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시가 가진 치유의 힘

ㅡ 시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

by Jasmine

원래 그런 것
윌리엄 스태퍼드


당신이 따르는 한 가닥 실이 있지요. 그것은

변하는 것들 사이를 지나지요. 그러나 그 실은 변치 않아요.

사람들은 당신이 따르는 것에 대해 궁금해하지요.

그 실에 대해서 당신은 설명해야만 하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걸 잘 볼 수 없어요.

그 실을 붙잡고 있는 동안 당신은 길을 잃지 않아요.

비극은 일어나고 사람들은 다치거나

죽게 되지요. 그리고 당신은 고통받고 늙어가게 되지요.

시간이 하는 일은 당신이 무얼 해도 막을 수 없어요.

그럴수록 그 실을 결코 놓으면 안 되지요


The Way It Is


There’s a thread you follow. It goes among

things that change. But it doesn’t change.

People wonder about what you are pursuing.

You have to explain about the thread.

But it is hard for others to see.

While you hold it you can’t get lost.

Tragedies happen; people get hurt

or die; and you suffer and get old.

Nothing you do can stop time’s unfolding.

You don’t ever let go of the thread.


몇 년 전 처음 시 수업에 참석했을 때 70~80대 어르신들이 계셔서 놀랐다. 그중 80대인 분은 전쟁을 겪고 피란 중에 동생을 잃은 경험을 털어놓았다. 다른 어르신도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는데 어느새 반백이 됐다고 했다. 먹고살 걱정에서 놓여난 뒤에야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을 다독이는 데 시 수업만 한 게 없다는 걸 알고 온 어르신들. 그분들을 보면서 앞선 세대의 고통과 슬픔이 가슴 먹먹하게 느껴졌다. 나 또한 엄마의 와병으로 인한 소통 단절과 뒤이은 이별을 온몸과 정신으로 겪어내는 와중이었다.


처음엔 일기도, 수필도, 시는 더더욱 아닌 글을 쓰던 어르신. 해가 바뀌면서 시에 얼음처럼 군데군데 박혀 있던 슬픔과 고통이 조금씩 녹는 듯싶더니 언제부턴가 시에 봄기운이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어르신이 ‘첫사랑’이란 시를 써냈을 때 교수님은 물론, 함께 공부하던 젊은(?) 우리는 한마음으로 환호했다. 시의 치유력을 직접 목격한 것이다. 한두 달 전까지도 지난날의 아픈 기억-전쟁, 피란, 사별, 배고픔, 고된 노동 등-을 담은 자신의 시를 읽을 때면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눈물을 감추지 못하던 어르신이었다. ‘첫사랑’을 낭독하면서 미소 짓는 어르신의 얼굴엔 60년 전 동네 처녀에게 마음을 뺏긴 청년의 설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며칠 전엔 미국의 최대 화제 기업인 앤스로픽의 AI 안전책임자인 므리난크 샤르마가 사임했다는 기사가 났다. 영국으로 시를 공부하러 가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보낸 퇴사 편지에서 “과학은 우리에게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주지만, 시는 세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준다”고 했다. 그리고 미국 시인 윌리엄 스태퍼드의 시 ‘원래 그런 것(The Way It Is)’을 인용했다. 이 시에는 “변하는 것들 사이를 지나는 실이 있다. … 그 실을 잡고 있는 동안은 길을 잃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다. “시간이 하는 일은 막을 수 없고 그럴수록 그 실을 결코 놓으면 안 된다”는 당부 같은 구절과 함께.


샤르마는 시를 배움으로써 격변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는 것 같다. 내게도 이제 시는 AI가 열어젖힌 낯선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잡고 있어야 할 실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어린 날 복잡한 시장통에서 갖가지 과일과 김이 피어오르는 찐빵에 정신 팔리는 순간에도 놓지 않았던 엄마 치맛자락처럼. 내가 먼저 놓지만 않는다면 나 홀로 낯선 어딘가를 헤매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믿음 같은 것. AI 회사를 그만둔 석학이 붙잡은 실이 시(詩)라는 사실이 반갑고, 한편으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멀미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 잘 써지지 않는 시 쓰기는 미뤄두고 길지 않은 시를 천천히 읽는다. 바삐 뛰던 심장이 어느새 차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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