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날의 미술관
때 이른 찬기가 가신 지난 수요일 오후, 태양의 따사로움을 받으며 한 대학 캠퍼스를 걸었다. 친구들과 교내 미술관에서 큐레이터가 설명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했다. 아직 물들지 않은 나무 아래를 걸으며 10월의 끝자락에 가을 여자가 돼보기도 했다. 탈이 난 어깨는 여전히 콕콕 모스부호를 찍듯 신호를 보내지만,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유를 포기할 순 없었다. 마음은 때때로 엄마를 떠나보낸 지난해 봄날로 날아가기도 하고, 어느 순간엔 어깨 MRI를 다시 찍고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야 하는 열흘 뒤로 앞서가기도 한다. 그래도 알아차리는 순간, 과거나 미래로 가 있는 마음을 지금, 여기로 데려와 토닥인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캠퍼스에서 또 다른 친구와 새로운 전시를 보기로 했다. 미술관엔 언제나 마음을 안으로 모으기에 딱 좋은 그림이나 조형물이 전시돼 있다. 봄날의 미술관도 좋지만, 낙엽 날리는 나무 아래를 걸을 수 있는 가을 한낮의 미술관은 또 다른 정취가 있어서 좋다. 친구들과 함께 걷는 순간들이 사진처럼 한컷 한컷 가슴에 남는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부조를 했다. 일하는 공간과 시간대가 달라 얼굴도, 이름도 낯선 부서 사람들의 결혼과 부모상에 부조한 적도 꽤 있었다. 인사는 단체 문자로 받곤 했다. 그나마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때의 마음이 이른 퇴직 후 친정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부고를 최소한만 알려야겠다고 결정한 계기가 됐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부조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부조한 사람 중 내게 낯선 사람 또한 한 명도 없었다. 장례를 치르고 정신이 좀 들었을 때 내게 부조한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담은 별다방 쿠폰을 보냈다. 감사 인사와 함께 쿠폰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부의 금액의 15~20% 쿠폰을 보냈을 뿐인데 사람들은 감사 인사와 함께 진심이 담긴 위로를 다시 전해주었다.
퇴직하면서 인생의 아주 긴 챕터가 끝이 났다. 그 챕터를 지나오는 동안 별별 일들이 많았지만, 경조사를 통해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이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타인은 몇 명이나 될까. 생애 처음 가족의 장례를 치르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됐다. 최소한의 사람에게만 부고를 알린 건 1년여가 지난 뒤에도 잘한 일로 남았다. 부조한 사람 수는 적었지만 부조한 사람들의 위로를 온전히 전해 받을 수 있어서 마음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됐다. 퇴직하기 전이었다면 그런 선택이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조금 이른 퇴직 덕에 좋은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쓴잔이라고 피할 수도, 달콤한 잔이라고 내내 붙잡고 있을 수도 없는 게 우리 삶이다.
곧 엄마의 생신이 돌아오지만, 축하선물을 보낼 수도, 맛있는 식사를 나눌 수도 없다. 놓친 다음에야 가슴을 치는 일을 또 겪고 싶지는 않다. 지금 내 곁에 남은 가족, 친구들과 깊게 사랑할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다. 자주 하트를 날리고 소소한 선물을 전한다. 엄마를 떠나보낸 뒤 한동안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머리는 희끗하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소년 같은 남편이 내게 걱정을 숨긴 잔소리-그래봐야 마음속이 훤히 보이지만-를 하는 시절을 지나기도 했다. 가을이 깊어가는 만큼 자주 흔들리던 마음도 조금씩 깊어지고 단단해지리라 주문을 건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걸 여러 개의 문을 형상화한 설치미술이 내게 알려준다. 하나의 문이 닫힌다고 새로운 문이 저절로 열리진 않을 것이다. 문을 여는 것은 그 앞에 선 사람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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