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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Jan 31. 2022

33. 이번엔 엄마와 마주 웃어야지

- 늦되는 딸, 소녀 같은 엄마(8)

지난해 12월 19일 글을 올리고 한 달여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사이 해가 바뀌었고, 설 연휴를 며칠 앞두고 난 휴직을 했다. 내 앞에 놓인 6개월의 시간을 온전히 날 위해서만 쓰고 싶지만 어디 현실이 그리 만만한 적이 있었던가. 내 일손을 기다리며 줄지어 늘어선 삶의 숙제 앞에서 압도되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매일 새벽 컴컴한 겨울 도로를 달리지 않아도 되는 게 어디냐며 자꾸 작아지는 나를 다독인다.     


지난 며칠 오랜만에 늦잠에서 깨 출근 준비로 바쁜 남편을 배웅하고 느릿느릿 움직여 빵 한 조각과 커피를 앞에 두고 앉곤 했다. 이런 여유가 얼마 만인지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했다. 그래, 난 그런 사람이었지. 조금(많이 일 수도) 느리고, 차 한 잔의 여유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언제부턴가 ‘빨리, 어서’란 단어에 익숙해지면서 느린 나와 바쁜 현실 사이엔 긴 강이 가로놓였다.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는 그 강 앞에서 몇 번이나 주저앉았던가.     


드디어 설날을 앞둔 저녁, 설거지를 남편에게 맡기고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과의 대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 고단했던 묵은해를 어서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고 싶었다. 어느 한 해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있으랴만, 반세기 통틀어 내게는 2021년이 가장 고단했고 끝 모를 바닥으로 낙하하는 듯한 해였다. 도대체 왜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오는 거냐며 종주먹질을 하고 싶었던 한 해의 끄트머리에 이르고 나니 그조차도 그럴 만해서 그랬을 것이라 받아들이게 됐다.      


엄마의 와병과 아버지의 치매, 부부란 게 그런 거구나 싶기도 하다. 당연한 듯 존재하던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엄마는 남편도, 자녀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수술도 하고, 시술도 하고 온갖 재활 치료를 병행하면서 몸놀림이든, 인지든 어느 한쪽은 돌아오리라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그러나 엄마는 몸도, 마음도 가족을 향하지 않았다. 공기 같았던 엄마의 부재가 길어지면서 세상 걱정 모르던 아버지는 점점 왜소해지고 깜빡깜빡하는 일이 잦아졌다.      


한꺼번에 몰아닥친 부모님의 와병에 우리 삼 남매는 반쯤은 혼이 나간 듯 병원으로, 아버지 댁으로 바쁘게 오갔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설날을 앞두고 보니 엄마가 쓰러지기 전까지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봄날이 얼마나 길었는지,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다른 집 자식들 어르신 병간호로 바쁠 때, 우리 가족은 여행 다니느라 바빴다. 길게 행복했던 만큼 갑자기 몰아친 고난이 더 큰 고통으로 느껴졌을 뿐 그동안 누린 평화의 총량은 결코 고난보다 적지 않았다. 꼬박 한 해를 헤매고 난 뒤에야 그 이전의 일상이 바로 신의 가호를 입은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     


이제 두어 시간 후면 설날의 새로운 태양이 우리를 비출 것이다. 이제 나의 기도는 “∼ 해주세요”가 아니라 “당신 뜻대로 하소서”로 바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한 다음의 일은 내가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걸 이제 알겠다. 주는 대로 받고 상황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그게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최선일 테니까. 설 연휴엔 아버지 댁을 방문하고 연휴가 끝난 후엔 엄마와 화상 통화를 할 것이다. 지난번 면회 때처럼 엄마가 신체적 통증 없이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번엔 무너지듯 우는 게 아니라 마주 웃을 수 있으리라. 그게 엄마의 뜻이자 신의 뜻이기도 할 테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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