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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Jan 02. 2021

10. 100번째 원숭이 현상

10여 년 전 요가에 한창 빠져 있을 무렵, <빈야사 요가, 움직이는 명상>이란 책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읽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내용이 준 메시지가 하도 선명히 남아서 최근 그 책을 찾아 다시 읽었다.     


1950년대 과학자들은 일본의 한 무인도에 사는 원숭이들을 30년 이상 관찰하며 원숭이들이 먹을 수 있는 고구마를 바닷가에 꾸준히 놓아뒀다. 원숭이들은 고구마 맛을 즐겼지만, 고구마에 묻은 흙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18개월 된 원숭이 1마리가 고구마를 강물에 씻어 먹으면 흙이 묻지  않은 고구마를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 비결을 엄마 원숭이에게 알려줬다.  이 섬에 살던 다른 원숭이들도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는 법을 서서히 배우게 됐고, 과학자들은 이런 모습을 계속 관찰했다.     


어느새 이 섬의 모든 어린 원숭이가 이 행동을 배워, 고구마를 맛있게 먹게 됐다.  나이든 일부 원숭이는 어린 원숭이의 행동을 흉내 내 이를 배웠으나 또 다른 나이든 원숭이들은 계속 흙이 묻은 고구마를 먹었다. 그러다 6년쯤 지난 어느 날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으나 일정한 숫자의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 먹게 되자 확실히 두드러진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99마리의 원숭이만 고구마를 씻어 먹고 어느 날 새로운 1마리, 즉 100마리째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했을 때, 그날 저녁 그 무인도에 있던 모든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 먹게 됐다는 것이다. 맨 처음 1마리의 혁신적 행동으로 다른 원숭이들이 새로운 행동을 받아들였고, 그게 100마리째 원숭이가 행동하는 순간 그 섬 전체 원숭이들의 관념에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이후 과학자들은 더 놀라운 결과를 관찰하게 됐다.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 먹는 행동이 바다를 넘어 다른 지역에 서식하는 원숭이들에게도 전파돼 먼 곳의 원숭이들까지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인도라 다른 섬의 원숭이와는 전혀 접촉이 없고 따라서 모방도 불가능한 다른 지역의 원숭이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 연구 결과를 통해, 어떤 행위를 하는 개체의 수가 일정 규모에 달하면 그 행동은 그 집단에만 국한되지 않고 거리나 공간의 차원을 넘어 확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에게 나타난 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미국 과학자 라이언 왓슨은 ‘100번째 원숭이 현상’이라 이름 붙였고 이 학설은 1994년에 인정됐다. 이후 이어진 다른 동물학자와 심리학자의 여러 실험으로 이런 행동 변화는 원숭이뿐만 아니라 인간과 조류, 곤충류 등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게 밝혀졌다. 왓슨은 <생명조류>라는 책에서 ‘100번째 원숭이 현상’을 소개하며 인간의 문화와 유행의 원리를 그 현상으로 설명했다. 어떤 사고방식이나 사상이 사회에 널리 전파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 원리는 ‘어떤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수가 일정 수에 달하면 그것은 만인에게 진리가 된다’는 것이다.      


난 이 내용을 읽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의 일정 숫자나 비율이 얼마인지가 너무나 궁금했다. 한편으로 많은 사람이 한마음으로 염원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생겼다. 이 내용을 읽고 나서 난 종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힘을 믿게 됐다. 20대 때 신실한 교인이었던 친구를 따라간 큰 교회에서 목사님 말씀에 따라 많은 신도가 한마음으로 큰 수술을 앞둔 형제자매에 대한 기도를 간절히 하는 장면을 두어 번 본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얼굴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쾌유를 기원하는 게 과연 아픈 사람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런데 ‘100번째 원숭이 현상’을 읽은 뒤 일정 비율의 사람들이 뭔가를 간절히 기원하면 우주의 에너지가 거기에 맞춰 반응할 수도 있겠구나, 심리학에서 말하는 채널링(인간과 다른 차원의 존재들 사이에 이뤄지는 

일종의 상호 영적 교신(靈的交信)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구상의 많은 사람이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꿈꾸면 세계 평화와 인류의 행복이 실현 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 그래서 연말이 가까워지면 항상 ‘100번째 원숭이 현상’이 떠오른다.  한 해가 끝나는 날, 제야의 종소리가 울릴 때나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될 때 전 인류가 한마음으로 평화를 기원한다면 그 기도가 이 지구를, 이 우주를 관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31일 밤 12시가 가까워지면 나도 모르게 평화의 기도를 하게 된다. 제발 그 누구라도 그 100번째 원숭이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자고 일어났더니 우리나라가, 이 세상이 더없이 여유롭고 평화로운 행성으로 바뀌면 좋겠다. 새해는 이 땅의 평화가 더더욱 간절하고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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