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무례한 관심은 사양할게요

― 타인의 마음을 얻는 데 필요한 것

by Jasmine

2년 전 조금 일찍 퇴직한 후 일상의 많은 부분은 좋은 강의를 듣는 것으로 채워졌다. 다양한 수업을 큰 비용 부담 없이 들을 수 있어서 중년의 삶이 충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되면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인생 후반전을 함께 나눌 친구를 만난 거였다. 시 수업이었는데 내 시에서 상실의 아픔을 읽은 그녀는 고맙게도 먼저 내게 시간 있냐고 물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첫 만남에서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었다. 그녀의 친정엄마는 뇌출혈로 몇 년 전 돌아가셨고 나의 친정엄마는 당시 같은 병으로 병원에 계실 때였다. 첫 만남부터 우리는 오래 알아 온 사람들처럼 친정엄마 이야기로 눈물 바람을 하며 마음을 활짝 열었다.

그러나 모든 수업에서 그런 행운을 누릴 수는 없었다. 어떤 수업에선 수강생의 무례함에, 어떤 강의에선 강사의 무례함에 놀란 적이 있다. 무례함에는 나이도, 학식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새로 개설된 강의에 처음 강의하러 온 강사(전직 대학교수)를 마치 신입 부하 직원 가르치듯 하던 노회한 어르신, 시에 대한 강사의 조언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교실을 냉동고로 만든 60대 여성 등. 퇴직 후 들뜬 마음으로 배우러 간 수업에서 목격한 강사에 대한 수강생들의 무례는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었다.


또 다른 수업에선 강사의 무례함에 아연실색했다. 그 강사는 자기와 같은 업계의 선배(유명한 작가)를 교묘하게 깎아내렸다. 작가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그 수업을 듣는 수강생이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강생들의 글에 빨간펜으로 일필휘지를 날렸지만, 자주 오독하기도 했다. 항상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양하던 강사는 두 회기 강의 후 사라졌다. 좋은 콘텐츠로 강의하려는 사람들은 줄을 서 있고 그런 무례한 사람을 용인할 만큼 수강생들의 인내심은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수업을 들으러 갈 때는 어떤 선생님과 수강생들을 만날지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예전의 경험 때문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 올봄엔 첫 수업에서부터 내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60대 여성이 있었다. 퇴직한 뒤로 좋은 점이라면 나와 맞는 사람과만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지 않는 그 여성과는 따로 시간을 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수업 때마다 자꾸 음료수나 영양제를 건네니 수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강의 듣는 데 쓸 에너지를 엉뚱한 데 뺏기니 수업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결국 다음 분기에 그 수업을 등록하지 않았다.

남녀 사이뿐만 아니라 동성 간에도 친구가 되고 싶을 땐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상대에게 호감이 가더라도 서로 마음을 나눌 의지가 있어야 친구든, 연인이든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서 누군가에게 뭔가를 건넬 때도 상대가 기분 좋게 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타이밍도 맞아야 한다. 수업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뒤에는 첫 만남부터 부담스러울 정도로 관심을 표하는 사람에게는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막연하게 나이가 들면 매사에 너그러워지리라 생각해왔다. 그런데 나의 예민함은 나이를 먹지 않는 듯하다.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 속에서 HSP(Highly Sensitive Person)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도 60년을 큰 사고 없이-사소한 낭패감은 많이 겪었지만-살아낸 것이 대단하다. 그래서 6개월 후에 있을 환갑은 남편과 단둘이 아주 요란하게 축하할 예정이다.



#무례한관심#예의바른무관심#평생학습의시대#H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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