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가슴에 박힌 별
―사랑뿐만 아니라 일도 별이 될 수 있나니
비망록
문정희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시 전문>
소녀 시절, 내가 생각했던 사랑은 소년‧소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중‧고교 때 단체 관람했던 영화 ‘필링 러브’(1978년 개봉)와 ‘끝없는 사랑’(1981년 개봉)을 보고 친구들과 함께 울고 몇 날 며칠 밤 일기장에 비극으로 끝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을 쏟아내곤 했던 기억. 사랑이 뭔지도 모르던 그 시절엔 ‘사랑’ 하면 바로 절절한 장면이 떠올라 눈가가 촉촉해졌다. 영화가 만든 슬픈 환상이었다.
그렇게 철없던 시절을 지나 40대이던 10년 전쯤 읽게 된 문정희 시인의 ‘비망록’은 첫 연에서부터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남은커녕 나조차도 제대로 사랑할 줄 몰랐던 지난날이 떠올라서였다.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제대로 사랑을 주고, 또 받고 싶은 20‧30대 시절, 나를 사랑한다는 이에게 서툰 말과 몸짓으로 뜻하지 않은 상처를 입히곤 했다. 그 기억은 가슴속에 박혀 오래도록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이성의 호의와 친절을 왜 그리 삐딱한 시선으로 대했을까. 그만큼 내면이 단단하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청춘남녀의 알콩달콩 사이사이에 생기는 크고 작은 실랑이와 부딪침을 유연하게 넘길 지혜가 없던 때였다. 학과 친구의 롤러코스터 같은 연애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멀미가 날 지경이어서 더 그랬을까.
50대에 다시 읽은 ‘비망록’에선 한 줄기 위안과 회한이 오갔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하는 마음을 엄마에게 물려받고도 하지 않던 감사 기도를 밥벌이를 그만둔 뒤에야 하게 된 건 그만큼의 성장이었기에 위안이 됐다. 일하지 않고도 밥 먹고 배우고 글을 쓸 수 있으니 모든 게 얼어붙은 요즘 더없는 축복이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비망록 3연에서의 ‘사랑’은 ‘사람’이 아니라 내가 놓친 어떤 것이어서 가슴 아프다. 사랑이 꼭 남과 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다다르고 싶었던 어떤 경지(境地)일 수도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서 더 그렇다. 내가 사랑했던 일을 ‘겨우’ 30년 만에 끝낸 게 여전히 아쉽고 아프다. ‘40년’쯤은 하려던 일이었는데 상황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타려던 기차를 간발의 차이로 눈앞에서 놓쳐버린, 그래서 꼭 만나야 할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게 된 듯한 상황. 그래서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는 문정희 시인의 문장이 마치 지금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은 겨울날이다. 앞선 이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힌 눈 쌓인 길을 걷다가 잠시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해 멈춰 섰다. 다행히 눈은 그쳤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딘다.