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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Jan 10. 2021

11. 요가를 만나고, 잃어버리다

2000년대 중반 처음 요가를 접하고서야 비로소 내 몸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40여 년 동안 한 번도 내 몸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한 적도, 객관적인 눈으로 들여다본 적도 없었다는 사실을 요가 수업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때로는 내 몸이 ‘나’인 줄 착각하기도 하고, 내 마음이 ‘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동안의 내 삶을 전체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왜 그렇게 잦은 체증과 편두통에 시달렸는지, 몸과 마음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묵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목 돌리기만 하더라도 고개를 숙인 다음 숨을 들이쉬며 오른쪽 아래에서 위로, 정중앙으로 돌리다 왼쪽 위에서 숨을 내쉬며 아래로 내리는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숨을 잘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잘못된 호흡은 몸의 병증으로 인한 것일 수도, 비뚤어진 마음의 반영일 수도 있다.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짧고 얕은 호흡을 하지 않는다. 진중한 느낌을 주는 사람의 호흡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그의 한 호흡은 성인의 평균보다 길 확률이 높다. 처음 복식호흡을 배울 땐 배 안에 숨을 불어넣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조차도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 느꼈던 내 몸에 대한 생경함, 그땐 요가 수업 내용 하나하나가 내겐 신세계였다.     


요가로 서로 단절돼 있던 내 몸과 마음에 대화 통로가 열렸는데 그건 바로 '프라나'(동양의 ‘기’와 같은 생명 에너지)가 다니는 통로인 ‘나디’의 활성화였다. 차크라는 나디와 나디가 만나는 7개의 주요 교차로를 뜻한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기가 막힌다’ 는 말은 바로 생명 에너지가 정지됐을 때를 나타내는 말이다. 사실 프라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새해 해돋이나 깊은 산속 밤하늘에서 쏟아질 듯 총총한 별들, 또는 강건한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등을 통해서 그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아기 때는 복식호흡뿐만 아니라 머리 위 백회혈을 통한 호흡 등 온몸으로 호흡한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시간에 쫓겨 유치원, 학교, 회사를 오가면서 아기 때의 복식호흡을 포함한 전신 호흡에서 점점 흉식호흡으로 변해간다.


성장할수록 몸을 깨우는 호흡을 잊어버리고 아침엔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빈속에 커피를 마시고, 오후엔 나른함을 쫓으려 탄산음료나 설탕물이나 다름없는 과일주스를 마시고, 휴식 시간엔 담배로 불안을 잠재우려 하고, 저녁엔 한잔 술로 스트레스를 날리려 한다.  특히 여성들은 아랫배가 나와 보이지 않도록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고 생활하게 되는데 이게 횡격막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방해해 복식호흡은 더 어려워진다. 복부 근육을 건강하게 하고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근육과 마찬가지로 반복된 이완과 수축이 필요한데, 날씬해 보이려고 아랫배에 힘을 주는 습관이 오히려 복부 근육을 과하게 긴장시켜 탄력을 떨어뜨리고 건강한 호흡을 방해하는 악순환을 부른다.


한창 복식호흡을 배울 땐 호흡만으로도 체온상승효과를 보기도 했다. 혹한이 몰아친 겨울날 건널목에서 신호등 불빛이 바뀌길 기다릴 때 추위를 쫓기 위해 복식호흡을 열심히 했는데 단 몇 번의 호흡으로도 등 위쪽이 따뜻해졌는데 그 느낌은 묘한 행복감과 안도감을 가져다줬다.  그러던 어느 날, 요가 수업 때 고양이 변형 자세(고양이가 기지개 켜는 듯한 자세)를 하는데 일순간 주변 수강생들의 존재와 창문 밖 소음이 사라지면서 모든 게 멈춘 듯한 절대 시간과 절대공간을 경험했다. 그날의 경험은 너무나 강렬해서  내가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날 이후 요가를 좀 더 제대로 깊이 알고 싶어 졌다. 그런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간절함으로 농축되고 그즈음 우연처럼 필요한 정보를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됐다. 그에게서 홍익요가에 대해 듣게 됐는데 그 수업을 들으며 명상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거기서 운영하는 충주의  깊은 산속 연수원에 여름휴가 삼아 가게 됐다. 8월 마지막 날 찾은 그곳은 하계수련 기간이 끝난 뒤여서 연구원 몇 명과 홍익요가 설립자인 이승용 대표 외에 수련생은 내가 유일했다. 일대일 수업을 받는 호사를 누리고 혼자 그곳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지루해지면 산길을 산책했다. 그때 하늘과 땅 아래 오직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절대 고독의 시간을 맘껏 누렸다. 그러다 이승용 대표와 면담을 해야겠다 싶어 연구원에게 요청을 했다. 수련생이 나 하나였던 덕에 면담 기회가 주어졌고 그와 요가에 대해, 명상에 대해 1시간 넘게 얘기를 나눴다. 10여 년 전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영적 성장에 대한 목마름을 채우고 싶은 내 마음을 그가 읽었던 건 분명하다.     


