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21 명상 일지.
딱 세 글자만 들어도 국방의 의무를 하고 온 남자들에게 공통적인 일련의 감정적인 반응이 드러난다.
귀찮음. 지루함. 무료함. 등
감정적 반응을 요약하자면,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닌데, 시간을 내서 귀찮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비군 자체의 훈련이 어렵다거나 하지는 않다. 하지만 평일에 진행이 되어 직장에서 연차를 내야 하거나, 증빙자료를 제출해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 한두 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며칠에 걸쳐 진행된다는 점.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실. 나는 원하지 않는데 강제로 해야 한다는 점이 모두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다.
근데 나는 예비군이 기다려진다. 예비군은 나에게 명상을 온전히 할 수 있는 디톡스 데이다.
예비군은 9시에 시작된다. 9시에 훈련장에 가면 군복을 입은 거뭇한 남성들이 우르르 몰려 있다. 그리고 교관의 지도에 따라 훈련장을 다니며 교육을 듣고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 예비군의 주요 특징은 교육과 교육을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이다. 서로에 대해서 묻거나 이야기를 하고 흡연을 하면서 기다린다.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지만, 교육 대기 중에 스마트폰을 할라 치면 교관들의 제재가 들어온다. 스마트폰 없이 어색한 상황, 갑자기 있는 시간과 공백을 어려워하는 눈치다. 우리는 스마트폰 없이 조금도 살 수 없는 세대가 된 걸까
그러나 나는 이러한 시간이 크게 두렵지 않다.
늘 그렇게 하듯 눈을 감고 나의 내면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차가운 회색빛 시멘트 바닥에 앉아 군화를 신은 발로 적당히 반가부좌를 튼다. 11월 초겨울의 맨바닥은 냉기가 돈다. 양손을 내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내복을 입고 군복을 입은 무릎의 도톰한 부분이 내 양손에 느껴진다. 눈을 감는다.
천천히 수식관 명상 (호흡 집중 명상)을 시작한다. 100에서부터 거꾸로 숫자를 세며 나아간다. 멀리 개인화기 교육장에서 총성이 들려온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들린다. 내 등 뒤로 찬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수 세기에 전념한다. 100... 99....98...97...96...95...........10.....0...
- 누가 나를 보고 있을까 하는 외부의 생각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린다.
- 외부 사람들은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명상하는 중이라고 이야기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린다.
- 중간에 만약에 일어나서 가야 한다고 하면 바로 명상을 마치고 일어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한 것을 알아차린다.
- 기다리는 시간에 명상을 통해 나의 내면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에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 또한 알아차린다.
- 외부에서 명상을 진행하니 오히려 더 잘 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린다.
곧이어 우리 조가 실습을 진행하게 되었음을 알린다. 나는 명상을 마치고 일어난다.
이렇게 나는 명상과 명상사이 나는 갖가지 다양한 명상을 한다.
호흡 집중 명상, 호흡 관찰 명상, 바디 스캔 명상, 걷기 명상. 먹기 명상(점심시간이 한 시간 반이나 주어진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하나씩 맛을 본다.)
누군가에게 귀찮고 힘들게 기억될 수 있는 날인 예비군이지만, 나에게 예비군은 디톡스 데이다.
마음 챙김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