으로 활약하며, 미친 사람으로 변장해 손병희 선생이 주도하는 3.1 독립운동 지령문과 독립선언서를 화천군에 반입했다고 한다.


그러던 1919년 3월 23일, 강원도 화천군 장날에 기하여 김창의 선생을 필두로 결사대원 23명과 주민 60여 명이 독립 만세를 부르다 일본 헌병과의 격투 끝에 전원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9월 20일 경성 고등법원에서 징역 8월을 언도받고,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시다 고문의 여독으로 인해 옥중 순국하셨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강석대 옹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강석대 옹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우리 집안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모르는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저 독립운동을 하시다 돌아가셨다는 얘기만 들었지 어떤 활동을 하시다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에 대해서는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무지의 부끄러움을 추동하는 힘으로 삼아 여러 기록을 남겨보고자 한다.


성명 : 강석대

출생 : 1858년 5월 12일

사망 : 1920년 2월

지역 : 강원도 화천군 화천면 신읍리 231

- 1977년 대통령 표창 추서

-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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