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명상 여든아홉 스푼
어렸을 때 나는 심각한 게임 중독이었다.
특히 초등학교 때 바람의 나라에 미쳐 있었다.
돈은 없고 높은 레벨의 캐릭터는 하고 싶고.... 그래서 '작지'라는 것도 했었다.
작지는 작은 주인의 줄인 말이다.
캐릭터에는 실제 주인이 존재한다.
하지만 자기는 그 캐릭터 게임을 할 시간은 부족하다. 지금 모바일 게임이야 자동사냥 시스템이 있지만 내가 게임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래서 작은 주인을 구한 뒤 작은 주인에게 비밀 번호를 알려주고 매일 하루에 일정량의 사냥, 혹은 노동을 하도록 한다.
나의 캐릭터 성장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셈인 것이다.
시간은 없고 고렙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시간은 많고 고렙 캐릭터를 하고 싶은 아이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성립된다.
나 같은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작지가 된다.
하루 동안의 경험치를 다 하고 나면 그 캐릭터로 돈을 벌기도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지가 되기 위해선 약간의 '인증'이 필요한데
그 당시에는 집 전화번호, 주소 등을 알려주고 통화를 한 다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받았었다.
나는 그 당시 휴대폰이라는 것도 없었으므로 주로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낮 시간대에 집 전화번호를 통해서 작지 인증을 받았다.
'작지'를 하게 되면 게임을 많이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대개 주인들이 요구하는 노동량은 집중해서 4~5시간을 꼬박 해야지 채울 수 있는 양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이라도 그것을 지켜지지 못하게 되면 바로 잘리게 된다.
정리하자면 그 캐릭터로 5시간 이상을 온전히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게임을 많이 하게 되자 어머니에게 혼도 많이 나고 등짝 스매시도 많이 맞았다.
그런데 그때는 새로운 캐릭터를 한다는 그 짜릿함이 강렬했기에 새벽에 몰래 일어나서 다시 또 게임하곤 했다.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행하던 나날들..
그러다가 일이 터진다.
며칠 동안 학교 친구들과 다른 일을 하다가 내가 맡고 있는 작지 캐릭터의 경험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가 화가 난 원래 주인은 집으로 전화를 걸게 된다.
그런데 하필이면 저녁시간에 전화를 걸었고
그 전화를 받은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나에게 게임에 관해선 크게 잔소리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해야 하니 게임을 줄여야 한다고 많이 잔소리하셨지만
아버지는 건강이 나빠질 수 있으니 50분 게임을 하고 10분 쉬는 식으로 하라며 농담을 던지시기도 하셨다.
그런데 저녁에 받은 전화에서 갑자기 이름 모르는 낯선 남성이
아들의 이름을 알고 있고, 집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극대노'하셨다.
나는 게임에서 내 개인정보를 해킹을 당한 것 같다고 시치미를 뗐다....
아버지는 낯선 남성한테 화를 내며 당신이 뭔데 우리 집에 전화를 하냐며 오히려
원래 주인의 이름과 전화번호, 다니던 학교까지 이름을 알아내셨다. (원래주인은 고등학생이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뒤 엄청나게 혼났다. (물론 진실도 다 밝혀졌고.....)
어머니도 화가 머리 끝까지 나셨다.
대개 내가 어머니에게 혼날 땐 아버지가 내 편을 들어주시고, 아버지에게 혼날 땐 어머니가 편들어주셨는데
두 분이서 화를 내시니 정말 무서웠다.
맞지 않고도 이렇게 공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그 당시에 처음으로 느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는 참 무서웠다...
그 뒤로는 '작지'에는 얼씬도 안 했지만...
그땐 진짜 게임에 중독되어 있었다.
요즘 모바일 폰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최근 들어 몸살과 설사가 함께 왔을 때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잠을 자려고 누우니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릴 수 밖에 없고... 온몸에 몸살 기운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아내와 함께 뭐라도 해볼까 해서 '브롤스타즈'를 다운로드하였다.
몸살이 아픈 것을 이겨낼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아내와 웃으며 게임을 하게 되니 병이 견딜만해졌다.
어쩌면 이게 게임의 순기능인가? 할 정도로
그런데 문제는...
병은 이미 다 나았는데도 게임을 자꾸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게임을 좋아했던 그 습관이 남아 있는지, 한 판만 해야지라고 하면 1시간이 뚝딱 지나가 버렸다.
한 판은 두 판 세 판... 열 판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요즘은 얼마나 게임을 잘 만들어 놓았는지,
뭘 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도입해서 정말 지루할 틈 없이 게임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자동적으로 브롤스타즈를 누르는 내 모습을 본다.
'어 근데 이거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아닌데?...'
이것은 내가 원하던 내 모습이 아님을 인지한다.
몸이 아픈 것을 잊기 위한 게임의 순기능은 모두 끝이 났다.
다만 나는 게임 자체를 하기 위한 갈망 때문에 게임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게 정말 맞는 것 인가? 의문이 든다.
게임을 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알아차린다.
초등학생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점은 20년의 시간과 명상과 EFT라는 도구를 얻은 것이다.
일단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고 눈을 감고 호흡을 한다.
내 마음을 관찰한다.
아 여기서 주의 사항.
'게임을 하면 안 돼!'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몰아내면 몰아낼수록 강하게 온다.
내 마음에서 충동을 몰아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충동을 받아들인다.
- 나는 왜 이 게임을 하고 싶은가?
재미가 있다.
- 무엇이 재미가 있는가?
캐릭터들을 총을 맞춰서 잡는 것이 재미가 있다.
- 어떤 감정적 반응인가?
불리한 상황에서 나의 기술을 통해 상대방을 다 맞추면 내가 유능한 전투 장수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3:1 이든 4:1이든 다 덤벼라!
- 신체적 반응은 어떤가?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흥분된다.
........
나의 마음과 신체를 관찰할수록 충동은 점점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제 삼자의 충동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게임을 할 때 얻어지는 결과들을 느껴보자, 내가 마치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하고 싶었던 갈망이 점차 줄어든다.
나는 이 과정에서 절대로 게임을 하면 안 된다!라는 식의 접근을 하지 않았다.
다만 느낌과 생각을 세밀하게 관찰했을 뿐이다.
마음 챙김 명상의 역설은 느낌과 감각을 수용하고 관찰할 때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기법을 RAIN 기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 R : Recognize - 게임을 하고 싶은 충동의 느낌을 인지한다.
2. A : Aceept - 그 느낌을 밀쳐내지 않고 받아들인다.
3. I : Investigate - 그 느낌이 당신의 신체 어디 부위에서 나타나는지 살핀다.
4. N : Non-identification - 그 느낌을 나로 동일시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는다.
몇 번 명상을 통해 내 마음을 관찰 하자 진정이 된다.
휴대폰을 다시 든다.
그리고 브롤스타즈를 꾹 누르고
삭제 버튼을 누른다.
초등학생과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나의 욕구에 먹이를 주지 말자.
참조 : 불교는 왜 진실인가?, 로버트 라이트, 마음친구, 184-18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