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통증들에게 환영의 방석 깔아주기.
코로나에 걸렸다.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다 잘 버텼다고 생각했는데, 2023년에 시작하자마자 걸려버렸다. 남들 다 걸릴 때 나는 걸리지 않았으니,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나 무증상으로 감염 되었다가 완치 된거 아니야? 하지만 이번에 코로나가 걸리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아! 코로나는 걸린 순간 바로 알 수 밖에 없는 증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을.
처음에 온몸에 열이 오르면서 힘이 빠졌다. 동시에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내 온 몸은 누군가에게 맞은 것처럼 몸을 바로 세우기가 어려웠다. 정신을 못 차리게 내 온 몸은 통증들로 사로 잡혔다. 사실 이때는 명상을 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냥 통증들로 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해열제와, 감기를 풀어주는 한약을 먹고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니 어느 정도 열은 내려 몸에 힘이 조금 생겨났다.하지만 이제 침을 삼킬때마다 목이 따가웠다. 기침이 계속 나왔고, 깊숙한 곳에 있는 가래는 잘 뱉어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힘이 생긴 탓일까? 그래도 한 번 이 순간에 명상을 한 번 해보자 라는 변태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타이머에 15분을 맞추고 의자에 앉았다. (정좌를 할 자신은 없었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을 했다. 코끝에서 뜨거운 공기가 들어갔다가 나왔다. 호흡에 몇 번 신경이 쓰이다가, 침을 삼키고 싶은 나를 알아차렸다. 침을 삼키니 역시나 목의 이질감이 느껴졌고 아팠다. 이와 더불어서 잡생각이 떠올랐다.
'도대체 나는 어디에서 코로나가 옮은 걸까?'
'나랑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들은 지금 괜찮을까?'
'코로나 다 나으려면 얼마정도 시간이 걸릴까?'
'하 그나저나 진짜 목이 따갑네..'
명상한다고 앉아 있지만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생각을 하게 된다. 목의 통증을 느끼면서 다시 내가 잡생각에 빠져 있음을 알아차린다. 생각하고 있는 나를 보고 다시금 호흡으로 집중한다. 코끝에서 맡는 내 호흡의 온도는 여전히 뜨겁다.
이번엔 통증이 있는 부위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조용히 관찰해 보기로 한다. 내 코에서 부터 목 안이 예민해져있는 것이 느껴진다. 쎄하다는 느낌이기도 하고, 고추 냉이를 코에서 부터 내 목안까지 뿌려놓은 것 같기도 하다. 침을 천천히 삼켜본다. 침을 따라서 부어 있는 곳들이 뻐근하게 아파져 옴을 느낀다. 몇 번 더 삼켜본다. 통증의 부위가 살짝씩 변화 되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명상을 통해서 내 통증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잡생각에 빠진다. 이것도 나의 잡생각임을 알아차린다. 어느덧 시간이 되어 15분을 끝나는 알람이 울린다.
이번에 이런 명상을 하게 된 이유는 내 몸의 통증들을 한 번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 였다. 통증 소용돌이에 매몰되어, '병에 걸린 아픈 나'라는 과점에 매몰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 너무 힘들다. 아 자고 싶다. 아 언제 끝나지?' 라는 것만 곱씹었다.
명상을 통해서 통증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졌다! 는 식으로 귀결이 되면 좋겠지만 마냥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명상을 통해서 코로나가 나를 어떻게 괴롭히고 있는 지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크기가 줄어든 것은아니지만 그 고통을 겪어볼 만 한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게 존 카밧진이 말한 환영의 방석 이란 것 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명상하는 동안 통증과 함께 작업하는 방식을 표현하기 위해 '환영의 방석을 깔아라.' 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어떤 특정한 순간에 통증은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은 통증을 수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가장 자연스럽게 통증과 관계를 맺고, 그것을 판단하지 않고 관찰하며, 세부적으로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알아차리려 한다. 이는 생생한 감각 그 자체에 마음의 문을 열어 개방적이 되는 작업이다. 그 감각의 성질이 어떠하든 말이다. 우리는 순간순간을 통증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존재하며 호흡의 물결과 감각의 물결을 타고 간다.
-마음챙김명상과 자기치유, 161P ,존 카밧진 저, 김교헌, 김정호, 장현갑 공역, 학지사
오늘 통증들에게 펼쳐 놓은 환영의 방석이 컸는지, 아니면 옹졸해서 통증들이 다 앉을 만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인생 처음으로 통증들에게 이리와서 앉아보라고 환영의 방석을 펼쳤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