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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Jan 16. 2021

12. 사랑하라, 기도하라, 걸으라!

밥 먹고 잠자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 일하고 친구 만나고 요가하던 일상에 균열이 생기더니 많은 것이 멈춰진 채로 새로운 일상이 펼쳐졌다. 듣기도 지겨운 바이러스 때문에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문을 잘못 열기라도 한 듯한 세월이 어느새 1년을 넘겼다. 바이러스 탓을 하는 것도 지겨울 무렵이었으니 지난해 여름 끄트머리 즈음이었을 것이다. 요가를 그만둔 지 6개월이 넘어가면서부터 몸이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많이 먹지 않는데도 뱃살이 출렁대고, 그 출렁임보다 더 큰 통증들이 손가락, 손목, 무릎을 넘어 허리까지 점령하며 영토를 확장해댔다. 매일 10시간 넘게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면서 점심시간마저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의자와 한 몸으로 지냈으니 경고음이 울리지 않으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우연히 <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나가오 가즈히로/북라이프)를 읽었다, 아니 들었다.(참 신기하게도 내게 뭔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엔 어김없이 누군가가 정보를 주거나, 하다못해 라디오나 TV에서 내 귀에 쏙 들어오는 내용들을 방송한다) 어느 주말, 공부방이 책과 옷가지로 어지러워 큰맘 먹고 정리하면서 즉문즉설을 켜려다 태블릿을 잘못 터치하는 바람에 북튜버(이런 유튜버가 있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를 통해 4년 전 출간된 이 책을 듣게 됐다. 실수로 한 터치 덕분에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됐다. 눈 건강이 갈수록 나빠지는 상황에서 제3의 눈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의사들이 쓴 책은 꽤 읽었지만, 저자(내과의사)는 의료인들이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까지 공개하며 걷지 않으면 결코 건강해질 수 없다고 강조하는 내용이 북튜버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어우러져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다음 날 출근 후 점심을 먹고 40분 정도 걷고 스마트폰 앱을 보니 2km 남짓이었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1주일, 2주일이 지나면서 지하철 2정거장 거리인 집까지 걸어서 퇴근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하루 6000보 걷기로 목표를 정하고 점심시간과 퇴근길을 활용했다. 다시 2, 3주일이 지나자 요통이 사라졌다. 1시간 걷는 게 익숙해졌고 2개월이 지나자 5km(약 6500보) 걷기로 목표치를 아주 조금 올렸다. 5km 목표 달성에 재미를 붙이고 나니 틈만 나면 걸을 궁리를 하는 나를 발견했다. ‘운동’이라고 했으면 게으름이 시작을 막았을 텐데 ‘걷기’라고 하니 심리적 거부감도 적었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나자 몸무게(정확히는 뱃살)가 1.5kg 정도 빠졌다. 50대가 되면서 오를 줄만 알았지 내려가는 법을 모르던 체중계 바늘이 내려온 걸 눈으로 확인한 순간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주 5일 이상, 5km씩 걷는 데는 익숙해졌으니 이제 걷는 방법을 업그레이드할 차례였다.     


한번 꽂히면 끝도 없이 파고드는 기질 덕분에 걷기와 관련한 ‘생로병사’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북튜버가 읽어주는 <보폭 5cm의 기적>(다니구치 유/서울문화사)을 들었다. 걷기의 세계는 신세계였다. 짧은 보폭으로 천천히 걸을 땐 건강상 이익이 미미하지만, 보폭을 5cm 늘리면 치매 확률을 절반으로 낮춘다고 한다. 4개월째부터 보폭을 늘린 파워워킹을 시작했다. 보폭을 좁게 걸을 땐 하루 1만 보를 걸어도 다리 근육에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파워워킹은 시작한 날 바로 느낌이 전해졌다. 힘차게 다리를 내딛는 순간 절로 단전에 힘이 들어가면서 척추가 곧게 펴지더니 1km만 걸어도 근육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척추가 펴지니 경추와 어깨도 자연스레 펴졌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서 일하느라 앞으로 쏠리고 말린 목과 어깨가 펴지니 여기저기 뭉쳐 있던 근육들이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그런데 5개월째 접어들어 복병을 만났다. 갑작스러운 한파가 한반도를 꽁꽁 얼렸다. 3개월을 잘 넘겼으니 이제 6개월 고비를 넘어야 하는데 영하 12도, 15도 혹한이 며칠 계속된다는 예보를 듣고는 갈등이 생겼다. 1년 중 6개월은 내복을 입어야 하는 내가 걷기 욕심내다 감기라도 들면? 혹한 지나갈 때까지 며칠 쉬었다가 계속 퍼져버리면 어쩌지? 영하 12도를 기록했던 날 퇴근길 회사 문을 나설 때까지도 갈등은 계속됐다. 그런데 내 발이 버스정류장을 지나쳤다. 마음은 갈등 중이었는데 방한화를 신은 내 발은 어느새 파워워킹을 하고 있었다. 양손 모두 주머니에 넣는 건 위험하니 한쪽씩 번갈아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뺀 팔은 앞뒤로 움직이며 추동력을 높이고 있었다. 그렇게 영하 15도인 날도 걸어서 퇴근했다. 마스크를 벗으니 호흡하면서 생긴 김이 물이 돼 주르륵 흘렀다. 롱패딩 모자 안쪽에서도 물방울이 또르륵 굴러내렸다.     


혹한이 몰아친 주에도 5일 모두 5km 이상 걷기를 달성한 나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6개월을 무사히 넘겨 파워워킹이 일상화되면 중년의 내 삶은 한층 단단해질 것이다. 인간은 움직일 때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돼 있다고 한다. 점심시간 사무실 의자에 기대 눈 붙이고 싶은 유혹, 차 타고 얼른 퇴근해 소파에 드러눕고 싶은 유혹을 이겨냈더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내 두 발로 힘차게 걸음으로써 발끝으로 내려온 혈액을 중력을 거슬러 심장으로 올려보낼 수 있을 때, 그때가 바로 건강을 선물 받는 순간이라는 걸 느끼는 즐거움.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온 지구를 뒤흔든 1년을 견뎌냈다. 코로나가 종식된다고 해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긴 힘들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10명, 20명씩 모여서 운동하는 것, 회식하는 것 등 이전엔 당연한 듯 여겨졌던 일상들이 이젠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시대를 맞을 게 확실해 보인다. 흩어져야 사는 시대일수록 내 몸, 내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 그게 지켜져야 밥벌이든, 사랑이든 가능할 테니 말이다. 걷기의 힘은 단지 몸의 변화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몸에 힘이 생기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내 코앞까지 다가온 코로나블루도 저만치 물리치게 됐다. 단단해진 내 무다리가 더없이 사랑스러운 겨울밤이다. 오늘 내 기도는 단순하다. 친구, 가족, 이웃들이 힘차게 걷도록 유혹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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