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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Aug 06. 2022

47. 오래된 손수건에서 ‘나’를 본다

―손수건에 스민 추억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손수건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하얀 손수건이다. 요즘엔 운동장 조회가 없어졌지만 그땐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학년별로 줄지어 서서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들어야 했다. 하얀 깃이 달린 검은 교복 왼쪽 가슴에 노란색 이름표와 함께 손수건을 매단 채 끝날 것 같지 않은 훈화를 듣는 건 공부만큼이나 힘들었다. 더구나 아버지가 음력 생일(2월생)로 출생신고를 하는 바람에 동급생들보다 한 해 먼저 입학해 모든 게 서툴렀던 내게는 더없는 고역이었다.    

  

3월의 날씨는 여전히 냉기가 가득했고 조회 시간은 추위로 곱아드는 손, 흘러내리는 콧물과 씨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때 손수건은 가제(Gaze)처럼 조직이 엉성해 접어놨을 때 얇고 매끈해 보이는 요즘의 손수건과는 달랐다. ‘코수건’에 맞춤한 들뜬 모양새와 부피감, 질감이었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도 코가 흘러내리기 전에 닦을 수 있다는 데 큰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손수건을 미처 챙겨오지 못한 아이들은 옷소매로 닦곤 했다. 나일론이 섞인 천으로 만든 교복 소매로는 코가 제대로 닦이지 않아 몇몇 아이의 코 옆으론 가로로 흔적이 남기도 했다.      


초등생 때 콧물닦이 용으로 유용했던 손수건은 어느 순간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핸드백을 들고 다니게 되면서 예쁜 꽃무늬가 은은하게 프린트된 고급 손수건이 다시 필수품이 됐다. 요즘처럼 핸드타월이 화장실에 비치되지 않았던 시절, 손수건은 한동안 손을 닦는 용도로 쓰였다. 그러다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서 버스 뒷좌석에 앉거나 캠퍼스 내 벤치에 앉을 때 허벅지를 가리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물건이 귀한 시절을 지나 뭐든 성실히 하는 국민성 덕인지 새 천 년을 맞고 그리 오래지 않아 우리도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을 꿈꾸게 됐다. 카페든, 식당이든 냅킨이 흔전만전이고 화장실에도 핸드타월이 비치됐다. 물티슈까지 길 가다가 거저 받을 수 있는 시절이 됐다. 언제부턴가 손수건을 갖고 다니는 사람, 특히 여성들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이제 손수건은 남성들의 땀 닦는 용도로만 남은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내게 손수건은 여전히 쓰임이 많다.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봄가을 날씨가 변덕스러울 때 큼지막한 손수건은 목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스카프 대용으로 매우 유용하다. 목만 감싸도 10도 정도의 일교차는 감기에 걸리지 않고 잘 넘길 수 있으니 내겐 안경만큼이나 필수품이다. 한겨울엔 거의 에스키모 수준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한에 신경을 쓰고 마스크는 코로나와 상관없이 어린 시절부터 필수품이었다. 그래서 정작 겨울엔 감기를 피해갈 수 있었는데, 사달은 방심하는 순간 난다. 환절기 감기를 피하려면 손수건을 챙기는 것만큼 간편하고 쉬운 방법이 없다는 걸 몇 번의 몸 고생으로 깨우쳤다. 그런 이유로 내게는 다양한 색깔과 무늬의 손수건이 꽤 많다. 봄가을이면 그날 입는 옷 색깔에 무난하게 어울리는 손수건을 꼭 챙긴다. 아무리 해를 가려도 무더위에 지쳐가는 이맘때면 가을이 기다려진다. 말복이 지난 어느 날엔가 습도 낮은 바람이 피부에 닿아 미끄러질 때면 손수건의 계절이 머지않았다는 걸 알아차리곤 한다.     

 

신기하게도 내가 가진 손수건 중에 내가 산 건 한 장도 없다. 신상품으로 하나 사볼까 하는 마음이 들 때면 희한하게 선물이 들어오거나, 여동생이나 친구가 자기에겐 선물 받은 손수건이 필요 없다며 주곤 했다. 알뜰하게 잘 쓸 게 분명하니 내게 준 것일 테다. 내 것이 된 손수건 중엔 6, 7년이 지난 것도 여러 장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15년쯤 된 유아용 손수건이다. 호주에 사는 후배의 딸이 아기 때 쓰던 것이다. 뉴질랜드 남자와 결혼해 해외에 살던 후배가 딸을 낳은 후 돌 즈음에 친정에 다니러 왔다가 우리집에서 하룻밤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때 흘리고 간 것이다. 절로 엄마 미소가 지어지는 아기 냄새 밴 그 손수건을 다음에 오면 줘야지 했는데, 그사이 후배가 서너 번이나 친정 나들이를 할 때 만났는데도 건망증 때문에 계속 서랍 속에 모셔둔 것이다. 이제는 우리 부부의 버킷리스트인 호주 한 달 살기 때나 전해줄 수 있을 듯하다. 그 손수건을 쓸 일은 없겠지만, 후배가 간직한 배냇저고리와 함께 딸 해나가 성인이 된 뒤 전달한다면 의미 있는 선물이 될 것 같다. 그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나와 인연이 닿은 건 사람이건, 물건이건 쉬 정리하지 못하는 성정을 나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새것보다 오래된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게 나이 탓만은 아닌 듯하다. 오래 써서 내 체취가 배어 있는 것, 해가 바뀌어도 같은 계절에 찍은 사진 속에서 눈에 익은 손수건을 만나는 것.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나를 만나는 것처럼 반갑다. 괜히 서랍을 뒤적여 오래된 손수건들을 꺼내 본다. 모두 손빨래해 널어놓으면 어린 시절 운동회날 운동장에서 나부끼던 만국기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손수건 한 장 한 장에 스민 시간들, 추억들만 모아도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훤히 보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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