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온 광복, 강석대 독립운동가 [완결]
우리 가족은 3대가 독립운동을 하셨다.
독립운동가 후손은 가난하고, 친일파 후손은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산다는 말처럼, 우리 집은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정의'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정의롭지 않아서, 정당한 가치 질서가 확립되지 않아서 사회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정의롭지 않은 사회에서 한 가정은 무기력하게 파괴되었다. 독립운동을 하셨던 할아버지들은 아들을 남기고, 손자를 남기고, 증손자를 남기고 불의에 맞섰다. 남은 가족은 광복을 맞이한 국가가 책임질 것이라는 믿음 아래 기꺼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한 몸을 희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독립한 조국은 그 믿음에 화답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10살에 아버지를 잃으셨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그 어떤 지원을 받지 못했고, 어린 나이에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그렇다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어서 삶이 명예로웠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증명해야 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강석대 독립운동가에게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강석대 독립운동가와의 가족 관계를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1977년 강석대 독립운동가에게 추서 된 대통령 표창을 정상적으로 받으셨다고 했다. 그럼에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을 때에는 가족 관계 증빙을 요구했고, 한국전쟁으로 족보가 소실되어 족보를 활용한 증명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함께 살던 동네 주민들에게 인우보증도 받으시고, 이전에 받으셨던 상패 같은 것도 제출하셨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후손임을 증명받지 못하셨다.
정부는 후손 관계를 증명할 다른 증거를 가져오라는 얘기만 했을 뿐 그 어떤 절차적 도움도 주지 않았다. 정부에 전문가 집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에게 증명책임을 부과하는 건 상당히 가혹했다. 할 수 없이 할아버지는 십수 년간 노력하시다가 포기하셨고, 세월은 무심하게도 흘러만 갔을 뿐이었다.
자신의 근본이 부정당한 채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할아버지는 책임감이 강한 분이셨다. 어린 나이부터 가장이 되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이 삶 전체를 지배했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는 내가 사회대에 진학한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대학에 가면 시위에는 참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이 사회를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아니셨을까.
그래도 다행히 우리 사회는 점차 발전했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음을 느꼈다. 족보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후손 증명을 할 수 있었고, 국가보훈부의 담당 연구관님은 우리에게 호의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유족으로 인정되니 여러 혜택들도 생겼다. 할아버지는 일정액의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셨고, 아프실 때에는 무료로 병원 진료로 받을 수 있으셨다. 10살의 어린 나이에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90세가 다 되셔서 비로소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신 것이었다.
또한 빙그레의 처음 입는 광복 프로젝트에도 선정되어 생애 처음으로 방송 인터뷰에도 참여하시게 되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을 당하시고 난 모습이 아닌, AI 기술을 활용해 당당한 모습의 강석대 독립운동가를 만나실 수 있으셨다.
강석대 독립운동가의 묘소에도 변화가 생겼다. 원래는 충북 충주시에 묘소가 있었는데, 서울 현충원으로 이장을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강석대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인정되고 난 후 1년도 채 되지 않은 때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지셨고, 국가의 보호를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하신 채 돌아가셨다.
그래도 할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의 평생의 한이었던 훈장을 전수받고 강석대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인정받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정신이 온전하셨을 때 나에게 다른 두 분의 독립운동가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을 들은 후 할아버지는 정신이 온전치 않아 지셨기에 그 말씀은 나에게 유언처럼 남았다.
나는 나의 선조들께서 나라를 위해 희생하시고, 우리 공동체를 목숨을 바쳐 지켜내신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그분들의 희생과 가르침에 보답하는 길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도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보란 듯이 잘 살아낼 것이다. 과연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고,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
혹여 독립운동 후손찾기와 관련하여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 중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은 언제든지 'kjh030408@naver.com'로 연락을 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