그곳을 다녀온 뒤 다음 해 봄 그의 조언대로 사이버대학 요가명상학과 3학년에 편입을 했다. 그 2년간의 공부가 내 삶에 등대 역할을 한 것은 과연 우연이었을까? 요가철학, 요가심리학 등을 배우면서 삶의 비의를 짧게나마 접하게 됐고, 내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삶은 고난일 수도, 축복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 그렇게 요가와 명상 덕에 조금씩 낮아지고, 그만큼 행복해지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그 무렵 내 안의 어디에 있는지는커녕 존재조차 몰랐던 생명 에너지를 느끼게 됐고, 마음공부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  그때는 지치지도 않고 뭔가를 배웠다. 심지어 떡 만들기, 경락마사지 등 내 삶의 여정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과정까지 조금이라도 관심이 가면 등록부터 하고  바쁘게 배우러 다녔다. 그때 만났던 다양한 강사와 수강생들과의 교류가 행동반경이 좁았던 내 삶의 경험치를 남들 비슷하게는 끌어올려줬으니 어쩌면 그건 벼락치기 인생 공부가 아니었을까 싶다. 남들보다 늦은 40대에 그 정도의 타인과의 섞임조차 없었다면 나는 외골수가 됐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바로 옆 요가원이 임차료 부담을 못 이겨 멀리 이사 가면서 요가 배울 곳을 잃어버렸다. 홍익요가는 물리적 거리 때문에 계속 수강이 힘들었다. 물론 그 당시엔 요가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게 어떤 후과를 부를지 미처 알지 못했다. 요가를 잃은 허전함에 피트니스센터에 등록만 해놓고 운동이 아닌 샤워만 하며 오가는 사이 원래 근육량이 부족한 몸은 두부처럼 물렁해지고, 더 저질 체력이 돼 갔다. 그나마 그 시절 내 몸과 마음을 지탱했던 건 고전수업 덕분이었을 것이다. 거기서 만난 절친과 주말 밤을 새워가며 각자의 내면을 끄집어내고 때로는 현미경을 들이대듯 나의 불안을 해부했고, 그 덕에 불안이 사라지는 경험도 했다.     


그렇게 요가를 잃어버리고 몸의 문제를 방치한 사이, 회사에 큰 변화가 생겼고 뜻하지 않게 한 부서를 맡게 됐다. 그동안 공자와 맹자, 노자, 장자를 배웠던 게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그만큼의 공부도 없었다면 부서 일은 시작도 못 했을 텐데 새로운 첫걸음을 내디뎠고 어느 정도 기본을 다졌을 무렵, 내 안의 에너지는 바닥이 났다. 게다가 별명이 짜증 대마왕이던 좌장의 무리수까지 더해져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사표를 던졌다. 그런데 수리가 되지 않았다. 아프면 병가도 낼 수 있고, 휴직도 할 수 있는데 왜 사표부터 던지냐는 좌장의 고집에 결국 휴직을 해야 했다. 병가나 유급 휴직을 쓰면 다시 돌아와야만 할 것 같았기에 무급 휴직을 고집했다. 그런데도 결국 6개월 휴직 끝에 나는 회사로 돌아왔다. 그 과정은 지금도 드라마틱하다. 삶의 주인이 나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경험, 그 경험 덕에 나는 삶 앞에, 운명 앞에 겸손해질 수 있었다.      


회사에 복귀한 지 5년이 훌쩍 지났다. 그사이 내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결혼을 했고, 아들이 생겼다. 회사 일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 한 가정의 안주인 역할까지 해내느라 다시 체력은 바닥을 치고 있다. 회사 가까운 곳에 요가원이 생겨 반가운 마음에 갔으나 이건 요가라기보다 무슨 극기 훈련이나 묘기 대행진 연습 같았다. 알고 보니 신생 프랜차이즈였다. 명상의 충만함이나 요가의 수승화강을 경험할 수 없었다. 요가라기보다 런지 자세로 무릎을 과하게 쓰면서 요가만 하고 나면 무릎이 아팠다. 손목에 무리하게 체중을 싣는 동작으로 손목 통증도 심해졌다. 마음의 고요함은 사라지고 통증에 대한 아우성으로 몸도, 마음도 행복하지 않았다.  


다른 요가원으로 옮기면 좀 나을까 싶었으나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요가를 하는 중에 짜증이 올라왔고, 끝나고 나면 마음이 피폐해지는 어이없는 경험도 했다. 요가 데스크에 왜 힐링요가는 없고 핫요가, 플라잉요가, 필라요가 등만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급 회원들이 떠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가가 보급돼 일반화되면서 중급, 고급 회원들은 힐링요가를 초급 또는 엉터리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니 프랜차이즈 요가는 고객의 니즈에 따라 어디 할 것 없이 요가의 기본을 잊고 고난도 동작만을 가르치고, 점점 요가가 아니라 고난도 신체 훈련이 돼 가고 있다.  그 와중에 코로나가 겹치면서 등록만 해놓은 채 기한이 지나가버렸다.    


예전 요가 수련에서 느끼던 충만함을 다시 느끼고 싶은 갈망으로 마스크 쓴 몇 개월을 견뎠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窮則變, 變則通)”는 주역의 원리는 지금껏 삶의 고비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동아줄이 돼 주었다. 다시 나는 궁했다. 오래 요가를 잃은 채 살았지만 드디어 동아줄을 찾았다. 동아줄 이야기는 다음 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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