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누구라도 칼날이 될 수 있다
―서로를 살리는 칼이 되기를
그릇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삶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시 전문>
예전 동료 중에 ‘칼날’ 같은 사람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어린 아들을 둔 싱글맘으로 삶이 참 고단하겠다는 생각만 했다. 가족이 둘뿐이어서인지 그녀는 항상 회식 등 모임을 목말라했고 때로는 함께 있는 사람보다 술이나 음식에 더 탐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짧은 인연은 내가 서울로 직장을 옮겨오면서 끝이 났다. 그러나 여러 우여곡절 끝에 그녀와 다시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됐다. 처음 몇 년은 업무적으로 미숙해 후배들에게 은근한 무시를 당했는데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후배들과 격하게 부딪칠 때마다 나는 그녀와 후배들 사이에서 중재하느라 골치가 아팠다. 업무적 미숙함과 전투적인 태도가 원인인데도 그녀는 자신이 지방 출신의 이혼녀여서 무시당한다는 피해의식이 컸다.
나의 신입 시절을 돌아보게 됐다. 대학 졸업 후 영양사로 일하다 완전히 다른 업역으로 전업하면서 20대 후반에 신입이 됐다. 그 회사엔 내 대학 후배가 이미 경력 3년 차 선배로 있었다. 우리는 서로 ◯◯씨로 불렀다. 나이 어린 후배와 맞먹는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기꺼이 감수했다. 게다가 그 직장은 내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업역이었고 내가 정말 원하던 일이었기에 후배에게 선배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 회사에 다니는 동안 그 후배와 동료로서 잘 지냈다. 5년 뒤 IMF로 그 회사는 휴업에 들어갔고 잠깐 공백기를 보낸 후 서울로 올라왔다. 그 직장에서의 경력 덕에 계속 같은 업역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34년간의 직장생활을 돌아보니 사람에 대한 평가는 업무 능력만으로 이뤄지지는 않았던 듯하다. 사람의 태도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 고집을 부리기보다 상대를 설득해 보려는 태도, 후배의 말에도 귀 기울이는 태도 등은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는 곳에선 꼭 필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나와 다시 동료가 된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일에 대한 자신감이 실제 역량을 훨씬 넘어서곤 했다. 수시로 돌출 행동이 이어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후배들도 그녀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상황을 피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나 해가 쨍하면 그림자도 진하듯, 그녀의 지나친 자신감은 상에 대한 욕심으로 이어졌고 자기 실적을 위조하고 부풀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엔 혹시나 했지만 이내 물증도 없이 그녀를 의심하는 나 자신에게 놀란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녀의 부정행위를 알게 됐다. 무려 몇 년이나 이어져 온 증거 앞에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때 내게는 그 상황을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녀를 조용히 불렀다. 당연히 그녀가 바로 고개 숙이리라 생각했다. 뉘우치는 기색만 보이면 나 또한 눈 질끈 감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딱 잡아뗐다. 증거를 내밀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억지스러운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녀의 뻔뻔한 태도를 통해 부정행위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는 걸 알게 됐다. 몇 년간의 부정행위로 후배들이 받아야 할 상을 가로챈 데 대한 뉘우침이나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결국 나는 보고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은 부정행위를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내게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그녀의 일탈은 몇 년 뒤 그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의 순간을 떠안겼다.
그녀도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이 그녀를 깨지게 했을까. 깨진 그녀는 왜 결국은 돌고 돌아 자기를 해치는 칼날이 됐을까. 깨지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 설령 깨졌더라도 칼날이 되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 애초에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까. 오랫동안 그때의 일이 가슴 한쪽에 체증처럼 걸려 있었다. 그녀를 통해 깨달은 한 가지는, 실적을 가로챌 수는 있어도 품격까지 가로챌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마음의 눈을 감는 순간, 얻어낸 것보다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음을 보여준 그녀.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났다.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그녀의 칼날은 좀 무뎌졌을까? 이젠 그녀의 세밑이 따뜻하길 빈다. 시인의 노래처럼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이, 녹록지 않은 한 해를 견뎌온 우리 모두에게 깃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